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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호정원 파란 Aug 25. 2021

제주 산호,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아무나 모르는 그곳, ‘산호 정원     


제주도 서귀포 강정과 법환마을 그리고 범섬 사이의 15~25m 바닷속. 현지 다이버와 산호 연구자들이 ‘기차바위 포인트’라 부르는 수중 암반이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마치 기차 모양과 같습니다. 군락지의 규모로 볼 때 범섬 북서쪽 외곽에 자리 잡은 기차바위는 폭 100m, 길이 500m, 73.800㎡의 면적을 갖고 있습니다. 단일 면적으로는 국내 최대의 연산호 군락지, 아무나 모르는 그곳이 바로 ‘산호 정원(coral garden)’입니다.


범섬 앞 산호 정원은 이름 그대로 연산호 꽃밭입니다. 제주 남부 연안의 연산호 다이빙 포인트 중에서 단연 최고입니다. 빠른 물살에 몸을 맡기고 기차바위를 유영하는 ‘펀 다이빙(fun diving)’은 숙련된 다이버의 ‘버킷 리스트’이기도 합니다. 분홍바다맨드라미나 큰수지맨드라미 등 육상의 맨드라미를 닮은 연산호의 형형색색 자태가 아름답습니다. 거품돌산호와 금빛나팔돌산호는 바닷물의 흐름에 촉수를 내밀고 먹이활동으로 여념이 없습니다. 각종 진총산호는 노랑, 분홍, 빨강 자태를 부채처럼 활짝 펼칩니다. 관상용 아열대 어종인 나비고기와 쏠배감펭은 연산호 꽃밭을 제집으로 삼았습니다. 소나무를 닮은 천연기념물 산호인 ‘해송(海松)’은 마치 추사 김정희의 고매한 그림처럼 그곳에 있습니다. 산호 정원은 개체 수와 생물다양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주 바다 최대, 최고의 연산호 군락지입니다. 


제주 서귀포 법환동에 자리잡은 범섬(Tiger Island), 어미섬과 새끼섬으로 구성된 범섬은 깎아지른 주상절리와 거대한 해식동굴이 일품이다.


범섬 어미섬 동쪽의 해식동굴. 범섬의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 중 한 곳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강정천 하구. 사진 중앙에 범섬이 보인다. 강정천과 범섬 사이의 바닷속에 기상천외한 산호 군락, 이른바 ‘산호 정원’이 있다.



부드러운 산호, ‘바다의 꽃’ 연산호     


그렇다면 ‘연산호’란 우리가 알고 있는 산호와 어떻게 다를까요. 연산호는 영어로 ‘soft coral’, 즉 ‘부드러운 산호’입니다. 문화재청은 2004년에 제주연안연산호군락을 천연기념물 제442호로 지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연산호란 부드러운 겉표면과 유연한 줄기구조를 갖춘 산호를 통틀어 말한다. 제주 남부 연안의 연산호 군락을 구성하는 산호충류는 무척추동물로 ‘바다의 꽃’이라 불린다. 특히, 연산호류는 육상의 맨드라미를 닮았으며 부드러운 동물체로 수축·이완 상태에 따라 크기 변화가 심하다. 연산호 군락지에는 돌산호류, 각산호류, 해양류 등의 다양한 산호류가 다양한 형상으로 어울려 서식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 지도. 제주 남단 연안의 대부분이 연산호 보호를 위한 천연기념물 지역인 셈이다. ⓒ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2004년에 바닷속에 서식하는 생물 군락지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섶섬, 문섬, 범섬 등 서귀포 해역(70,410,688㎡)과 화순항, 형제섬, 대정읍 등 송악산 해역(22,229,461㎡)을 천연기념물 442호로 지정합니다. 송악산 및 서귀포 해역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연산호 군락의 자연 상태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는 특징적인 곳으로 분포상 학술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각산호의 일종인 해송과 긴가지해송은 그 자체로 천연기념물 456호와 45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환경부도 ‘야생생물보호및관리에관한법률’에 따라 산호충류 15종을 멸종위기야생생물로 지정하였는데, 이 중에는 검붉은수지맨드라미, 자색수지맨드라미, 흰수지맨드라미, 연수지맨드라미, 밤수지맨드라미 등 5종의 연산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멸종위기에처한야생생물종의국제거래에관한협약(이하 CITES 협약)’은 푸른산호과(Helioporidae spp.), 관산호과(Tubiporidae spp.), 각산호목(Antipatharia spp.), 돌산호목(Scleractinia spp.) 전종을 국제적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국제거래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다이버에게 인기 많은 키 큰 가시수지맨드라미. 여기저기 기념 촬영으로 분주하다.


연산호는 덩어리, 잎사귀, 곤봉, 나무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군체를 형성하며, 골축이 없고 유연한 것이 특징이다.


기차바위에서 촬영한 분홍바다맨드라미와 진총산호류



전 세계 연산호 서식의 북방한계선     


한국의 남해안, 특히 제주 남부 연안은 아시아태평양 산호 군락지의 북방한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녹색연합과 함께 제주 연산호 모니터링에 참여한 미크로네시아의 사이먼 엘리스(Simon Ellis)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산호 분포 삼각형의 꼭짓점에 제주도가 위치한다고 설명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라자 암팟 553종, 괌 377종, 미크로네시아 폰페이 350종, 베트남 298종, 오키나와 200종의 산호가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제주도는 다른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달리 연산호 군락의 생태적 중요성이 인정된다고 합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주요 산호 군락지가 돌산호 중심의 ‘경산호(hard coral)’가 폭넓게 서식하지만, 제주 남부 연안은 이와 달리 연산호 군락지가 독특하다고 말합니다.


제주 남부 연안은 산호 군락지의 숨겨진 보물창고, 미지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논문을 통해서 한국 미기록종 산호가 보고됩니다. 문화재청이 2004년에 제주연안연산호군락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당시는 “제주 연안 해역에는 한국산 산호충류 132종 중 92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011년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산호충류는 총 148종(말미잘류 30종, 해양류 50종, 돌산호류 24종, 연산호류 16종 등)이며, 제주도 해역에는 총 102종의 산호충류가 분포하고 있다고 합니다(산호자원은행, 『바다의 꽃 산호』, 송준임 외, 2011). 7년 동안 16종의 새로운 산호가 보고된 셈입니다. 2021년 현재는 대략 170종 이상의 산호충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대략 17년 동안, 40종에 이르는 새로운 산호가 보고된 셈입니다.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의 생물학자 사이먼 엘리스. 수중 조사에 필요한 방형틀을 제작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의 산호 삼각형은 서쪽으로 인도네시아 라자 암팟과 동쪽으로 호주 대산호초 지대, 그리고 한국의 제주도를 연결하면서 완성된다. ⓒ 사이먼 엘리스

 

   

폴립(polyp), 완전하지만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빛깔과 모양이 화려한 산호는 식물로 분류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닷속에 뿌리를 내리고 가만히 있으니 당연히 식물처럼 보였습니다. 딱딱한 석회질 골격으로 구성된 경산호는 심지어 광물로 오인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프랑스 생물학자인 페이스넬(J.A.de Peysonell)은 산호가 여러 개의 촉수를 이용해 동물성 플랑크톤을 섭취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촉수에 숨겨진 독침을 쏘아 먹이를 잡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산호의 생태를 확인하였습니다. 산호의 기본 단위는 그리스어로 ‘많은 다리’를 뜻하는 ‘폴립(polyp)’입니다. 하나의 폴립은 한 개의 소화기관과 여러 개의 촉수로 구성되는데, 촉수가 6의 배수인 육방산호와 8개 혹은 8의 배수인 팔방산호로 구분됩니다. 육방산호에는 말미잘과 돌산호, 팔방산호에는 연산호와 해양류 등이 포함됩니다.


‘폴립’은 어린 시절, 스스로 유영하며 정착하는 완전한 생명체입니다. 그러나 폴립은 독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산호의 생존 전략은 협업과 공생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연산호는 ‘군체(conoly)’를 형성해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폴립이 모여 버섯 모양이나 나무 모양의 군체를 이루고, 또 군체들이 모여 산호 ‘군락(reef)’을 만듭니다. 앞서 말한 ‘산호 정원’은 전 세계의 대표적인 연산호 군락지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완전하지만, 동시에 전체를 이루어야 살 수 있는 부분과 전체의 관계는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하며 신비로운 산호 생태계를 유지합니다.


분홍바다맨드라미. 군체(colony)에 부착되어 있는 폴립(polyp) 하나하나가 독립된 생명체이다. 산호는 촉수를 이용해 먹이활동을 하는 동물이다.


말미잘과 돌산호류는 6배수의 촉수를 갖는 육방산호이다. 거품돌산호의 폴립은 6의 2배수에 해당하는 12개의 촉수를 가진다.


범섬 새끼섬에서 촬영한 돌산호류


기차바위에서 촬영한 진총산호류


산호로부터 시작되는 생명 공동체     


다시, 범섬 앞 산호 정원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주상절리와 해식동굴이 멋들어진 호랑이 모양의 범섬(tiger island)은 그 자체로 천연기념물이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다이버들에게는 연산호 생태여행을 위한 정거장과도 같은 곳이지요. 잠수 장비를 챙겨 입수하자마자 미역 모양의 감태 군락과 말미잘 서식지가 관찰됩니다. 운이 좋다면 큰산호말미잘과 공생하는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인 흰동가리 한 쌍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략 수심 5m 지점부터 30m 지점까지 연산호를 시작으로 돌산호, 진총산호, 해송 군락이 차례로 이어집니다. 산호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이왕이면 바닷물의 흐름이 빠를 때가 좋습니다. 산호는 조류가 없을 때는 폴립을 펼치지 않고 움츠려 지내다가 조류가 강해지면 조류에 실려 오는 플랑크톤을 사냥하기 위해 폴립을 활짝 펼칩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상승으로 쏠배감펭의 개체수가 크게 늘었다.


산호 군락의 달고기


큰수지맨드라미와 아홉동가리


긴가지해송과 무늬가시돔. 무늬가시돔은 산호나 해조가 무성한 암초 지대에서 음신하며 살아가는 열대 어종이다.


소나무 모양의 해송 사이의 노랑자리돔. 자리돔과 같은 작은 물고기를 노리는 대형 등푸른 물고기들이 호시탐탐 아래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범섬 앞바다는 산호만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정원은 아닙니다. 폴립이 모여 군체를 이루고, 군체가 모여 산호 군락을 이루듯이, 산호 군락은 동시에 다양한 생명을 잉태하고 부양합니다. 연산호 군락을 곳곳에 자리돔, 주걱치, 줄도화돔이 은신합니다. 각종 나비고기는 연산호 군락 주변에 모여 있고, 군데군데 호박돔과 벵에돔 떼가 보입니다. 이들과 함께 멸치와 전갱이가 떼 지어 급하게 이동합니다. 어린 물고기를 취하기 위한 대형 줄삼치, 가다랑어, 방어 떼의 날렵한 사냥도 시작됩니다. 갯지렁이와 갯민숭달팽이, 바다거미와 새우, 게 등 각종 갑각류는 산호 군락에 의지하며 풍부한 해양 생태계를 이룹니다. 폴립으로부터 시작된 산호 생태계는 ‘산호 정원’에 깃든 생명을 아우르며 하나의 전체를 이룹니다. 아름다운 공생과 조화로운 삶이 산호로부터 시작됩니다.


산호 사이에 은신한 쏨벵이를 응시하는 다이버


 

제주 산호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화여대 산호전문가들은 『천연기념물 제442호 제주연안연산호군락 산호 분포조사 통합보고서』(2009.11)에서 섶섬~지귀도 지역에서 46종, 화순항~형제섬~송악산 지역에서 42종, 강정~범섬~문섬~섶섬에서 79종의 산호충류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타 정점보다 ‘산호 정원’의 탁월한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주 남부 연안의 연산호 군락 중 최고 보전등급인 V등급을 부여하면서 범섬과 산호 정원을 잇는 ‘범섬 북서쪽 외곽’을 연산호 군락지 핵심지역으로 제안합니다. 연구진들이 최고 보전등급인 V등급을 부여한 곳은 단 두 곳에 불과한데, 그곳은 ‘범섬 북서쪽 외곽’과 ‘서귀포항 남방파제 앞’ 연산호 서식지입니다.


이화여대 전문가들은 문섬과 서귀포항 남방파제 지역, 범섬과 산호정원 지역, 섶섬과 검은여 지역, 사계 및 송악산 지역 등 4곳을 우수군락지로 제안한다.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그러나 연산호 군락의 으뜸인 이곳도 인간의 간섭으로 지속해서 위협받고 있습니다. ‘서귀포항 남방파제 앞’의 연산호 군락지는 서귀포항 외곽방파제 확장공사로 상당히 훼손되었습니다. 서귀포 관광잠수함은 문섬 북쪽의 연산호 군락지를 관람하기 위해 산호 군락지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며 산호와 부딪히기도 합니다. 천연기념물인 문섬과 범섬의 낚시, 어업, 레저 행위는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가이드라인도 없습니다. 산호 정원에 닻을 직접 내리거나, 자리돔을 잡기 위해 그물로 산호 정원을 훑기도 합니다. 산호를 칭칭 감은 그물이 산호 정원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범섬 새끼 섬의 1m가 넘는 가시수지맨드라미가 낚싯줄로 훼손되기도 하고, 기념 촬영을 마친 다이버의 오리발에 잘리기도 합니다.      


특히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연산호 군락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강정마을 앞바다에 서·남방파제와 동방파제 등 2km가 넘는 물리적 구조물이 건설되면서, 케이슨 투하와 부유물로 인한 파괴는 물론 조류 변화에 따른 직접적인 훼손이 발생하였습니다. 서방파제 서쪽의 강정 등대와 동방파제 동쪽의 서건도 연산호 군락지는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범섬과 산호 정원 역시 선박 운항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훼손이 예측됩니다.


필자와 사이먼 엘리스


강정등대 수심 15m 지점. 필자는 2012년에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SaveJejuNow 등의 단체와 함께 제주 해군기지역의 연산호 군락을 조사한 적이 있다.


제주 남부 해안의 ‘제주연안연산호군락’, 특히 강정~법환~범섬 사이에 위치한 ‘산호 정원’은 나라 안팎에서 인정한 자연유산입니다. 국내의 문화재청, 환경부, 해양수산부, 제주특별자치도가 관련법에 따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며 CITES 협약이 지정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 분포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연산호 군락지에 대한 기본적인 모니터링과 관리계획은 부재하고, 행정은 공백 상태입니다. 보전 계획은 없고 이용 계획은 때마다 언론에 발표됩니다. 제주 산호가 위태롭습니다.     


산호 정원은 그곳에 존재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주 산호,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야 합니다.


ㅈㅈㅅㅎ,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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