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믿나요?”
“아뇨”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놓으며)
“간단한 거래를 하죠. 10달러를 줄 테니 영혼을 팔아요. 이 종이에 사인을 하면 이 돈을 가질 수 있어요. 이 거래를 받아들일 건가요?”
(머뭇거린다)
“그 머뭇거림이 인간의 모든 걸 설명해 주죠. 진화와 사회 통념이란 이름으로 두텁게 쌓인 응어리들이 강한 신념과 충돌하는 바로 그 순간요. 종교적인 영혼의 개념을 안 믿는데도 영혼을 팔아야 할지 고민하잖아요. 이성적 사고와 행동 사이엔 여전히 간극이 있죠.” (미드 <빌리언스> 시즌 5 3화)
미드 <빌리언스>의 타일러는 굉장한 투자가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매우 이성적인 두뇌로 투자하기 때문에
업계에서 그를 대적할 자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는 극단적으로 이성 쪽으로 치우쳐있는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의사 웬디 로즈가 영혼을 팔라는 말에 머뭇거린다.
종이에 사인을 한다고 영혼이 팔릴 리 없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며,
영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그는 주저한다.
타일러와 달리 나는 신의 존재를 믿는 기독교인이지만,
사실 타일러의 모습은 과거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가령 숫자 4에 대한 거부감이다.
지하철 플랫폼에 숫자 4가 있으면 한 칸을 이동했다.
추석에 성묘 가서 절을 하지 않아 왠지 모를 공포를 느낀 적도 많았다.
조상님이 노하시면 어쩌지.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변하기 시작했다.
4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것을 거부했고
장례식장이나 성묘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도 떳떳해졌다.
우상은 단지 나무나 돌, 철이나 금으로 만든 상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였을 것이다.
우상, 히브리어로 엘릴은 아무것도 아닌 것, 허무하고 무가치한 것, 보잘것없는 것, 인간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헛된 존재(사 2:20)이며,
사람이 숭배하기 위해 만든 형상뿐 아니라
하나님 이외에 마음속에 간절히 사모하는 생각이나 사상(요일 5:21)이다.
나는 4를 비껴가면서,
장례식장이나 성묘에 가서 조상님 걱정을 하면서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우상을 몹시 혐오하시고,
그것을 섬기는 자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대대로 멸족시켰다는 것을 알고도
웬디 로즈의 말처럼
진화와 사회 통념이란 이름으로 두텁게 쌓인 응어리들이 강한 신념과 충돌하는 그 순간
나는 머뭇거렸다.
그런데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상 숭배와 자신은 상관없다고 여기는 기독교인 중에는
과거의 나와 마찬가지로 4를 기피하고,
장례식장이나 성묘 가서 죄책감을 느끼고
어쩌면 특정한 속옷이나 양말을 행운의 부적으로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게 우상숭배가 아니다.
그것 역시 우상숭배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틀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하나님께서 숫자 4보다는 3을 싫어하시는 것 같다.
순전한 추측이지만.
“내가 너희에게 줄 그 땅으로 너희가 들어가 온갖 과실나무를 심으면 3년 동안은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아라. 3년 동안 그 나무의 과일은 부정하다. 4년째에 열린 과일은 어떠한 것이든지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 나 여호와에게 감사제물로 바쳐야 한다.” (레 19: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