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는 하루
오늘도 휴대폰이 울린다.
남편이나 친구들은 이름을 먼저 부르지만, 부모님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다. "딸~" 그 한 마디에 담긴 안도감. 가끔은 "우리 공주~"라는 호칭에 여전히 얼굴이 뜨거워지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사랑만큼은 변치 않는다.
하지만 그 외의 전화들은 저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티애 작가님이세요?”
“리와인드 대표님이신가요?”
“커피박으로 만드는 곳이죠? 네, 그리너오브젝트입니다.”
마치 내 안에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어떤 날은 나 자신도 혼란스럽다. 오늘의 나는 누구였을까, 하고.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하나의 이름, 하나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명확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혼란이 아니라 자유였다는 것을.
세상은 우리에게 하나의 길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하나의 일에 집중하고, 하나의 전문가가 되라고. 하지만 나는 그 틀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정하는 대로 시간을 설계하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러 개의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캘리그라피 작가이면서 회사 대표이고, 또 커피박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 그 모든 이름이 결국 하나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마음에 드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변화 없는 안정된 시간이 보장될지언정, 가슴 뛰게 설레는 순간이 찾아올까?
완벽한 준비와 시작은 없다. 일단 시작해야 한다. 시작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고, 걸으면서 길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한 가지 일을 오래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맥락 안에서 변화 없이 반복되는 것들에 과도한 지루함을 느낄 뿐이다. 아무래도 ADHD 성향이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어떤 일을 기계적으로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일은 더 이상 내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는다.
어쩌면 불안정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한 선택들을 후회해 본 적은 거의 없다. 나는 정해주는 대로 사는 길보다는 내가 정하는 대로 내 시간을 설계하고 살고 싶다. 그 선택을 위해서라면 책임져야 할 일들과 도전, 때로는 삽질까지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
고등학생 시절이 가장 지루했다. 세상이 정해놓은 답을 나도 똑같이 말해야 한다는 것.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규칙들을 일단 외워야 하고.내가 틀렸다며 빨간 펜으로 그어지는 선을 볼 때마다 단순한 지식이 아닌, 나 자체를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도 나만의 방법으로, 내가 만족할 만큼 해결하면 그만이지 않을까.
나는 경쟁에도 취약하다. 제로섬 게임이 시작될 것 같으면 즉시 게임오버를 선언한다.
나를 돌보기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들의 동향까지 파악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그냥 나는 나에게 충실하고 싶다.
“요즘 바쁘시죠?” 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나는 스스로의 게으름을 잘 안다. 일상을 단순화하는 과정은 사실 내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게으른지를 보여주는 일일 수도 있다.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거나 소음이 크면 금세 예민해진다.
주변의 모든 목소리와 행동들이 눈과 귀에 떠돌아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곳을 찾아다닌다.
조용한 새벽, 조용한 카페, 조용한 마음. 그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불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 모든 이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지만, 이 불완전함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앞으로 나는 또 어떤 이름으로 불릴까. 그 설렘만으로도 오늘이 의미 있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