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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세계여행 Nov 18. 2019

히피에게 행복을 배우다(하)

요가수련원에서 배운 행복의 방법론

※ 라이킷과 구독, 그리고 댓글을 부탁드려요! 독자와의 만남이 작가에겐 가장 큰 행복입니다.

※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greeda/31)


6.
 인정한다.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편견으로 똘똘 뭉쳤다.

 리시케시를 가득 채운 히피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신묘한 정신문화의 동양에서 자아를 찾을래'라는 철없는 오리엔탈리즘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는 카페마다 그들이 늘어져있으니 선입견은 더욱 굳어졌다. 중국의 샹그릴라에서 유독 많은 서양인들을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샹그릴라는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영국소설에서 '동양의 숨겨진 낙원'으로 지칭된 이름이다. 그 신비로움을 더하기 위해 티베트 불교라는 설정도 덧붙였다. 중국정부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윈난성의 한 마을을 샹그릴라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오늘날 샹그릴라를 보면 동양의 신비가 먹히긴 하나보다.

 그래도 까도 알고 까야되니 아쉬람(요가수련원)에 등록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관찰해보잔 생각이었다. 하루동안 아쉬람의 모든 프로그램과 식사를 이용하는 비용이 1,000루피(한화 17,000원)다.

7.
 첫 수업은 새벽 다섯시 반의 명상수업이다. 어두운 강당에 작은 촛불 하나만 켜놓았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의 형상만 간신히 보인다. 목소리가 우아한 선생님이 호흡에만 집중하라지만, 수련이 짧은 나는 아침식사 메뉴가 궁금하기만 하다. 쉬는 시간 뒤에 아침요가와 뿌자(힌두식 제사)가 이어진다. 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경전을 읊는다.


 아침식사 시간이다. 식판을 챙겨 식당에 앉으면 배식을 해준다. 배식은 수련생들의 봉사로 이뤄진다. 아침은 간단한 볶음밥, 대추야자, 바나나, 수수죽, 두유다. 밍밍하다. 진수성찬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심심하다. 본격적으로 먹으려고 하니 옆의 수련생이 막는다. 함께 기도를 하고 먹는 거란다. 머쓱하게 숟가락을 내려놨다. 기도가 끝나면 밥을 먹는다. 다 먹고나면 직접 설거지를 해서 식판을 건조대에 넣는다.


아침식사(좌)와 저녁식사(우). 레스토랑을 기대한건 아니지만 뭔가 아쉽...


식사 후에는 네시반에 있는 요가수업 전까지 자유시간이다. 할게 없다. 내가 생각한 그림과는 너무 다르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자니 얻어가는게 없을 것 같다.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수련생들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최대한 친절할거 같은 사람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한 남성에게 물어보니 흔쾌하게 승낙한다. 그의 방에 초대받아 인터뷰했다.



8.

수련생의 방에 초대받았다.

그리다 :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옴카 : 저는 옴카(Omkar)입니다. 56살이구요. 젊었을 때는 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은퇴해서 요가를 배우는 중이에요.


그 : 어쩌다 아쉬람에 들어오실 생각을 하셨나요?
옴 : 전 은퇴가 조금 빨랐습니다. 은퇴 뒤에 어떤 일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차에 요가에 관심을 가졌어요. 하는 김에 제대로 배워보고자 2016년에 이곳에 들어와 300시간 수련했습니다. 이번 코스가 끝나면 일본에서 봉사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나중에 문화교류원을 세우는게 꿈이에요. 거기서 요가 재능기부를 하려면 더 많이 배워야할것 같아 두번째 코스 등록을 했습니다.


그 : 요가를 배우면서 삶이 달라졌나요?
옴 : 많이 달라졌어요. 도시에서 살때는 일에 치여 살았죠. 스트레스도 많고 신경도 날카로웠어요. 하지만 요가를 시작하니 차분해지고 마음에 깊이가 생겼습니다. 스스로에게 집중하게 됐죠.

그 : 수련원의 하루를 설명해주시겠어요?
옴 : 하루가 정말 깁니다. 새벽 다섯시 반에 아침명상이 있어요. 한시간 동안 명상을 하고 나면 아침요가가 이어집니다. 요가를 마치면 뿌자(힌두교 제사)가 이어져요. 그 뒤에 아침식사를 합니다. 오전에 지도자양성 수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후 네시 반에 또 요가수업을 들어요. 한시간 반 동안의 수련을 마치면 저녁식사를 합니다. 일곱시에는 요일별 프로그램이 있어요. 없는 날도 있지만 키르탄(kirtan, 찬송회), 삿창(satsang, 구루와의 대화) 등이 진행되요. 여기까지가 일과입니다. 일과 끝부터 다음날 아침식사까진 공용공간에선 사적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묵언수행이죠.

그 : 프로그램에 출석만 하면 수료가 인증되나요?
옴 : 수료는 출석과는 상관없죠. 출석은 100% 자율입니다. 수료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공부해야할 책의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는지 구두시험을 봅니다.

요가공부를 위해 공부해야하는 책들. 두께가 대학교 전공책이다.


그 : 책이요? 한번 볼 수 있을까요?
옴 : 그래요. 전자책은 요가경전이에요. 인도철학 중 요가의 사상적 기반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종이책은 아사나(asana,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요가의 신체 동작)와 아유르베다(ayurveda, 인도전통의학)가 주된 내용입니다. 각 아사나별로 동작을 완성하는 과정과 주의사항을 가르쳐요. 숨은 언제 쉬는지, 자세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사람별로 몸의 어디가 안 좋으면 어떤 자세는 어떻게 수정하는지 모두 알아야 합니다. 아유르베다는 기본 개념 및 철학을 익히죠.


두꺼운 책 안엔 이런 내용이 있다. 아사나별 동작 방법, 호흡법, 체크포인트, 효과, 주의사항 등이 수십가지다. 이런 아사나가 백개가 넘는다,


그 : 대학교 전공수업 분량인데요? 통과 못하면 어떡하죠?
옴 : (웃음) 다시 등록해야죠. 그래서 자유시간이 있어도 쉴 수가 없어요. 다들 열심히 해서인지 아직 떨어진 사람은 못 봤어요.

그 : 쉽지 않네요. 지인들에게 요가를 추천하세요?
옴 : 물론이에요. 설령 이렇게 인도에 와서 배우는게 아니더라도 요즘은 유튜브도 있고 학원도 많아요. 맨몸수련이니 어디서든 할수 있고, 꾸준히 하면 하루 2~30분 만으로도 효과가 있어요.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호흡이 어떻게 몸 속을 도는지 집중하면 잡념이 없어져요.

그 : 저도 요가를 배워야겠네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옴 : 요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삶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명상도, 요가도 모두 같은 맥락이죠. 한번쯤 해보시는걸 추천드려요.

그 : 소중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아쉬람에서 만난 사람들. 옴카와 그녀의 부인 우르술라(좌) 호주청년 다니엘(우)


9.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내 생각이 얼마나 짧은지 깨달았다. 시작은 막연한 환상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가 요가를 대하는 태도는 몹시 진지하다. 요가를 문화교류에 활용하겠다는 이를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철부지'로 매도하는게 얼마나 잘못된 시각인가. '요가 강사나 하면 되겠다'는 나의 냉소야말고 철없는 소리였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눈빛은 빛났다. 5주 이상 휴일도 없이 수련에 정진하지만 전혀 피곤해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남들과의 비교에 빠지지 않은채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요가를 하는 동안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팔과 다리가 정확한 위치에 있는지, 완전히 스트레칭이 되는지, 호흡할 때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집중하면 잡념이 끼어들 새가 없다. 

 요가입문서를 펴면 '요가는 경쟁이 아니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온다. 여기에 행복의 핵심이 있다. 자신에 대한 집중이다. 남들이 뭘 하는지, 뭘 원하는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떤지'다. 타인의 평가를 내면화해 스스로를 규정짓지 말고 자신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맞다, 틀리다를 따질게 아니라 그래서 좋냐 싫냐라는 말에만 답해야 한다. 질문은 간단하다. 요가를 배우겠단 생각만으로 인도에 날아온 히피들이 행복한 이유다.




10.
 저녁식사를 마치고 키르탄(찬송회)에 참여했다. 찬송가니만큼 신의 이름을 연호하는데, 인도인이 아닌 백인들이 부르는게 영 이상하다. 몇몇은 일어나서 춤도 춘다. 키르탄이 끝나고 구루에게 물어봤다.
 "가사가 어떤 뜻인가요? 종교적인(religious) 노래인건 맞죠?"
 "신의 이름을 바꿔서 부르는 거라 별 뜻은 없어요. 엄밀히 따지면 종교적인것 맞지만 배타적인(dogmatic) 느낌이라 좋진 않네요."
 "그럼 무슨 이름이 좋을까요?"
 "신에 대한 헌신(devotion)이 좋겠네요."
 순간 '아차' 싶었다.

키르탄. 뒷쪽에선 신이 나서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다.


11.
 힌두교는 4대종교 중에서 유일한 다신교다. 그러다보니 다른 종교의 신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너네 신도 맞고 우리 신도 맞아~ 나도 예수 믿어~'라는, 구렁이 담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가톨릭 선교사들이 수백년 간 기를 쓰고 포교를 했는데도 가톨릭이 소수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무릎꿇려서 강제로나마 개종시킬 수가 있는데,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하니 포교도 흐지부지 된거다.
 그래서인지 힌두교의 의식은 외국인을 배척하지 않는다. 아쉬람이야 외국인이 고객이니 당연한 거지만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정작 그들은 아무 신경도 안 쓰는데 나 혼자 서양인들이 '시바, 시바'(힌두교의 파괴신) 노래부르는걸 이상하게 여겼다. 인도인-힌두교 vs 서양인의 대립구도에 매몰된거지. 리시케시의 여행객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이들을 고깝게 본 것도 '얘네 이거 다 오리엔탈리즘이야'라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12.

 '게임을 하려다가는 너부터 게임에 빠질 거야.'

 드라마 '미생'의 대사다. '동양에 온 서양인'이라는 구분에 사로잡힌 순간부터 나의 인식은 왜곡되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즐길 수 없었다. '비신자가 같이 노래를 부르는게 맞나?', '관광객이 인도인보다 많은게 정상인가?'라는 식으로 가타부타 따지는 동안 히피들은 자기가 살고 싶은대로 살고 있었다. 하루종일 카페에서 늘어지든, 갠지스 강에서 래프팅을 하든, 요가를 수련하든 '내가 원하는대로' 산다는건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들을 오리엔탈리즘의 잣대로 판단했으니, 오리엔탈리즘에 빠진건 나였다.


 하루아침에 습관이 바뀌진 않지만, 이런 시각은 떨쳐내고자 노력 중이다. 남들이 옳녜 마녜 따지는 시간에 내 마음이 어떤지 살펴보는게 나의 행복을 위해 더 좋다는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히피들에게서 배운 행복의 방법론이다.




※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사막에선 폭풍우를 조심하세요."에요. 물이 귀하디 귀한 사막에서 폭우라니, 이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경우일까요? 11월 22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에 공개됩니다.
 '인증샷 관광'이 아닌 '생각하는 여행'을 지향하신다면 <그리다 세계여행>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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