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현철은 이제 가수라기보다는 복면가왕의 패널로 더욱 익숙하다. 그렇기에 설령 가수 김현철을 안다 하여도 그의 노래보다는 ‘복면가왕에 나오는 패널 중에서, 음악에 대해 정교한 평을 내놓는, 예전에 가수였던 듯한 안경 쓴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할 듯싶다. 하지만 10년 넘도록 발표한 음반이 단 한 장도 없는 가수에게 이런 모호한 표현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현재의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복면가왕 패널 출연자’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끔 다른 가수에게 써준 곡 몇 개를 제외하면, 변변찮은 곡 하나 내지 않는 가수에 불과하지만, 90년대부터 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작곡가이자 가수였다. 이소라의 음반을 프로듀싱하며, 그에게 수많은 곡을 써줬다. 또한, 자신 역시도 가수로서 많은 인기를 누리며, 여전히 많은 대중에게 널리 불리는 김동률이나 윤종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수였다. 그가 라디오 DJ로 오랜 기간 활동했던 ‘김현철의 디스크쇼’가 동시간대 인기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그들보다 더 인기 있던 가수였을지도 모른다. 이젠 가수보다 패널이 더 익숙한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김현철의 대표작은 1집(김현철 Vol.1), 3집(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그리고 이소라와 함께 한 ‘그대 안의 블루’를 꼽을 수 있다. 위 작품들은 김현철이라는 가수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다만, ‘1집’과, ‘그대 안의 블루’ 와 ‘3집’은 추구하는 바와 가치 평가에 있어 차이가 있기에 구분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시티팝 유행에 따라 여러 음악 애호가를 통해 회자되고 있는 1집(김현철 Vol.1)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이다. 89년 발표 당시 만 20세에 불과했던 김현철은 해당 음반의 모든 곡을 작곡, 작사, 그리고 편곡까지 해냈다.
음반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그의 어린 나이를 짐작케 한다. 첫 사랑과 떠났던 춘천 여행을 그리며 써낸 ‘춘천 가는 기차’와 고등학교 밴드부 시절에 만든 ‘아침향기’, 그리고 어릴 적부터 자신이 살았던 동네를 거니는 듯한 가사의 ‘동네’까지, 왠지 모르게 어리숙한 가사는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은 청춘의 풋풋한 기운을 물씬 풍긴다. 그러면서도 세련된 퓨전 재즈를 담뿍 품은 곡의 구성은 조동익, 함춘호 등 당대 최고의 세션을 만나, 원숙한 프로의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음악을 향한 열정이 꿈틀대던 청년의 설렘으로 가득 찬 첫 작품은 아마추어와 프로가 절묘하게 섞인 시대의 걸작이 되었고, 그렇게 김현철은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가 되었다.
1집은 어마어마한 호평을 받았고, 발표된 곡들 역시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김현철의 인기는 소소한 편이었다. 그를 한국 대중음악의 스타로 만들어 준 계기는 단연 ‘그대 안의 블루’일 것이다. ‘그대 안의 블루’는 동명의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OST로 제작된 곡이다. 김현철은 해당 영화의 영화 음악을 맡았는데, ‘그대 안의 블루’는 그 과정 중에 만들어졌다. 곡이 너무도 걸출했고, 두 보컬 또한 곡과 잘 어울렸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며 차츰 영화보다 곡이 더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 유명세는 실로 대단하여 발표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도 방송에서 가수들이 이 곡을 부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당시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던 무명의 가수 이소라의 첫 히트곡이며, 김현철은 이 곡을 통해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김현철은 자신을 대표하는 최고의 히트작 ‘달의 몰락’이 담긴, 3집(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을 발표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가 좋아하는 다른 남자를 ‘달’에 비유하며, 떠난 여자를 원망하는 ‘달의 몰락’의 가사는 매우 재밌다. 그런 가사에, 귀에 쏙 들어오는 쉬운 멜로디를 더한 ‘달의 몰락’은 당대 최고의 인기작이 되었다. 그가 보여주던 퓨전 재즈 풍의 미디움 템포의 곡으로 채워진 음반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3집은 몇몇 음악 팬에게는 아쉬운 평가를 받는 음반이기도 하다. 3집의 분위기는 그가 1집에서 보여주던 그것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달의 몰락’만 해도, 그의 이전 음반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락 느낌의 기타 솔로가 담겨 있다. 이은미와 함께 한 ‘우리 언제까지나’나, 유정연과 함께 만든 ‘음악은’은 ‘그대 안의 블루’부터 이어지는 김현철 특유의 팝 발라드를 보여주는데, 이 역시 초창기 작품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 몫한다. 물론 ‘언제나 그댈’이나 ‘오늘 이 밤이’는 그의 초창기 작품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그래도 스무 살이었던 1집 속 어리숙함과 원숙함의 조화가 선사하던 느낌과 차이가 있다. 풋풋함보다는 더욱 세련된 도회미가 느껴진다. 3집 안에서 엿볼 수 있는 여러 변화는 김현철로 하여금 인기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지만, 소수의 음악 팬들에게 아리송한 평가를 받게도 만들었다.
1집은 분명 80년대의 끝자락을 장식한 명반임에 틀림없지만, 아직 음악이 무엇인지, 음반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모르던 스무 살의 작품이었다. 통통 튀는 스무 살이 작품을 만드는 방식과 여러 작품을 프로듀싱하며 경험을 쌓은 성숙한 프로듀서의 그것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1집의 매력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원숙함과 그와 달리 풋풋한 곡의 내용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쩌면 그가 다시는 내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끝없는 1집과의 비교는 그 누구도 쉬이 범접할 수 없는 명반을 첫 음반부터 성취한 자가 피할 수 없는 문제일 따름이다. 3집은 앞으로 그가 만들 음악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이때부터 무르익은 그만의 브라스 편곡은 당대 최고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어쨌든 1집이 김현철을 혜성처럼 등장한 천재로 만들었다면, 3집과 그대 안의 블루는 그를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춘 가수로 만들었다. 이 두 작품은 발표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김현철이라는 이름을 대중이 기억하게 하는 흔적이자, 시티팝을 찾는 음악 매니아부터 음악에 문외한 일반 시청자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p.s.
19년도에 쓴 글입니다. 김현철이 시티팝을 통해서 다시 재조명되고 인기를 받고 있을 무렵에 작성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김현철이 음악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몇 년 사이 음반을 제작하며 다시 가수로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기에 위 글과 현재 상황이 다소 맞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새로이 쓰기에는 시간이 좀 흘렀기에 문장만 소폭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이 점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