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사회
초군, 보병학교를 다친 다리로 수료를 앞두고 있었다.
초군 교육을 수료하기 전에 정해진 자대에 실습을 하기 위하여 갔던 적이 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시골에 위치한 부대였다. 자연경관은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부대 자체는 '삭막함'이라는 단어와 아주 어울리는 곳이었다.
'11m 외줄 오르기' 기구가 하늘 높게 치솟아 있었고, 그 옆으로도 막 타워가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구조였다.
이제 내가 저곳에서 생활하게 됐다는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이 컸던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각이 잡힌 곳이 아닌, 여유가 있어 보이는 곳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했던 특수부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연병장에 모래가 많아서인지 줄곧 모래바람이 불었고 이따금씩 모래바람이 눈에 들어가기도 했다. 찡그린 얼굴로 하늘을 똑바로 바라보긴 어려웠다.
부대는 공사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부대 사람들 모두들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다지 밝지 않은 형광등 속에 모두들 피곤한 듯 누워있었다.
전투화를 들고 닦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총기를 손질하는 사람도 있었고, 무언가 통일된 일을 한다는 느낌이 없어서,당최 지금 시간이 뭐 하는 시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두들 반깁스를 하고 온 내 다리에는 관심이 있었는지 흘깃거리곤 했다.
부대에서 실습생들을 관리하는 교육장 교가 물었다.
" 다리는 어쩌다가 다친 거지?"
"유격훈련 중에 줄을 타고 올라가다가 낙상했습니다"라고 답하자마자 싸늘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 유격이라... 같잖은 훈련을 하다가 다치기도 하는구나"
순수한 감탄사 같은 말이었지만, 자존심을 밑에서부터 갉아대는 말이었다.
교육을 진행하면서도 내가 다친 다리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공수기본을 수료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유격으로 다리를 다치는 네가 이 부대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시종일관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필요한 교육들을 받고자 했지만, 더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명목하에 많은 교육에서 열외를 당했었다.
부대에서 들었던 제일 상냥한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면 "다친 다리 치료 잘 받고 와서 무사히 오너라" 정도였을까 어딜 가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각 개인의 인격이 차이가 난다는 것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시작부터 꾸겨진 채로 도장을 찍어왔고 자존감은 바닥을 굴렀다. 틈나는 대로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해보지만 마음이 진정되기는 쉽지 않았다.
다른 의미로 나는 기억에 남는 존재가 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온전한 상태도 아닌 나였으니 얼마나 물어뜯기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어떤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굉장히 눈치를 많이 봤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굉장히 기형적인 구조의 사회였다. 인간이 만든 사회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자연 날것의 그대로인 느낌이 강했다.
철저한 계급사회라기보다는 단순하게 약육강식에 가까웠다.
'소위'라는 계급은 그저 장식물 밖에 되지 않았고, 믿을 것은 내 몸뚱어리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온전치 않았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이 컸다. 불안한 마음 덕분에 내가 믿을만한 구석을 찾아야 했다. 최대한 빨리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눈치를 살폈지만, 결국에는 강력한 체력이 아니면 답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한껏 몸을 부풀려 다니려고 하였지만 그들에게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도 그들이 낯설었지만, 그들도 나를 낯설어했다. 낯설어했다는 표현이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를 공기처럼 취급했다.
그들과는 2년 동안 하나의 소속이 되어 활동하게 되었지만, 내가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은 없었다. 새로 소속된 곳의 중대장님은 나보다 5년 선배 장교였고 굉장히 강성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체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특유의 강성과 계급으로 중대원들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중대장에게 처음 들었던 이야기는 예상외의 이야기였다.
나는 앞으로 중대장을 보좌하고, 중대장이 없을 시 그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였다.
그런 나에게 중대장은 " 중대원들을 믿지 마라"는 이야기를 화두로 시작하였다.
중대원들은 나와 중대장을 제외하고 모두 부사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부사관들이 만들어나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취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같은 사람이고, 같은 소속으로 지내게 되었는데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내가 전입 와서 중대원들이 내게 보인 반응을 보면 중대장의 이야기가 정말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이런 사회적인 현상을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만 보려고 했던 게 나의 실수였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려고 했다. '부중대장'이라는 직책에 있었지만 막내처럼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항상 앞장서서 하려고 했지만, 중대원들은 그런 나를 만류했다.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청소하고 있던 빗자루를 가져가버리거나,
'부중대장님은 그런 일 안 하셔도 됩니다'라는 말들로 내가 하고 있던 일들을 뺏어갔다.
묘하게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도 들었고 기분도 좋지 않았다.
특별히 하는 것도 없었지만 퇴근할 때는 기진맥진해서 널브러져 있었던 기억이 한가득이다.
그래도, 다른 걸 떠나서 체력단련 시간은 좋았다.
자대 전입을 와서 1개월간 무리 없이 있었기 때문에 다리도 크게 통증이 있거나 하지는 않아서
가볍게 뛰는 것도 괜찮을 정도로 회복을 했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날 중대원들과 함께 구보를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역시 특전사는 특전사 뛰는 페이스가 답답하지 않고 굉장히 빨랐다.
하지만, 달리기는 자신이 있었다. 다리가 완쾌된 것은 아니었지만, 다리를 다친 후에도 계속해서 달리기를 연습했었고, 아픈 통증을 동반한 채로 달리다 보니, 통증이 없는 상태로 달리니 달리기 속도도 꽤나 빨라져있었다.
생각보다 내 체력이 괜찮았는지 중대원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 12명의 각기 다른 나이대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나를 인정한다고 생각해서 그런가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나이가 어린 막내 하사들도 나와 가까이 지내려고 하는 모습도 보여서 무언가 잘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대로 전입 온 지 한 달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특전사 훈련 중 가장 힘들다는 대대전술훈련을 가게 되었다.나는 그 훈련을 하면서 중대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곳이 어떤 곳인지 굉장히 노골적인 의도를 보고야 말았다.
훈련이 시작되고, 처음 해보는 훈련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모든 것들이 배우지 못한 것들이었고, 새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속에서 자리를 잡고 산악극복훈련을 했을 때까지가, 이 훈련에 대한 긍정적인 마지막 기억이었다.
높은 산 위로 올라가, 로프를 이용해 여러 가지 산악지대를 극복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고,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광경에 긴장감이 아닌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위험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다 극복할 만한 수준의 것들이었고, 조금 더 숙련된 모습으로 훈련에 임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전문가가 된 그런 느낌은 나를 더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술훈련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지도를 보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고, 대부분의 훈련은 야간에 이루어졌다.
산을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헤집고 다녔기 때문에, 정체불명의 가시넝쿨에 찔리는 것은 일상다반사였고, 산을 오르는 경사가 거의 수직에 가까워서 무거운 군장을 걸음을 떼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낮에는 땅을 파고 숨어들어 휴식을 취해야 했고, 밤새도록 대항군이 오지 않을까 청각을 곤두세웠다.
그때의 나는 훈련에 대해 진지한 자세였지만, 중대원들에게는 늘 하는 훈련이었고, 아무 일 없이 넘어가면 그만인 일이라는 입장 차이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책임감 없어 보였고, 긴장감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첫 훈련에서 느낀 중대원들에 대한 모습은 실망감이었다. 전문적이지 않았고, 사명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개인마다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과 사명감을 느끼는 부분이 다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 특전사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런 모습은 어린 나에게 납득되지 않았다.
1주일이 넘는 전술훈련이 끝나고, 부대 복귀를 위해서 천리행군을 실시했다.
진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음을 몰랐다. 이때만 해도 집에 간다는 사실에 들떴을 뿐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고, 필요한 물품들을 가득가득 군장에 담았다. 혼자서 일어서기 힘들 만큼 가득가득 채웠지만, 동갑내기인 중사가 내 군장을 보고 한마디 했다.
부중대장님, 그러다 죽습니다.
왜지? 10일 넘게 걸어가는데 필요한 것은 다 챙겨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나가던 중대장님이 중사의 말을 듣고는 갑자기 내 군장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다리도 아프다는 녀석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진짜 필요한 것 빼고 다 빼!
불필요한 것의 기준이 뭐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술훈련 때 쓰던 군용 물품들의 대부분을 부대로 복귀하는 차량에 실을 수 있도록 중대장님이 다 빼버렸다.
필요할 것 같았지만 어찌 됐건 군장의 물품을 절반 가까이 줄인 것 같았지만, 이 정도면 생각보다 가벼운 것 같아서 나중에 내가 필요한 게 생겼을 때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더 컸다. 여벌옷이며 속옷도 전부 빼어버렸고, 필수적인 장비와 여벌옷 침낭 같은 것 외에는 다 빼버렸으니 나에게는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중대 선임담당관은 출발하기 전에 외쳤다.
이번에는 우리 중대가 1등 해야 한다.
중대원들의 눈빛이 바뀌었고, 시작과 동시에 걷는 것이 아닌 달리기를 시작했다.
소총이 어깨에 부딪히는 것이 거슬릴 정도로 열심히 달렸다.
중대 하사들은 나를 보면서 외쳤다.
부중대장님!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이게 진짜 특전사 훈련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이, 약간의 조소를 띄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11월이 조금 지나간 가을이었지만, 내 몸에서 나는 증기가 눈앞을 가릴 정도로 오랜 시간 달리기 시작했다.
전투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쉬지 않고 다리를 움직였다. 산속의 능선 계곡 가릴 것 없었고, 시골 도로 등을 저벅 저벅 달려나가고 있었다. 한 시간가량 달렸다가 간단하게 10분씩 쉬고를 몇 번쯤 반복했을까? 선임담당관은 나를 보며 즐거운 듯이 말했다.
아직 할만하죠? 갈 길 멀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달려본 적이 없어서일까 정강이에 피로골절이 왔다.
다리가 땅에 닿을 때마다 망치로 정강이를 내려치는 느낌이 들었다. 고통이 과해서 신음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갈 것 같았지만 호흡을 고르면서 따라붙었다. 10일 중에 첫 번째 날이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남았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힘든 하루였다. 첫 번째 목적지에 도착을 하니 다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피로골절도 피로골절이고, 예전에 다친 다리도 다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휴식시간에 내 다리가 엉망이 된 것을 확인한 선임담당관은 어디서 얼음을 구해왔는지 내 발목을 마사지해 주기 시작했다. 도착해서 먹는 식사는 변변찮은 것이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머리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나니 그간 미뤄두었던 고통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
다른 모든 중대들은 걸어서 갔는데 우리 중대는 왜 뛰어서 간 걸까?라는 의문이 남았지만, 어찌 됐건 낙오하지 않았다는 그 기분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중대장님은 괜찮으실까? 하고 봤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모든 중대원들이 다리가 퉁퉁 부었고, 고통을 호소했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은 알겠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2일차가 시작되었다. 호기롭게 뛰기 시작하던 첫째 날과는 다르게 페이스가 절반 정도로 떨어진 빠른 걸음으로 바뀌었고, 정상적인 걸음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반이 안되었다. 이럴 거면 그냥 천천히 모두 다 가는 게 현명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 하사는 이미 다리를 절기 시작했고,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걷기 시작했다.
3일차 까지는 각 중대별로 이동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지역대가 모여서 함께 걷기 시작했다.
뛰는 것도 아닌데 5~9도를 오가는 추위에도 땀은 미친 듯이 흘렀다.
문제는 비가 내린 다는 것이었다.
비가 내리니, 내 몸에 걸친 모든 것들이 물을 머금었고, 무게는 배가된 느낌에 질척하게 물이 차버린 전투화는 끔찍한 기분을 선사했다. 밤에 내리는 비는 내 시야를 답답하게 만들었고, 휴식을 할 때마다 급속도로 체온을 앗아가서 오래 휴식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다리는 이미 부어버릴 때로 부어버렸고, 발이 땅에 닿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이게 첫 훈련이었기 때문에 낙오할 수 없었다.
지역대가 모여서 행군을 하는 시점에서는 중대원 중 3명이 걸을 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했다. 우리 중대장을 포함해서 말이다. 앞뒤 좌우를 봐도 앞을 보고 걷는 이가 없었다.
중대장은 본인이 먼저 포기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무리하지 말고, 앰뷸런스를 타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한번 타는 순간, 이제껏 참았던 고통들이 다 허사가 될 것 같아서 할 수 있습니다를 외치면서 계속해서 걸었다.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팠고, 너무 추웠다.
그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결국 저체온증이 왔었다. 너무 추워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닌 몸의 떨림을 버티는 수 말곤 없었다.
젖은 전투복을 벗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중대원들이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고통을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결국 진통제를 먹으면서 걸었다. 하나를 먹고 3~4시간을 버텨야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진통제가 나를 버티게 해줬지만, 하루 권장 섭취량을 넘기자 구토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리산을 넘어갈 때쯤에는 너무 힘들었다. 특히 날카롭게 생긴 돌들이 많이 쌓여있는 길이 나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옆에 흐르는 계곡을 쳐다봤을 때는 경관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저기로 떨어지면, 편해지지 않을까? 지금 시점에서 그냥 기절해서 저 옆으로 떨어지고 싶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길을 올려다보았다. 내가 넘어야 하는 길이 이렇게나 가파른데 왜 내 다리는 아직 걸을 수 있지?
순간 뒤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파이팅 할 수 있다 가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가 동시에 다시 외쳤다.
가자! !!
우렁찬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거짓말처럼 의지가 생겼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지역대원들은 돌아가면서 돌림노래를 불렀다. 군가가 아니라 그냥 아무생각 없이 부를 수 있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간단한 노래들을 쉴새 없이 불러댔다. 내 고통에 집중하기보다는 노랫소리에 집중했다.
걸음은 이미 뇌가 시켜서 가는 게 아니라 자연현상처럼 이어졌고, 마지막 날이 되자 주변에는 어떻게든 걷기 위해서 기다란 나무 작대기를 구해와서 지팡이처럼 들고 다니기도 했고, 모두들 씻지도 못하고 면도도 하지 못해서, 정말 산적과 같은 행색 그 자체였다.
멀리서 부대가 보이는 것 같은데 가까워지지 않음이 내 고통과 함께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빨리 이 걸음의 연속을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그냥 빨리 도착해서 내가 해냈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익숙한 풍경이 보였고, 어느새 그 삭막한 풍경의 부대가 보였다.
부대 정문에는 훈련을 가지 않은 다른 대대와 본부의 모든 인원이 양쪽으로 갈라서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군악대의 음악소리와 함께 엄청난 박수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부대로 진입했다.
해냈구나!
부대 연병장에는 막걸리와 맥주, 그리고 삼겹살이 놓여 있었다.씻지도 못하고 엉망인 거지꼴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기혼자들의 가족들은 엉망이 된 남편과 아빠들을 끌어안아 주었다.
보고 싶었다며 저마다 포옹을 하고 맞이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런 훈훈한 광경을 보면서 막걸리나 들이키면서 어찌 됐건 낙오하지 않았다고 안도했고,그런 나에게 선임 담당관은 나를 추켜세워주었다.
솔직히, 완주하지 못할 줄 알았다. 다리가 걸레짝이 됐는데도 움직이는 걸 보고 감탄했다.
중대원들은 내게 박수를 쳐주었다.
나를 인정해 준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안 것이지만 천리행군 1일차에서 달리기를 했던 것은 옛날부터 자행해오던, 부중대장 길들이기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래도 누군가의 인정은 기분 좋은 것이었다.
마음속으로 다음번에는 절대로 다리를 절면서 들어오지 않겠다며 속으로 다짐했다.
죽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