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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won Jul 26. 2015

열망으로서의 인권

    Prologue - 호흡기와 휠체어     

"남들 노는대로 놀다가는 벌받는다." 



  오지석은 1983년에 태어났다. 반짝거리는 유년기를 지나자 건강한줄 알았던 아이에게 근육이 점차 약화되는 희귀질환이 있음이 밝혀졌다. 병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중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자 앉아 있는 시간이 짧아졌다. 20대가 넘어서면서 자가호흡이 어려워졌고 방에서 늘 호흡기를 끼고 침대 위에 누워 지내야 했다. 


  매일 똑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던 지석은 서른이 되던 어느 날 같은 장애를 가진 선배로부터 침대형 휠체어를 기증받는다. 이 휠체어는 앉아있기 힘든 그에게는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서른 살의 어느 봄날, 19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휴대용 호흡기를 착용하고 침대형 휠체어에 누운 오지석의 모습은 세상 사람들에게 생경했다. 하지만 그는 근육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한 활동은 물론이고, 소녀시대 팬미팅과 여의도에서 열린 ‘솔로대첩’ 행사에도 참가한다. 언론에는 침대위에서 이불을 덮고 호흡기를 낀 채 활동보조인과 참여한 그의 사진이 실리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환자도 나왔다”라며 놀라움과 조롱을 섞어 반응했다. 오지석은 연애가 하고 싶은 서른 살 싱글이었고,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게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근육장애인 인권활동가이자 시 쓰기를 즐기던 작가이기도 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제는 걸을 수 없어 방안에서 할머니가 가져다주는 책을 읽고 요리를 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생 츠네오와 우연히 사랑에 빠지고, 햇살 좋은 날 츠네오와 함께 할머니 몰래 외출을 감행한다. 조제가 밖에 나가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하던 할머니는 조제의 외출사실을 알고 분개하며 조제를 데리고 나간 츠네오를 집에서 내쫓는다. 그리고 조제에게 말한다. “너는 몸이 불편하지 않냐... 남 노는 대로 놀다간 벌 받는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15년의 시간을 집안에서 책을 읽고 TV만 보며 지냈다. 나는 스스로의 처지를 분명히 인식할 줄 알았던 꼬마였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열망하던 어린아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삶을 꿈꾸다가는,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맞서야 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를 수용해야 하고, 사회가 제공해주는 안전과 보호가 있다면 이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배운다. 감히 바깥세상의 햇살을 꿈꾸며 ‘남 노는 대로’ 외출을 감행하고 사랑을 꿈꾸는 일은, “병신 육갑한다”라는 오래된 관용어구가 묘사하는 전통적인 인식에 맞서는 일이었다.



열망으로서의 인권


  그러나 이 모든 인식은 오지석이 외출을 감행하고, 사랑과 예술과 사회변화를 갈망하는 순간 뒤흔들린다. 물론 그와 같은 특별한 인간이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21세기 들어 진행된 광범위한 장애인인권운동의 산물이다. 이 운동은 장애인이 폭력과 학대, 차별로부터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구상함과 동시에, 더 중요하게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 사회에서 보잘 것 없고, 추하고, 별 볼일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사랑을, 예술을, 정치를, 축제를 열망할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고 그에 부합하는 정체성을 쌓아올리는 거대한 기획이기도 했다.   


  나는 이 공간을 통해 약 9회에 걸쳐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인권을 도덕과 동일한 규범으로 여긴다. 중증장애인이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도덕적으로 배려하는 일은 분명 소중하고 가치있다. 하지만 인권은 사실 그보다 훨씬 더 까칠한 면모가 있다. 어떤 사람이 인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선량한 도덕적 배려와 상관없이도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선량한 배려는 있지만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배려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열망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병신육갑한다”라고 비난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남들 노는 대로 놀다간 너 상처받을 거야”라고 (선의를 가지고) 조언한다.   


  이 지면을 통해 나는 ‘착하고 선량한’ 성격을 지닌 인권개념보다는 세상에서 보잘 것 없고, 추하고, 부자유하고, 가진 것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선언하고, 자기의 열망을 솔직하게 추구하도록 촉발하는 힘으로서의 인권에 주목할 것이다. 장애를 가진 당사자로서 장애인의 인권을 주로 다루게 되겠지만, 장애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힘 없고, 가난하고, 나약한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들에도 주목할 것이다. 나아가 동물이나 로봇에 대해서도 현대의 인권규범이 어떤 함의를 가질 수 있는지 간략히 살펴볼 예정이다. 



거인의 어깨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사회의 소수자들이 처한 삶을 낭만적으로 묘사할 생각은 없다. 오지석은 이 세계에 충격을 가하며 2년 남짓한 시간을 보냈지만, 중증 장애인을 돕는 활동보조인이 제공되지 않는 시간에 호흡기가 빠지는 사고를 당했고 결국 2014년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햇살과 연예인들의 지지가 뒤따랐지만, 그를 연인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한 때였다. 영화 속 조제는 츠네오와 사랑에 빠지지만, 츠네오는 결국 떠나고 조제는 다시 홀로 방에 남는다. 이들의 당당한 도전과 열망은 그 자체로 멋지지만 그 삶이 과연 ‘좋은 삶’인지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남들 노는 대로 놀다간 벌 받는” 일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따듯한 배려와 안전에만 머물지 않고 독립적이고 밀도 높은 삶을 살고자 했던 사람들의 열망에 훨씬 관심이 간다. 최후의, 최소한의 권리를 의미하는 인권개념은 그렇다면 저와 같은 열망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제대로 아는바가 없다. 그래도 호흡기를 한 채 사랑, 정치, 예술의 주체가 되고자 열망했던 매력적이고 존엄한 인간이 이미 등장했음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미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는 셈이다.  



* 오지석의 이야기는 2013년 한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다. 아래 주소에서 시청가능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JGNtkIQqe3w&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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