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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won May 29. 2017

정상을 연기하기

연극을 하겠다고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중고교 시절 몇 번, 대학에 와서는 학부를 졸업한 이후에야 한 번 설 수 있었다. 기획 등 간접적으로 참여한 적은 조금 더 있다. 무대에 오른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일상에서 언제나 타인의 이질적 시선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이왕 받아야 할 것이라면 '주도적'으로 받는 편이 좋았다. 


'비정상의 몸'을 가진 인간은 정상을 연기하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급적 허리를 곧게 펴고, 물건을 떨어뜨리면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나는 전혀 곤란한 상황이 아니라는 표정으로 집어 들어야 한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우아함이란 곡선과 같다고 했다. 우아한 인간의 동작은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그리로 가야만 했던 것처럼 움직인다. 우아함은 길고 쭉 뻗은 몸매에서도 나오지만 주변 환경에 익숙한, 잘 기획된 무대 위에서 경험을 쌓은 연기자의 것이다. 투박한 장면을 연기해도 그 연기는 자연스럽고, 그럴듯하고, 물 흐르듯 곡선을 이루며 유려하게 목표지점으로 떨어진다. 


장애인에게 일상은 잘 기획된 무대가 아니다.  대본도 없는 즉흥연기의 부담을 늘 져야 한다. 휠체어를 미는 일은 우아하기 어렵다. 갑작스럽게 둔턱이 나타나고, 예측 불가능한 요철, 배수로, 계단, 경사로가 나타나면 낑낑거리며 자세가 흐트러지고, 엘리베이터는 제 자리에 없거나 고장 나고, 화장실이 없는 7시간을 버텨야 한다. 뇌병변(뇌성마비) 장애가 있다면 음식을 먹다 포크가 날아가고, 물을 엎지를 수도 있다. 정상을 연기해야 하는 압박. 우아함의 발가락 끝이라도 좇아가기 위한 인지적, 신체적 압력으로 밤이 되면 녹초가 된다. 


연극은 애초에 장애가 있는 배우를 고려해 기획하고, 연출할 수 있다. 우아함의 압박을 느낄 필요 없다. 우리의 '비정상성'은 '기획된' 비정상이다. 즉흥무대에 익숙한 나에게는 대본이 주어지는 것으로 감사하다. 


그럼에도 연극은 일상과 다르고, 일상에 대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익숙한 무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몸짓과 우아함의 압력에서 나는 50대쯤 되면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사실 우리 모두는 '문명화된 움직임'의 압박 속에서 하이힐을 신고 더운 여름 타이를 매고, 배탈이 나도 화장실로 달려가기보다 은근히 속도를 높이는데 만족한다. '정상적인' 몸들도 다들 고된 연기로 지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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