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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이버스 Feb 24. 2016

IT 15년 썰 - 6

RSS넷 / 네이밍의 낭만

플래닛을 개발하고 나서 은근히 '서비스 개발은 2달' 공식이 생겨버렸다.


플래닛을 2004년 8월 말 오픈했으니, 

2004년이 좀 남네?

그리하여, 2004년 12월 29일, RSS웹 리더를 오픈했다.


다음 RSS넷


RSS(Rich Site Summary) 는,
콘텐츠 제공자(뉴스나 블로그 등)들이 콘텐츠를 XML 형식의 API 로 제공해서,
구독자들이 그 API(RSS Feed)를 RSS 리더에 등록해두면, 
여기저기 다닐 필요 없이 RSS 리더 한 군데에서 관심사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한참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이었고,

당시의 RSS 리더는 주로 설치형 애플리케이션으로,

IT업계 얼리어답터들에게 인기가 시작되고 있었는데, 

웹 리더는 그다지 없는 상황이었다.


RSS 리더를 웹으로 서비스하게 되면,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구독자가 있는 인기 있는 콘텐츠를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다른 유저에게도 소개/공유하게 해준다면, 

지식과 관심의 전파가 효과적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편리함과 즐거움을  얼리어답터뿐 아니라 대중에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편, RSS 개념은, 저작권 문제가 큰 이슈이기도 했다.)


어쨌건 이번엔 '2명이 2달 동안' 개발했고,

무엇보다 오픈 날짜가 12월 29일!!! (제정신이 아니고만)


그러나 역시, 난 재미있었다~;;

(돌아보면 나는 거의 항상 재미있었다... 미친 긍정력)


개발 중에 기억나는 건,

- RSS 에도 버전이 다양해서, 다양한 버전을 커버하려 애썼던 일.

- XML parser 라이브러리가 성능이 잘 안 나와서 튜닝한 기억.


그리고, 가장 컸던 건,

낼모레면 새해인 12월 29일에 오픈은 했는데, 

유저들이 생각보다 많이 사용해주셨고, 

그에 따른 DB(데이터베이스, Database) 과부하로 인해 서비스가 매우 버벅거려서,

DB 구조를 대대적으로 바꾼 작업이었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개선 포인트가 보여서 Database 구조 변경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그때 개발 팀장님의 "가능하겠어? 무리인 건 아니예요?" 라는 걱정 어린 질문에,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어요. 큰일 아니예요" 라고 자신 있게 지르고 디비 설계를 완전히 다 뜯어고친 기억이 난다.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진행했는데 돌아보니 어찌 그리 용감했나 싶다.


그리하여, 2005년 1월 1일 새해 첫 해가 뜨는 걸 사무실에서 봤는데~

(이때가 유저가 제일 없는 시간이라  이때 작업을 진행했다)

업계에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서비스 모든 기능이 중단되는 경우 등, 규모가 큰 작업이면 3시~6시가 가장 좋고, 
중단되는 기능이 가볍거나 짧게 멈춘다면 일하는 사람을 위해 1시~3시에 작업을 하곤 한다.


그리고 서비스를 내리고 걸어둔 작업 공지에 새해 첫 해와 함께 작업하는 사진을 올렸었다.

(이런게 가능한 시절이었다)

RSS넷 장애공지에 올렸던 이미지(잘도 찾았다)

저 4명 중 누군가의 핸드폰을 정수기 물통 위에 얹어두고 찍었던 소소한 기억까지 난다.

(폰에 카메라가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이었던 듯. 두 명은 담당 개발자, 두 명은 응원? 차 함께 있어준 동료)


이때 벌써부터 나름 팬(?)들이 계셔서,

우리가 작업하면서 장애 공지에 사진을 올리니 디씨인사이드(기억이 정확 치는 않음) 등에 응원을 써주시고, 

우리는 다시 장애 공지에 그에 대한 대답 올려드리고;;; 그런 식으로 대화(?)를 나눴다.


나름 낭만적인 기억이지 않나.




'개발자의 낭만' 하면 또 할 얘기들이 좀 있는데,

우선 이전 글에도 잠깐 등장했던 이스터에그(서비스에 몰래 숨겨둔 개발자의 메시지. 유저가 특정한 액션을 하면 동작한다)가 그렇고,

프로덕트의 버전 명도 그렇다.


네이밍 보소.. 이런 낭만적인 엔지니어 같으니


안드로이드는 군것질(도넛, 젤리빈, 키켓, 롤리팝~)이고, 

OS X 는 고양이 계열(팬더, 표범, 사자...)을 거쳐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 명소로 지어나가고 있고.

  


자바는 재미없지만, 이클립스는 별들의 이름으로 발전 중이다.


다른 업계도 그럴 수도 있지만, 

IT 업계에서는 네이밍의 재미를 다양한 부분에서 접할 수 있는데,

프로그램 언어 이름부터 재미있다.

Perl(진주), Ruby(루비), Python(뱀), Java(커피)... 

영어라 그렇지 한글로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상황.


서버의 호스트네임을 짓는 재미도 쏠쏠한데,

서비스의 특성과 관련이 없는 호스트네임 중에, 내가 지었던 이름들은,

woori(우리), garam('강'의 우리말), 

magpie(까치), eagle(독수리), coco(닭;), egg(알), 

nimo(니모), kin(즐) 등이 기억난다. 


kin 경우는  '즐'인데, 이걸 알면 일단 연식이 있으신 분?

woori 서버는 부를 때 woori서버인지 우리(our)서버인지 가끔 헷갈렸었다. ㅎㅎ

(그리고 요즘은 이런 식으로 짓지는 않는다. 

시스템엔지니어링/인프라 담당멤버들이 구별하기 힘들어서 싫어 하신다;)


프로젝트 이름도,

전체 프로젝트 이름, 혹은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작은 진행 단위(예를 들면 sprint)의 이름도 다양한 방식으로 짓는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현재 돌고 있는 프로젝트는 

Thor(토르), Hammer(망치. Thor 의 서브 프로젝트), Captain(캡틴 아메리카), Loki(로키), QuickSilver(퀵실버) 등등이 있고,

그밖에 위스키 이름으로 짓기, 팀 멤버 이름으로 짓기 등, 둘러보면 참신한 네이밍 풍년이다.


최근에 흥미로웠던 네이밍은,

Tenderloin(안심), Sirloin(등심), Shortloin(채끝살)로 이루어진  서비스였다. (소고기와 전혀 관련 없는 서비스)

영어로 부르면 그럴 듯도 한데 한글로 부르면 확실히 재미가 있다 ㅎㅎ 이런 깜찍한 사람들...


일을 재미로 승화시키는 이런 센스, 좋다.




다시 돌아와서,

RSS넷의 경험에서 또 하나 눈에 뜨이는 부분은 

웹 API 에 있어서, XML의 위상 하락이다.


XML(Extensible Markup Language) 은 1996년에 시작된 텍스트 포맷인데,

2000년대 중반  이후 Web 2.0 시대에 javascript 붐을 타고 떠오른 JSON(JavaScript Object Notation, 1999년에 표준 발표) 포맷에 웹 API 용도에 있어서는 완전히 밀렸다.

(지금은 또 다른 포맷들도 치고 올라오고 있지만)


의외(?)의 시대 환경에 의해 판도가 바뀌는 대표적인 사례이고,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다.


이번 얘기는 여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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