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켜면

붙잡고 싶은 기억들

by 초록테이블

딸깍 스위치만 켜면 누군가가 그 안에서 계속 새로운 이야기와 노래를 퍼올려줬다. 나 보다 어린 사람들은 낯설겠지만, 인터넷도 없고 스트리밍 서비스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라디오는 음악을 풍성하게 향유할 수 있는 보물창고였고, 특정 프로그램 하나만이 아닌 여러 군데를 자유롭게 배회하며 푹 빠져지냈다. 오전에는 유열의 음악앨범, 오후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이금희의 가요산책, 저녁에는 별이 빛나는 밤에, 성시경의 푸른밤, 새벽에는 영화음악.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가수들이 직접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줄로만 알았다. 당연히 라이브라고 믿은 이유는 무엇인지. TV방송에서도 라이브를 하니 라디오도 방송국이니까 당연히 라이브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이 프로그램에서 방금 노래가 나왔는데, 다음 프로그램에서 또 나오면, 이 가수 정말 바쁘겠다 생각하며 열렬히 응원했다.


라디오를 통해 잘 몰랐던 가수를 알게 되고 맘에 쏙 드는 노래를 발견하면 제목을 꾹꾹 눌러 적어두었다. 이미 앞부분에서 제목을 얘기해서 놓치는 경우를 대비해 들리는 대로 몇 줄의 가사를 적어두기도 했다. 가장 고마운 디제이는 노래 시작 전과 끝나고 나서, 이렇게 두 번 제목과 가수를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다. 친절한 디제이.


제3세계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은 또 다른 흥분이었는데, 라디오에서만 가능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남미 어느 나라의 가수와 프랑스의 가수를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나를 상상 속 여행지로 데려가곤 했다. 라디오가 아니었으면 나는 에디트 피아프를 모르고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모르는 청소년기를 보냈겠지. 덕분에 어릴 적 듣던 음악을 지금은 LP로 듣기도 한다.


라디오에는 사연이 있었다. 전국에서, 어떤 때는 해외에서 날아오는 사연들. 라디오의 사연이 좋았던 건, 한 명 한 명이 모두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대단하거나 심각하거나 놀라 나자빠질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 이야기는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공감했다. 소소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시절이었다.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서인지 나는 자주 웃었고 자주 울었다.


나도 사연을 보낸 적이 몇 번 있다. 확률로 치면 열 번 중 일곱 번은 방송에 소개된 것 같다. 지금은 기억이 가물하지만, 유열의 음악앨범에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버스에서의 단상을 써서 보낸 것 같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내 이야기 같지 않았고 내가 쓸 때 보다 더 근사하게 느껴졌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선물도 몇 번 받았는데, 이금희 님의 프로그램에서 포트넘앤메이슨 홍차 세트를 받은 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전까지는 브랜드 홍차를 마셔본 일이 없어서, 하나씩 우려먹을 때마다 매번 신중히 음미했고 디제이, 피디, 작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셨다. 그리고 내 글이 이 정도의 선물을 줄 만한 가치가 있나 보다 생각하면서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어떤 프로그램은 냉장고도 주고 TV도 준다고 했지만, 선물을 이유로 청취하는 프로그램을 바꾸지는 않았다. 의리가 있지. 오히려 이 방송을 더 잘되게 하고 협찬을 많이 받게 하기 위해서는 많이 알려져야 한다며 주변에 추천만 열심히 했다. 순수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예전만큼 라디오를 자주 듣지는 않지만 문득 생각나면 휴대폰 어플로 라디오를 켜본다. 여전하다.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사연을 전하고, 음악을 신청받고, 가만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오프닝 멘트가 있다.

내가 오늘자 오프닝 멘트를 쓴다면 이렇게.


"오늘을 가만히 되돌아봤어요. 예쁜 것이 뭐가 있었을까 떠올려보았죠. 아침 산책에 따라나와 헥헥거리는 작은 강아지, 서둘러 가을을 준비하는 낙엽들, 앞코가 거뭇해진 러닝화, 두 볼에 장난기를 잔뜩 집어넣은 아이의 미소, 터지지 않고 잘 익혀진 달걀노른자, 처음 꺼내 신은 도톰한 겨울양말...... 예쁜 것들을 꽤 많이 찾아냈어요. 당신의 하루를 채운 예쁜 것은 무엇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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