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지역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어디를 가야할까? 보통의 나라라면 버스터미널에 가면 되겠지만 인도에선 오답이다. 정답은 '버스회사 맘대로'다.
인도의 버스터미널은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버스들만 이용한다. 이 버스들은 저렴하지만 에어컨도 없고 짐을 보관할 공간도 없으며 좌석은 좁다. 인터넷 예매도 안 된다. 한두시간 정도의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는 그럭저럭 탈만하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 여행자들이 한번 이동할 때는 최소 여섯시간에서 길게는 열두시간도 넘게 버스를 타야한다. 주말에 등산가자는 부장님에게 (있지도 않은) 애인이랑 데이트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의 용기가 아니고서야 로컬버스는 탈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대부분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 가능한 사설 버스를 이용한다.
문제는 이런 버스 업체가 한둘이 아니라 탑승지점이 죄다 중구난방이다. 업체별로도 다른데, 한 업체의 탑승지점도 굉장히 모호하게 설명되어있어 사람 미치게 만든다. 어디 사거리 인근, 어디 공원 근처 등등 듣고 있자면 장님 코끼리 만지는 기분이다. 도착하면 '여기서 버스를 탄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분명히 그 명칭 그대로 지도에 검색해서 갔더니 1km를 더 걸어야 하거나, 오라는 공터에 갔더니 대형버스만 50대라 하나하나 말을 걸어가며 버스를 찾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스트레스가 하도 심하니 나중에는 버스를 안 타려고 한달치 기차표를 전부 예매해서 기차만 탔다.
여기가 버스를 타는 곳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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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버스 뿐만이 아니다. 인도에선 하나로 정리되어있는 것이 없다. 버스와 기차예매 앱도 여러가지라 하나하나 다운받아서 테스트해봐야 한다. (그리고 그 중의 대다수가 외국인은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지역별로 상영되는 영화도 다르다. 우리에겐 뭄바이의 볼리우드(Bollywood)만 유명하지만 각 주별로 별도의 영화산업이 존재해 다른 결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상도 영화가 따로 있는 셈이다.
종교도 다르다. 힌두교가 절대강세인 와중에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까지 4대종교가 모두 모였다. 거기다 힌두교는 다신교이기 때문에 같은 힌두교도여도 믿는 신이 다를 수 있다. 대충 인기있는 신의 이름을 몇개 익혀둬도 또 처음 뵙는 분이 나와 '몰라뵀습니다'라며 어색하게 인사해야 한다. 믿는 신이 다르니 사원도 별도로 세웠다. 교세에 따라 어디는 큰 반면 어디는 골목 한켠을 비집고 들어간 잡초처럼 건물 사이에 껴있다. 이런 사원(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것들)만 한 동네에 수백 개다. 절, 교회, 성당, 모스크 가는거 다 좋아하는데 힌두교 사원은 발에 채이니 별 감흥도 없다. 그렇게 전도의 주체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런가, 지금도 힌두교의 핵심교리는 1도 모르겠다.
얼마 되지도 않는 땅에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자인교까지 종교장소만 7개가 있다.
제일 당황스러운건 언어도 통일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도에선 정부가 인정한 공용어만 22개다. 비공인 언어까지 따지면 그 수는 1,600여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는다. 문제는 이 통계도 언어와 방언의 정의에 따라서 기준이 달라, 통계마다 300여개에서 1,600여개까지 수치가 제각각이다. 발음만 조금 다른게 아니라 아예 다른 어순체계, 문자체계를 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북인도인과 남인도인이 만나면 말이 안 통해서 영어를 써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인도보다 더 넓고 사람많은 중국에서도 보통화만 배우면 말이 통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하지만 영어가 공용어라고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은 아니다. 다니다보면 이걸 공용어라고 말할 수 있나 싶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게 아니면, 기초적인 의사소통과 문장구조를 넘어서면 언어가 꼬인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수준이 높은,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학교에서조차 교재와 수업만 영어로 진행하고 일상적인 대화는 지역어를 사용한다. 조금이라도 복잡한 내용을 설명할라치면 언어가 부족해지는데, 과연 인도사람들이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은 대화를 나눌수 있을까 의문이다.
도시색깔도 파랑, 분홍, 하양, 노랑으로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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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 벌어지는건 강대한 통일국가가 없었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현대 인도의 땅을 모두 점령한 최초의 국가가 어디일까? 대영제국이다. 정확히는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제국이다. 전성기에는 프랑스와 페르시아를 합한 것보다 부유했다는 무굴제국마저 남인도를 모두 점령하진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확실한 장악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다. 중앙정부가 뭘 할라치면 협조는 커녕 훼방을 놓기까지 한다. 중국의 성장을 보고는 중앙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하니 지방에서 집단적인 반발이 일어나 무산됐다. 상대적으로 짧은 식민지배를 겪고도 영어가 공용어로 채택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확실한 주도세력이 없으니 정책이 힘있게 진행되질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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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의 힘이 약하니 공공재의 공급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내가 경험한건 교육과 철도다. 폭발하는 출산율 때문에 인도엔 아이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하교시간만 되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스쿨버스 때문에 도로가 막힐 지경이다. 이렇게 학교에 아이들을 꽉꽉 채워놓고도 인도의 문맹율은 아직도 26%다.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점에서 높은 문맹율은 사회발전에 걸림돌이다.
철도도 마찬가지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대단히 특별할 것도 없는 노선인데 걸핏하면 매진이다. 그래서 기차표는 최소 3일, 넉넉하게는 1주일 전에 예매해야 한다. 이렇게 부족한 공급을 인도는 '따깔(Takhal)'이라는 공식 암표를 통해 해결한다. 급한 사람은 돈 더내고 가라는거다. 노선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표의 2배~3배의 가격이다. 인구와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철도가 최적의 교통수단인데, 이마저도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게 인도의 현실이다.
시민의 교육과 빈부격차 감소를 책임져야할 정부의 영향이 미약하니 인도에선 아시아 최고의 부자와 다수의 극빈층이 공존한다. 인도 최고의 부자인 무케쉬 암바니(Mukesh Ambani)는 석유, 가스, 통신업을 장악하여 부를 쌓았다. 12억의 인구가 보장된 시장이니 이 인구가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면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이걸 모르는, 교육받지 못한 이들에게 시간은 나룻배의 노를 젓는 시절에 갇혀있다. 스마트폰 혁명은 누군가에겐 기회지만 누군가에겐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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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내가 인도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다. 내게 인도의 시간은 멈춰있다. 어떤 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인도만큼은 느릿느릿 변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난 운명론이 지배하는 그 멈춰있음이 싫다. 전통 혹은 구습은 여전히 인도의 발목을 붙잡는다.
미국드라마 '빅뱅이론'에는 네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그 중 한명이 인도출신의 물리학자다. 매주 인도에 있는 부모와 화상채팅을 할 때면 부모는 아들의 사생활을 캐물으며 '미국물을 먹지 말라'고 말한다. 서양의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한 이 장면은, 사리를 벗으려는 인도여성에게 '서양문화에 오염되지 마라'라는 경고로써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인도인 물리학자 '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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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도와줬던 아디티가 말했다.
"인도는 아주 젊은 나라야. 독립한지 80년도 안 됐고, 평균연령도 낮아. 비록 지금은 여전히 과거에 갇혀있는 나라지만,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다루면서 생각이 빠르게 변할거야. 난 내 나라를 믿어."
과연 인도의 미래는 그녀가 꿈꾸는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내가 인도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리를 입은 여인의 눈빛이 어른거린다.
※ 예고
매거진 <그리다 세계여행>의 다음 글은 "인도에서 불법체류자가 될뻔한 썰"이에요. 떠나는 날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인도. 여행 막바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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