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생각이 정말 많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내 가슴을 뛰게 하지도 않았다.
쳇바퀴처럼 끝도 없이 돌아가는 일상이 그저 무료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엔 뭔가 모든 게 늦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내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숨 막히는 답답함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쯤 시간이 흘렀을 때 친구와의 약속으로 카페를 갔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던 나는 우연히 책꽂이에 있던
<가시고기>라는 책을 발견했다.
가만히 앉아서 책 읽는 걸 싫어했던 나는 예전부터 책꽂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미묘한 감정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열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읽었다. 눈물이 쉴 틈 없이 흘러내렸다. 책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바로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고 마지막 장까지 한자리에서 다 읽었다.
가슴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이 모두 후련하게 풀어지는 것 같았다.
아직도 가슴에 남는 구절이 있다.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누가 머리를 한대 크게 내리친 기분이었다.
나는 왜 도대체 왜
"시간이 없다"라는 변명거리도 안 되는 것을 이유랍시고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았던 걸까?
나 자신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은데 왜 감정을 앞세워 먼저 슬퍼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1분 1초가 간절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뭘 했을까?
그날부로 난 다짐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소중히 여기자고,
정말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기에 내 인생의 마지막이 오늘이 될 수도,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슬플까?
이렇게 말해도 정말 헛되이 보내는 날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린다.
확실히 예전보다 달라진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가시고기>이 책을 시작으로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4년이 지난 오늘도 열심히 책을 읽고 있다. 이제는 의무적으로 읽는 책이 아닌
'내 모든 감정을 요리하는 책"으로 정의되었다.
내가 힘들고 괴로울 때 그 어떤 것보다 내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제는 책이 '숨' 쉬는 것과 같은 것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처음엔 소설은 너무 빨려들어 헤어나오는 게 힘들어서 에세이, 산문집부터 시작했다. 특히나 여행 산문집은 내게 큰 설렘이었다. 여행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책만 읽으면 마치 책에 나온 여행지에 와 있는 기분이 들고, 그곳의 향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인문학, 철학에 관심이 커져서 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는데, 요즘 철학책은 정말 쉽게 잘 풀어져 있어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책은 사람에게 영양제 같은 역할을 해준다는 걸 느꼈다. 독서를 시작하는 건 참 좋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