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인생(31)

군생활 시작!

by 강도르


보병학교



그때 당시의 나에겐 그곳에서의 생활은 낭만 그 자체였다.

임관식을 끝내고, 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보병학교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특전 반으로 편성이 되어 교육을 받게 되었고, 약 100명 가까이 되는 동기들과 일정을 함께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생활이 시작됐다. 4인 1실의 방이었지만, 보병 병과들이 받아야 하는 교육뿐만 아니라 장교로서 기본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일정이 꽤나 빽빽한 곳이었다.

주말에는 외박을 나가거나 할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밤낮 할 것 없이 교육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생활관을 함께 쓰는 동기들과도 마음이 잘 맞았고, 충분히 낯선 이곳보다도 더 낯선 곳을 향해야 하는 우리들이었기에 서로 뭉치기도 쉬웠다.





체력단련


동기들과 첫 번째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체력이었다.

특전사로 지원을 해서 온 동기들도 있었고, 대체로 체육학과인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처럼 예외로 법학과 같은 색이 다른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보병학교생활은 뛰고 또 뛰고, 그리고 또 체력단련이 중심이었다.


생활관 문을 나설 때는 턱걸이를 무조건 하고 나간다거나, 쉴 새 없이 팔 굽혀 펴기를 한다거나, 체력단련을 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생활이었다.


그 와중에 소대 전술훈련과 같은 복잡한 교과목도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밤에는 군사학 공부도 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질 일도 많았다. 그래도 비슷한 처지의 동기들이 서로 으쌰으쌰 하는 일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생활은 즐거웠다.



13년이나 지났지만 특별하게 무언가 크게 기억이 날 만큼 큰 기억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 정도로 무난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공부하고, 체력단련하고, 외박 나가고, 무난했던 만큼 즐거웠다. 하지만 언제나 위기는 있는 법





유격훈련


1주일가량 유격훈련을 실시하게 됐다.


유격이란 게, 굉장히 피하고 싶은 훈련이라고 친구들에게 많이 들었기 때문에 성가실 것이라고 어렴풋이 생각은 했지만, 중요한 건 유격훈련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을 하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훈련을 받는 동안 수시로 유격체조랍시고 사람을 많이 괴롭히긴 했지만 체력단련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즐거웠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운동을 과하게 하면 자신감이 과해진다고 했던가?



유격훈련 도중에 종합장애물 훈련 같은 것이 있었는데, 여러 관문 중에 6m 높이의 정상을 밧줄을 타고 올라가 찍고 내려오는 관문이 있었다.



특전사 부대에서는 외줄 11m 타기라는 체력단련 방식도 있었고, 6m 정도는 가볍게 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기 때문에 줄을 성큼성큼 잡고 올라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정상을 찍고 내려가던 도중 손바닥이 미끌해버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한 채 그대로 수직낙하를 해버렸다.


제동을 걸려고 있는 힘껏 밧줄을 잡았지만 이미 가속도를 받은 몸뚱어리는 멈출 줄 모르고 2초도 안 되는 시간에 6m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다행히 양 발로 균형 있게 착지를 한 것 같은데 오른쪽 발에 뜨거운 고통이 느껴졌다.


결국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았는데 오른쪽 다리를 확인을 해보려고 했지만 전투화가 벗겨지지 않았다.


급히 의무실로 갔지만 군의관도 발이 너무 심하게 부어서 전투화를 벗기기가 어렵다면서 꽤나 어려워했었던 기억이 난다.


힘겹게 전투화를 벗긴 후 모습을 드러낸 내 오른쪽 발은 이미 코끼리 발이 되어있었다.

골절이나 그런 건 보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인대가 심하게 파열된 것 같다며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지나가듯이 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흘러갔다.

'유급이 되면 어떡하지? , 자대 배치를 받지 못하면? 군 생활을 병원생활로 대체하게 되는 건 아닐까?'

병원으로 후송을 하는 것보다는 유격훈련을 끝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은 받는 방향으로 교관님에게 요청을 했다.

무리는 할 필요 없다고 교관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어떻게 해서든 정든 동기들과 함께 수료를 해서 당당히 자대로 가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다리를 반깁스를 하고,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동기들과 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하려고 했다.

다리의 고통이 심했지만, 다리의 고통보다는 이런 아무것도 아닌 훈련에서 다쳐버린 스스로가 창피해서 다리의 고통은 느껴지지도 않는 기분이었다.

동기들은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물었지만, 무리를 떠나서 다리를 심하게 쓰지 않는 훈련은 모두 참가하려고 노력했고, 내 다리로는 전혀 참여할 수 없는 훈련에는 동기들의 훈련을 지원하는 방향으로라도 훈련 참가를 속행했다.


모두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을 때 나만이 남겨져 뒤쳐지는 듯한 기분이 씁쓸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