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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won Dec 02. 2015

차별이란 무엇인가 1

열망으로서의 인권 ⑦

1.  남성만의 야구동아리


한 대학의 남학생들이 모여 야구동아리를 만들고자 한다. 이들은 야구에 대한 경험이나 경기력이 유사한 남성들만을 동아리 멤버로 받기로 하는 내부 규칙을 정한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무척 좋아했고, 늘 운동을  즐겨했기 때문에 평균적인 남성들 이상의 야구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면서 동아리 가입신청을 한다. 남학생들은 내부규정상 여학생을 동아리 멤버로 가입할 수 없다고 통보한다. 거부당한 여학생은 야구에 대한 관심이나 야구 경험이 유사함에도 자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아리 가업을 거절하는 일은 성별을 이유로 하는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평생을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던 케이크 가게 주인은 자신이 믿는 성경의 해석상 동성애는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행사에서 사용하는 케이크 전문점을 운영한다. 어느 날 이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 한 레즈비언 커플이 자신들의 결혼식에 필요한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는 고민 끝에 동성애 커플을 축하하는 결혼식에 자신의 케이크를 판매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레즈비언 커플은 이것이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2. 누가 차별금지 의무를 가지나


차별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어느 때보다 우리는 차별에 민감한 사회를 살아간다. 유색인종인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있는 미국조차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인종에 따라 분리된 학교를 다니는 것은 물론 버스에 탑승하는 좌석도 인종별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나라도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판사 임용 성적이 충분했던 한 소아마비 장애인에 대해 대법원이 “장애 때문에 법관의 품위가 손상될 수 있다”며 판사 임관을 거부한 일이 있었다(대법원은 전 사회적인 비판 속에서 결국 그를 판사로 임관해야 했다).      


1955년 12월 1일, 앨라베마 주의 로쟈파크스는 백인 전용석에서 일어나라는 요청을 거부하며 자리를 지키다 경찰에 체포된다. 그녀는 흑인 차별에 저항하는 민권운동에 불을 붙였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에 비해 불리하게 또는 유리하게 대우하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법적 근거는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이다. 헌법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대한민국 헌법 제11조 제1항)      



(이때 차별의 이유로 들고 있는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만 차별금지의 사유는 아니다. 이는 예시에 불과하다는 것이 우리 헌법재판소의 해석이다.)      


법학에서 이 규정은 통상 국가가 국민에 대해서 차별하지 말 것을 규정한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국가가 운영하는 조직, 국가가 행하는 사업 등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성별이나 장애,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한다면 이는 우리 헌법에 반할 수 있다. 반면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도 이 규정이 직접 적용되는지는 논쟁이 있다. 보통은 다른 법률 등이 매개자로서 개입하지 않고는 곧바로 그 ‘효력’이 개인들의 관계에는 미치지는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필기 고수인 내가 정리한 파일을 반 친구들에게 공유할 때 특정 지역, 특정 종교를 가진 친구들에게만 공유하기로 한다고 이것이 그렇지 않은 친구들에 대한 차별은 아니다(정확히 말하면 차별이기는 하지만 국가가 금지시키는 차별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법률적 논리의 밑바닥에는, 국가가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에 따라 이루어지는 사적인 행위에 까지 깊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가치관이 놓여있다.  


3. 동아리 활동과 사업의 차이     


야구 동아리를 남학생들만으로 구성하려는 대학생들의 사례를 보자. 우리는 이런 행위가 불합리하다고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차별은 아니다. 동아리를 결성하고 그 구성원을 누구로 할지는 개인들이 결정할 문제이며, 이것이 누군가에게 불합리할 수 있지만(야구를 잘하는 여성에게),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결단이기도 하다. 그 여성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혼성으로 하거나 여학생들만 모이는 야구동아리를 스스로 만들 수도 있으므로 차별로 인한 피해가 크다고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처럼 개인의 가치관이나 취향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사회의 각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차별을 인정해주게 될 때, 특히 사회적으로 각종 편견에 시달리거나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의 수많은 영역에서 소외될 위험이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들은 헌법의 평등권이 갖는 효력(원칙적으로 국가와 개인 사이에만 미치는 효력)을 개인들간의 사적인 관계로까지 확장시키는 별도의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여, 고용이나 교육, 상품이나 서비스의 판매와 교환 등 몇 가지 영역에 대해서는 개인의 취향이나 가치가 무엇이든 원칙적으로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차별금지법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법은 「남녀 고용 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이다. 이 법은 차별을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성별, 혼인, 가족 안에서의 지위, 임신 또는 출산 등의 사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채용 또는 근로의 조건을 다르게 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는 경우"라고 정의한다.

     

또 다른 대표적인 법으로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있다. 이 법도 마찬가지로 장애를 이유로 해서 고용 등에서 차별하지 말라고 규정한다. 두 법 모두 '사업주'에게 차별을 금지하지 말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사업주는 자신의 돈을 투자해 설립한 사업체를 자유롭게 운영하는 사람이므로 자신이 뽑고 싶은 근로자를 마음대로 뽑을 자유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차별을 사업주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할 때,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임신이나 육아를 앞둔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기 극도로 힘들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업주가 자신의 돈을 투자해 설립한 사업체라 할지라도, 그 자유라는 것이 사실 국가에 의해 공정한 시장경쟁이 보장되고 사업 활동에 필요한 각종 법률과 제도에 의해 구축된 ‘공동체적 노력’에 의지한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공동체 구성원의 일부가 겪을 가혹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차별을 금지할 의무를 지우는 일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4. 레즈비언 커플에게 케이크를 팔지 않는다면


동성애나 양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은 각국의 법령이 보호하는 대표적인 차별금지 사유이지만, 종교의 자유 역시 중요한 기본적 인권에 해당한다. 위에서 살펴본 케이크 판매자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실제 사건은 2012년 미국 포틀랜에서 있었다. 포틀랜에는 상품의 판매 등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구체적인 법령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 기사에 따르면 케이크 판매를 거부한 사람에게 주정부는 우리 돈으로 1억이 넘는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물렸다고 한다.       


위와 같은 결정은 정의로울까? 우선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 자체가 논쟁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의 사례자체가 현기증 날 수 있지만, 성적 지향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차별금지 사유임을 일단 인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 금지된다고 하더라도, 위 케이크 판매자의 사례는 그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를 차별에 관한 더 깊은 고민으로 끌고 간다.      


다음을 생각해보자. 가령 레즈비언 커플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카센터에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차량 수리를 해주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면 어떨까. 당연히 저 레즈비언 커플도 종교를 사유로 한 차별행위를 한 것이므로 똑같이 벌금을 받았을 것이다. 차별은 그 자체로 타인에게 기회를 박탈하고, 자존감에 상처를 주며, 자기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스스로 부정하게 만드는 가혹한 행위다. 우리의 자유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인정된다는 원칙을 생각해보면, 종교적 신념이든 동성애라는 정체성이든 그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다른 사람을 차별할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포틀랜드의 차별금지법이 상품이나 서비스의 판매에 있어 차별을 금지하고 있더라도, 그때의 상품은 개인의 인격과는 어느 정도 분리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내가 신발가게를 운영하면서, 나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애자나 이슬람교도에게는 신발을 팔지 않는다고 하자. 내가 만약 다른 곳에서 만들어진 것을 그저 내 가게에 전시하고 판매하는 소매상이라면 내가 그 신발을 팔지 않아서 지켜지는 종교적 신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저 내 가게에 들어오는 것이 혐오스러워서 판매를 거부한다면 이런 일차적인 감정적 혐오는 보호받을 종교적 신념 따위도 아니다(가령 고린도전서에서 신발은 이교도에게 판매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지도. 그런데 그런 구절이 있던가?).      


반면, 내가 신발을 만드는 장인이라면 어떨까? 또는 내가 케이크를 직접 만들고, 디자인하고, 평생을 바쳐 내가 만든 케이크를 통해 결혼하는 부부들의 삶을 축복하는 일을 진심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왔다면 어떨까? 위 레즈비언 커플 사례에서 만약 판매자가 그러한 사람이었다면, 그가 레즈비언 부부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 길러온 기술로 만든 케이크를 판매하기를 거부한 것은 적어도 차별을 판단할 때 참작해야 할 종교적 신념의 실천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여전히 차별행위이지만, 우리가 “이해할 만한 차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위와 같은 고려는 동성커플이라는 이유로 상품을 판매하지 않은 행위가 정당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개인이 각자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입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품 판매를 거부하고, 광장에서 동성애를 혐오하는 발언을 하며, 고용에서 동성애를 이유로 능력을 겸비한 구직자를 선발하지 않는 것과 같이 구체적인 해악을 끼치는 차별에는 절대로 반대한다. 다만 차별금지가 우리 시대의 큰 덕목이더라도, 그 실천에서는 법률적으로든 윤리적으로 우리에게 더 숙고된 판단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사안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다음 글에서는 차별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예들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외모에 대한 차별”이 낳는 골치 아픈 문제를 검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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