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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Textbook)

어느 일상 저녁의 이야기

by 유지경성

3월부터 짧고 단기간의 해외 체류 일정이 잦아지고 있다. 다양한 국가를 오가며 강도 높은 일정을 소화하려면, 제법 많은 체력을 요구받는다. 그래서 나만의 방식 하나를 정해두고 실천 중이다. 시차가 다르더라도 한 곳의 시간대를 기준으로 생활 리듬을 고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미국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아주 짧게 참석했을 때도 나는 내내 한국 시간으로 생활했다. 금요일과 일요일은 총회가 현지 기준으로 오전에 열려서, 나는 미국의 점심시간, 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는 자정 무렵에 잠을 청했다. 이후 저녁까지 깊이 잠들었고, 새벽에는 아예 자지 않았다. 다만 토요일에는 총회가 새벽부터 오후까지 이어져서, 그날 하루는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웠다.


이처럼 미국 시차에 아예 적응하지 않다 보니, 다시 아시아권으로 돌아왔을 때 피로감이 훨씬 덜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팁이 있다면, 식사 리듬을 고정하는 것이다. 내 몸의 생체 시계는 점심 11시 30분, 저녁 6시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비행 중 어떤 시간이든 이 리듬에 맞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않는다. 또한, 혈당 스파이크를 피하려고 음식도 신중히 고른다. 그렇게 하면 이동이 많고 생활이 불규칙한 와중에도 피로도를 최소화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불규칙 속에서 내 몸만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번 주는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베트남으로 출국하기 전, 잠시 부산에 들렀다. 중요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부산에 가기 전까지 꽤 고민이 많았다. 이미 체력도, 몸 상태도 거의 바닥에 가까웠고, 일정도 빠듯했다. 시간은 쪼개 써야 했고, 정신도 육체도 여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행을 결심한 건, 꼭 뵙고 싶은 대표님께서 금요일 저녁 시간을 내주셨기 때문이다. 대표님들은 나보다 훨씬 더 바쁘신 분들이다. 그렇기에 시간이 허락될 때는, 내가 힘들더라도 꼭 시간을 맞추려 한다. 단순히 업무적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다.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분이기에 더욱 그렇다.


나는 어른들과 대화하는 게 어렵지 않다. 오히려 즐겁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는 종종 나를 애늙은이라고 부르곤 한다. 아마도 생활방식이나 생각하는 태도가 20대답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술도 시끄러운 자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색을 좋아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종종 40대 중반의 조용한 아저씨 같다는 말도 듣는다.


그날의 식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예전에는 업무로 알게 된 사이였지만, 지금은 편안한 친구처럼 느껴지는 자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회사를 사랑하는 대표님’을 존경한다. 단지 소박하거나 꾸밈없는 사람만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회사를 하나의 문화로 여기고 긴 호흡으로 기업을 성장시키려는 분 또한 그 철학을 보고 배울 수 있어서 나는 그 시간이 즐겁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비상장사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기업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문화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그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나는 기업을 자신의 사유물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로 바라보는 태도에 깊이 감동한다. 게다가 이 회사는 과거 내가 전공으로 선택한 산업이면서 몸담았던 산업에 속해 있다. 여전히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분야이기에, 산업의 사이클이 좋든 나쁘든 항상 관심이 간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기대와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좋은 일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대표님과의 대화에서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대표님은 회사를 단기적 수익이 아닌, 100년 이상 지속되는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이전에도 나와의 만남에서 회사를 매각하거나 처분하는 선택지보다는, 어떻게 더 성장시키고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셨던 기억이 있다.


대표님은 창업주이신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2세 경영자다. 흥미롭게도 나는 대표님보다 창업주를 먼저 알게 되었었다. 같은 학교 출신이셨던 창업주님을 동문회에서 우연히 먼저 뵌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이 분명하고 자신만의 세계관이 뚜렷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대표님을 뵈었을 때, 나는 자연스레 창업주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셨던 분이었던 것 같은데, 자녀인 대표님 역시 바른 성품과 책임감을 지닌 분이었고, 아버지의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었다. 대표님의 사업에 대한 태도는 단기간의 결과를 바라보기보다 장기간의 흐름을 읽고 계신 듯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업의 지속성과 기업문화의 내재화, 그리고 업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있었다.


나는 이러한 점이 사람도 같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일주일 단위로 계획하는 사람과, 1년, 5년, 10년 후를 내다보며 사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당장의 행동이나 계획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일관된 방향성을 지닌 사람은 언제나 그 기반에서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 그래서 나는 삶에도, 경영에도 ‘장기적인 흐름’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마인드


기업 오너분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승계’라는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고속 성장기를 이끌었던 1세대 기업들이 2010년을 기점으로 은퇴와 승계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표님과의 대화에서도 자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부모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 중 하나를 꺼냈다. “모든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부모님은 모임 자리에 가서도 자녀,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상처나 불쾌감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부모의 기대와 다르게 자라는 것이 실패는 아니다. 단지, 부모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생기는 그들의 아쉬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대표님은 내 삶의 태도나 성격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원래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 열심히 살아야만 했고, 돈은 원래 없었기에 애초에 돈에 흥미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 개인적인 흥미와 재미를 위해서 열심히 좇아 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도 그렇다. 돈을 최우선으로 삼기보다는, 나에게 의미 있는 일에 몰입하고 싶었다. 그 일을 지속적으로 흥미롭게 이어가기 위해 공부하고, 선택하고, 또 도전해 왔다.


자녀를 어떻게 키우는 것이 좋을까 하는 화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자녀가 없기에 직접적인 경험은 없지만, 워렌 버핏의 철학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버핏의 유명한 말을 전했다. 워렌 버핏의 이 문장은 내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 물론 그의 부의 규모와 나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철학은 단지 ‘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은 주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은 주지 않는다.
“I want to give my kids enough so that they can do anything, but not so much that they can do nothing.”


나는 이 정신을 자녀에게 보여줄 ‘세상’, 가정 안에서의 ‘교육’, 그리고 인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독립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되,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도록 하는 것.


대표님도 이 문장을 아주 좋아하시는 듯했다. 대화 중 이 말을 들으시고는 바로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셨다. 알고 보니, 대화 중 인상 깊은 말이나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으셨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세심함과 배움의 태도가 묻어나는, 멋진 습관이었다.


가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다.)


대표님은 원래 가업을 잇게 될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하며 자라긴 했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기업에 입사해 한국을 떠나 중국에서 20년 넘게 생활했고, 그곳에서 가족들과 살아가는 삶을 오랫동안 구상해 왔다고 했다. 가업은 자연스럽게 동생이 이어가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동생은 대표님과 3~4살 터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동생이 부모님의 사업을 이어받을 거라고 생각해 왔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강하던 동생이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았고, 진단을 받은 지 1년도 안 돼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부모님께는 정말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가족 전체가 크게 흔들렸고, 그때부터 아버지께서 대표님에게 “너라도 돌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수년간 계속하셨다고 한다. 결국 대표님은 자신의 가족을 중국에 남겨둔 채,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가업을 물려받을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보통 이렇게 갑작스럽게 승계를 시작하게 되면 내부 조직과의 조율이나 문화적인 충돌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들 한다. 그런데 대표님은 의외로 회사가 편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미 철학과 기반을 잘 만들어 놓으셨고, 자신은 그 안에서 실행만 하면 됐기 때문에 일하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20년 넘게 일했던 대기업에서는 늘 ‘철학이 맞지 않는다’는 불편함을 느꼈다고 했다. 실행은 쉬웠지만, 방향이 달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가업에 들어왔을 때 기업이 너무 편하게 느꼈다고 한다. 단순히 아버지의 기업이라서 아니라, 기업의 철학이나 임직원들이 너무 편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기업의 철학과 한 개인이 가진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단순히 돈을 버는 목적을 넘어서, 기업이 가진 문화와 철학이 나의 방향성과 맞지 않으면 결국 오래 함께할 수 없다는 걸 공감했다.


그리고 사업적으로도 다행히도 회사가 하고 있는 사업이 당시의 글로벌 흐름과 맞물려 있었다고 한다. 중국 제조업이 부상하면서,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중국 시장이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 되었고, 20년 넘게 중국에서 경험을 쌓아온 대표님의 역량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정말 인생은 알 수 없다.




예전 회사에서 가장 존경했던 분이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실력을 유지하며 오래 남는 유일한 길은 ‘정도(正道)’를 걷는 거야.”

빠르게 가는 길도 있고,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세상에 남는 건, 바르게 가는 사람과 기업이다.


신기하게도 아버지인 창업주 회장님도 기업의 슬로건을 “바르게, 제대로”로 정했다고 한다. 대표님은 이 말과 삶의 방식이 너무나 자신과 맞다고 생각하신다. 그래서일까. 나는 대표님을 보면 자연스럽게 ‘교과서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투, 행동, 경영 방식까지 흐트러짐 없이 바른 분이다.


그날 술자리에서 대표님은 와인 한 병을 꺼내셨다. 이름은 ‘TEXTBOOK’. 나는 술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맛있었다고 느꼈다. 대표님은 이 와인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와인이 좋은 이유는 맛이 좋고. 그리고 자신과 닮았다고 한다. 대표님은 학교 생활을 하면서 교과서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지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와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조금 장황하지만 편안한 저녁의 이야기를 적은, 오늘

이 글의 제목은 교과서(Textbook)이다.


부산 어딘가 프랑스 음식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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