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3-2
부부지간에 입맛이 맞는다는 건 꽤 중요한 일이다. 그와 나는 꼭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정말 안 맞아서 못 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는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떡볶이를 사랑한다. 하루 세끼를 다 먹고 다음 날도 떡볶이를 즐겁게 먹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첫째는 달달해서 싫고, 둘째는 매콤해서 싫단다. 달달하고 매콤한 것이 떡볶이의 생명인데 그 두 가지를 꺼리니 떡볶이 궁합은 꽝이다.
또 안 맞는 것이 있다면 술이다. 그는 술을 즐기고 잘 마신다. 나는 일명 밀밭 근처에만 가도 취하는 사람이다. 딱 한 잔으로 얼굴부터 발바닥까지 벌게져서 정신 못 차리는 타입이라 주로 운전은 내가 하고 마시는 건 그가 한다. 그러므로 부부동반 모임에서 서로 마시겠다고 아옹다옹할 필요가 없다. 술 궁합은 안 맞지만 역할분담은 확실하게 되므로 싸울 일은 없다.
그 외의 음식은 대부분 그도 좋고 나도 좋아하는 것이다. 제일 만만하게 먹는 건 국밥이다. 순대국밥, 돼지국밥, 선짓국은 각각 단골 집이 있을 정도로 소울푸드라고 할 수 있다. 남들은 브런치로 빠네나 샌드위치를 먹지만 우리는 돼지국밥을 먹으며 "아~ 조오타!" 를 외치는 부부다. 돼지국밥 브런치는 생각보다 괜찮으므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그리고 똥집튀김이 있다. 저녁 메뉴가 시원치 않거나 바람이 불거나 날이 좋거나 기분이 꿀꿀할 때면 남편은 나에게 "뭐 좀 먹으러 갈까?"라고 한다.
뭐 좀 먹으러 갈까?
뭐 먹을까?
뭐가 좋을까?
똥집?
그래. 가자.
이런 식이다. 얼마나 자주 갔으면 치킨집 사장님이 우리는 부르는 이름이 '똥집 부부'다. 치킨집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를 하면 사장님은 두말 않고 똥집 양념을 시작한다. 어느 날 '왜 남편만 술을 마시냐'라고 하는 질문에 남편이 "이 사람은 술을 못 마셔요."라고 했더니 그다음부터 나에게는 오렌지주스를 주신다.
그렇게 몇 년을 똥집만 먹다가 요즘 들어 간혹 후라이드 치킨을 주문하면 사장님은 허전하다시면서 똥집을 옆에다가 수북이 쌓아 주신다. 어떤 때는 배보다 배꼽이 클 때도 있다. 그래서 다음에 갈 때는 사과나 간식거리를 들고 가고 그걸 받아 든 사장님은 원수는 꼭 갚아야 한다고 똥집을 더 얹어 주는 꼴이다. 아이고.
그래도 똥집은 질리지 않는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다. 다른 집에서 먹는 것보다 '장원 가마솥 통닭'에서 먹는 게 최고다. 바삭한 튀김옷은 물론이고 입안에 넣고 바삭 씹을 때 살짝 배어 나오는 기름이 똥집하고 버물버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도 나도 사랑하는 맛이다. 그는 참이슬 후레쉬에, 나는 오렌지 주스에 곁들여 먹는 맛은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츄릅.
2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매우 기쁜 때도 있었고, 서로에게 서운할 때도 있었으며,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며 탓을 하고 싶을 때도 물론 있었다. 감정이 꼭짓점을 찍을 때마다 우리는 장원 가마솥 통닭집에서 똥집을 먹었다. 그걸 먹으며 함께 웃기도 했고, 마음도 풀었고, 사과도 했다. 그곳의 분위기와 사장님의 훈수조차 좋았던 걸 보면 똥집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을 웃음 카테고리에 넣은 것 같다. 웬만한 건 허허 웃으며 똥집과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들이 합쳐져서 된 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과거의 '나'가 하도 자주 먹어서 기억나는 장면마다 존재하는 똥집은 나와 세트인가 보다. 부부는 0촌이라던데 우리의 영(0) 안에는 똥집도 함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