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드(Threads)가 어느 작가의 표절 이슈로 뜨겁다. 매일같이 통찰력 있는 문장을 길어 올리던 이의 몰락을 보며, 나는 분노보다 앞서 먹먹한 서글픔을 느꼈다.
그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가 느꼈을 그 숨 막히는 압박이, 한때 창작의 즐거움보다 타인의 시선에 먼저 질식했던 나의 지난날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달콤한 독, 인정의 욕구
나에게도 인스타그램에 매일 글과 그림을 기록하던 시절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내가 좋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쌓이기 시작하자 상황은 변했다. '다음에도 이만큼 좋아야 할 텐데','이전보다 못한 결과물을 올리면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부채감이 나를 짓눌렀다. 즐거웠던 작업은 어느새 평가받는 '업무'로 전락했다. SNS는 창작자에게 달콤한 독과 같다. 반응이 실시간으로 수치화되는 공간에서 글의 목적은 서서히 '내면의 고백'이 아닌 '타인의 인정'으로 변질된다.
잘 쓴 글, 남들에게 보이기 좋은 인사이트만을 쫓다 보니 정작 나의 색깔이 사라진 그 공간에서, 나는 결국 뒷걸음질 쳐 멀어졌다.
벼랑 끝에서 빌려온 문장들
매일 무언가 대단한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은, 때로 타인의 빛나는 문장을 손쉬운 탈출구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남의 글을 훔치는 행위는 결국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지우는 일이다.그는 아마 누구보다 자신만의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요'의 개수와 찬사에 매몰된 순간, 매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수만 개의 하트 속에 갇혀, 그 누구보다 홀로 지독하게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감히 짐작해 본다.
글을 쓰는 시간보다 삶을 살아내는 시간
인스타그램을 접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는 다시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채워가고 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글을 쓰는 시간보다 '삶을 살아내는 시간'이 더 길어야 비로소 진실한 문장이 나온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모두에게 '잘 쓴 글'이라 칭송받지 못하더라도, 내 양심과 영혼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그의 잘못은 분명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그가 짊어졌을 압박감이 남 일 같지 않아 자꾸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