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 설 수 없는 이유.
다리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아프지 않았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반복됐다. 다리를 절며 걸어서인지 반대쪽 다리마저 아프게 되는 상황도 찾아왔다.씻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어느 하나 편한 것이 없었지만 아픈 티를 낼 수 없었다. 더 이상 교육을 속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후송행이었기때문에 의지를 보여야만 했다.
특전사에 입대하기 위해서는 공수기본 훈련을 필수적으로 이수를 해야만 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전반에서도 반드시 공수기본 훈련을 받도록 특수전교육단으로 파견을 보낸다.
나에게 가장 큰 난관이었던 것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익스트림이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살았고 굳이 그런 것을 해야 하나라면서 모조리 피하면서 살았는데 결국 이렇게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공수기본 훈련이라는 게 쉽게 설명하자면 낙하산 사용법을 배우는 훈련이다.
교육과정은 사실 크게 별거 없다.지상에서 착지 시 요령과 낙하산 조종법 등을 배우는 지상훈련, 그리고 낙하산 산개 시 행동요령을 배우는 막 타워 훈련, 열기구 강하 및 항공 자산을 이용한 강하훈련을 마치고 나면 훈련은 끝마치게 된다.하지만, 무려 300m 아래로 자유낙하를 경험하다가 낙하산을 펼쳐야 한다는 게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무슨 기분일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두려웠다.
훈련이 다가올수록 밤마다 자유낙하하는 꿈을 꾸면서 잠을 설쳤고, 심적 부담감은 날로 커져만 갔다.
그러든가 말든가 야속하게도 시간은 다가오기만 했고 어느덧 특수전교육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찌 됐건 이제 물러설 곳도 없다. 발목에 반깁스를 빼버리고 압박붕대를 동여맸다.
피가 잘 안 통할 정도로 꽉 묶어서 발이 파랗게 변했지만 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훈련은 체력적으로 사람을 괴롭히기로 악명이 높았지만 물러설 곳이 없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좋았다.
일과 중에는 절대로 걸어서는 안되었고,계급장이 박혀있는 전투복 대신 훈련용 CS 복을 입었다.
언제 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이 지저분한 전투복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겐 적당한 복장이었다.
교관들은 지상훈련을 진행하면서, 유격체조의 변종인 공수 체조를 시키면서 교육생들을 괴롭혔다.
발목에 통증은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요령껏 잘할 수 있었다.
뜀걸음 도 중 발목에 부담이 오면 외발로 깡충거리며 뛰었고, 심심하면 날아드는 선착순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그래도 해가 지고 나서는 쉬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만큼은 자유가 보장되어 힘든 훈련을 참는데 많이 도움이 됐다.그때 당시 교육단이 리모델링 중이었던지라 비록 컨테이너에서 생활했었음에도 그 시간만큼의 아늑함이 있었다.
힘든 지상훈련을 마치고 드디어 막타워에 오르게 됐다.
인간 최대의 공포를 심어준다는 11m 막 타워다.처음에 올려다봤을 때는 '이게 그렇게 무서운가?'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막타워에 올라간 순간 알 수 있었다.
정말 죽기 딱 좋은 현실적으로 와닿는 높이라고 한다면 알기 쉬우려나? 어쨌든, 숨을 내쉬어야 하는데 흐읍 하면서 숨이 폐 속으로 몰려들어왔다. 안 뛸 수 없으니 눈을 감고 뛰어내렸다. 상상 속 느낌보다는 견딜만한 느낌.
자유낙하의 맛을 보았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을 걷을 수는 있었지만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내려가는데 발목이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고된 지상훈련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발목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지상에 착지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새벽부터 열기구에 올랐다 좁은 공간에 7명 정도가 탑승을 했던 기억이 난다.
상공 700m가 높아봐야....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지상이 까마득했다. 높은 긴장감과 무거운 낙하산과 두꺼운 산악복이 온몸에서 땀을 흐르게 만들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강하를 해야 하는데, 앞에 있는 산악 헬멧이 하나씩 사라져 갔다. 무언가 크게 각오를 불어넣을 것 같은 의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앞에 산악 헬멧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니 거친 바람 소리 사이로 나지막하게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뛰어
뭔가 항의를 하고 싶은 생각이 부풀어 올랐지만, 더 늦다가는 공포감에 사로잡힐 것 같아서,그냥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멀리 뛰어내렸다.
일만! 이만! 삼.... 입속으로 소리가 삼켜진다.
귀를 찢을 것 같은 바람 소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밀려들어왔고, 눈을 감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주변의 푸른 산들이 형상을 잃어가며 말려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오장육부가 먼저 땅으로 곤두박질치듯이 내려가는데 몸이 딸려내려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무력감이 3초간 지속되더니 고요한 바람 소리와 함께 몸이 평온해졌다.
낙하산이 펼쳐졌다.
산 능선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산개 검사!
땅이 마치 나를 향해 쑥쑥 자라듯이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충격에 대비한다는 느낌보다는 최대한 발에 힘이 전달되지 않도록 구를 생각이었지만 발목의 통증을 생각하면 몸에 힘이 들어갔다.
어떤 판단을 하기도 전에 이미 착지의 순간이 찾아와버렸다.
발목이 언제 닿을지 몰라 온몸에 힘을 빼려고 노력했지만 순간 벼락을 맞은 듯한 엄청난 통증이 발목을 타고 온몸을 강타했다.
착지를 한 것이다.
낙하산을 회수해야 했지만 발목에 고통으로 인해 다리가 후들거렸다.
심호흡을 하면 낙하산을 회수하고 돌아가자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야외에서 식판을 받아
적당한 곳에 앉아서 식사를 해야만 했는데 다리 위에 올려놓은 식판이 경련으로 계속 흔들렸다.
이걸... 3번이나 더 해야 한다고?
아찔했다.
항공기 자산이 모두 취소되어 열기구로만 총 4번을 강하를 해야 수료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진통제를 먹으니 고통은 잦아들었지만,뇌 속에 각인된 번개같은 고통은 지울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강하도 첫 번째 강하와 같이 강렬한 고통과 함께 착지를 했다.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이었지만 진통제와 이미 겪어본 고통이라 그런지 익숙해질 법도 했다.
세 번째 강하는 하늘이 도왔는지 착지 직전에 강한 돌풍이 불어서 낙하산을 크게 끌어가버려 몸의 중심이 끌려가는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발이 아닌 엉덩이로 착지했고 그것도 약 20미터 정도를 질질 끌려다니다가 낙하산 고정 후크를 풀어버리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네 번째 강하는 다리가 부서져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해서 그런지 의외로 수월하고 무난하게 끝이 났다.
긴장이 풀리면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지만 덕분에 공수기본 훈련은 수료였다.
각오와 의지가 결국 나를 넘어서서 승리를 하긴 했지만, 새파랗게 질린 내 발목과, 움찔 움찔하며 경련을 일으키는 내 다리를 보니 이게 잘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스멀 스멀 퍼져나갔다.
'그래도 나는 해냈다' 라는 말로 공수기본을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