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즈 루어만 감독, 니콜 키드먼, 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뮤지컬 영화를 원작으로 2010년대 팝 명곡을 추가해서 넘버를 더 풍족하게 채웠다. 바즈 루어만의 뮤지컬 영화에 등장했던 오리지널 넘버와 새로 추가된 노래들이 매시업 되어서 정신없이 쏟아져 나온다. 5분 동안 10곡이 넘는 곡을 메들리로 부르는 넘버 'Elephant Love Medley'는 그걸 해내는 배우들이 경이로울 정도다. 아무래도 원곡 가사에 익숙하다 보니 보는 관객도 우리말 번역 가사가 상대적으로 낯설고 잘 안 들리기도 하는데, 그건 이 뮤지컬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될 것 같다.
온갖 욕망이 뒤섞인 파리의 물랑루즈, 그 안에서 작가이자 작사가인 크리스티안과 화려한 다이아몬드로 무대를 빛내던 무희 사틴은 순수함과 열정으로 사랑을 하지만 그 사랑은 비극적인 끝으로 향한다.
멜로드라마의 내러티브로는 새로울 것도 없다만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시각적 요소가 뻔한 이야기에 새로운 뼈대를 세운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무대와 조명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바즈 루어만의 영화 속 장면이 무대 뮤지컬에선 어떻게 보여지는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고, 그런 면에서 이 뮤지컬을 위해 배우들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편집과 효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와 달리 무대 뮤지컬은 조명과 사운드 외엔 배우들이 실시간으로 책임지고 이끌어가야 하는 장면들이니 말이다. 그 호흡을 충실히 소화해내는 역량이 대단했지만 1막보단 2막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걸 보면, 개막 초기인 지금보다 시즌이 끝나갈 때쯤 다시 보면 조금 더 안정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 와중에 크리스티안을 연기한 홍광호 배우는 이완 맥그리거를 잊게 만드는 완벽한 순수의 크리스티안을 보여준다. 연기, 대사, 노래까지 어느 하나 중심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사틴을 연기한 김지우 배우는 다시금 성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뮤지컬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중심에 선 배우. 니콜 키드먼의 사틴을 생각할 때 더블캐스팅 된 아이비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김지우의 사틴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
꼭 언급하고 싶은 배우는 크리스티안과 함께 보헤미안 예술가 팀을 이루는 로트랙 정원영과 산티아고 심새인이다. 홍광호와 이 둘이 나오는 모든 장면들이 가장 안정감 있게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큰 박수를 받기에 마땅한 무대 장악력을 보여준다.
아시아 초연에 아직은 낯선 (잘 안 들리는) 번역 가사가 과제로 보인다. 그러나 끝내주게 화려한 무대와 조명으로 입이 떡 벌어지는 쇼를 보고 싶다면 망설일 것도 없이 '물랑루즈!' 안으로 들어가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