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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장에서 느낀점

잊고 있었던 소중한 마인드들

by 유지경성

회사 일정으로 베트남 호치민에 약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출장은 언제나 그렇듯 바빴고, 이번에도 여유는 없었다. 중간중간 여행을 해보려는 시도조차 못 했고, 현지 로컬팀의 보고서를 검토하다 보니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더 자주, 더 오래 야근을 하게 됐다.


동남아시아는 싱가포르 외에는 처음이었다. 나에게 동남아는 늘 ‘덥고,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굳이 가야 할까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번 싱가포르 출장 이후, 더운 날씨와는 나의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호치민에서 보낸 며칠 동안, 나는 뜻밖의 따뜻한 장면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었다. 바쁜 와중에도 내 마음속 깊이 남은 두 가지 감정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생각들. 평소에는 놓치고 지나가던 질문들이 떠올랐다.




1. 의지와 긍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호치민에서 만난 사람들은 밝았다. 말투에는 생기가 있었고, 표정에는 온기가 묻어났다. 인당 GDP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과 베트남은 여전히 7~8배의 격차가 있다. 사회 인프라나 경제 규모 면에서도 우리가 앞서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거리에서, 식당에서, 사무실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태도는 그런 숫자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택시를 타도 기본요금이 천 원 남짓이고, 식당에서 배불리 먹어도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다. 로컬 식당에선 단돈 몇 천 원으로 푸짐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들은 바로는 현지 사람들의 평균 월급은 30-40만 원 정도이고, 우리 회사의 베트남 오피스조차 고급 인력에게 100-150만 원이면 충분한 수준이라고 한다.


이 작은 숫자들만 보고 이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건 오만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고, 손님을 대할 때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태도에서 느껴지는 건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경제적인 규모로 누군가의 삶을 평가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마치 우리나라가 70~80년대에 가졌던 열정과 희망을 지금 이들이 살아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한국은 더 많은 자원과 더 나은 환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풍요 속에서 점점 삶의 활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안의 무표정한 얼굴들, 식당에서 조용히 고개 숙이고 밥을 먹는 풍경. 우리가 더 많은 걸 가지고 있음에도, 그만큼 잃은 건 없는지 스스로 묻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경제적 우월감이라는 착각 속에서, 삶의 본질을 조금씩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2. 내가 좋아하는 사람


이번 출장에서 나는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실력이나 지위, 배경 같은 외형적인 요소를 떠나, 마음이 선하고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함께 밤을 새우며 고민했고, 누구 하나 기교를 부리거나 과시하지 않았다. 보여주기보다는 진심으로 일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프로페셔널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고마웠고, 그래서 더 편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그들의 ‘정서’였다. 대부분 호치민이 아닌 베트남의 지방 출신들이었고, 자신이 자란 배경을 숨기지 않았다. 이 친구들은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부족한 부분은 감추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촌스럽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투박하고 솔직한 태도에서 진짜 강함을 봤다. 껍데기를 만들지 않고, 본질 그대로를 꺼내놓는 용기.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점점 보기 어려워진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시골스러움은 단지 말투나 태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오늘 점심 자리에서 그 태도가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며칠간 함께 야근하며 고생한 팀원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점심을 사기로 했다. 괜히 비싼 걸 예약하라고 하면 그들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는 게 아닐까 하여 조심스레, “맛있는 걸로 적당히 골라줘”라고만 전했다. 다행히 걱정할 필요도 없게(?), 우리나라 기준으로도 비싼(?) 매우 좋은 샤브샤브 식당을 골라왔다. 역시 머리가 좋으면 다들 센스도 좋은 것 같다...


식사가 끝나고 음식이 조금 남았을 때, 프로젝트에서 질문이 많았던 한 친구가 망설임 없이 포장해 가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음식통에 남은 샤브샤브를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한국이라면 문화적으로 생소하거나 조금 ‘궁상맞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마음이 좋았다. 그는 부끄러워하지도, 주위를 의식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마치 “이건 집에서 먹을 수 있으니 맛있을 거야.”라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 친구에게는 어떤 허세도, 꾸밈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라며 절약하고, 소중한 걸 아끼며 살아온 정서가 몸에 배어 있었다. 도시에서 잊히기 쉬운 삶의 태도들. 자원을 아끼는 마음, 함께 나누려는 습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솔직함. 그 모든 게 참 예뻐 보였다. 나는 그 ‘시골스러움’이 너무 좋았다. 거칠고 투박할 수 있지만, 그 안에 허세가 아니라 진심이 있다는 걸 알기에 더 따뜻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언제 내 본모습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거리낌 없이 드러낸 적이 있었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늘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고 싶었지만, 도시에서 살아온 나는 너무 많은 틀과 껍데기 안에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이런 사람을 좋아한다. 잘 포장된 모습보다는, 투박하지만 솔직한 사람.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품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




이번 베트남 출장에서 나는 사실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여행자다운 시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속을 따뜻하게 데워준 장면들이 있었다. 기대만큼 결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편에 오래 남을 온기를 얻고 돌아올 수 있었던 출장.


이건 그 기억을, 그 따뜻함을 잊지 않기 위해 남기는 글이다.


Ho Chi Minh City, Viet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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