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 싶은 기억들
몇 학년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가끔 줄줄이 소시지를 처음 먹은 날이 떠오르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국민학교를 다녔지만 그냥 초등학교로 부르겠다)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다녔다. 점심시간이 되었다는 알림 종이 울리면 주변에 앉은 아이들은 의자를 뒤로 돌리고 옆자리에서 의자를 끌고 와 책상 위에 저마다의 도시락을 주욱 펼치고 둘러앉았다.
“우와~ 맛있겠다.” 나에게 점심시간은 온갖 종류의 반찬을 골고루 다 먹어볼 수 있는 즐거움의 시간이었다. 보통 많이 싸 오는 반찬은 콩자반이나 멸치볶음, 어묵볶음, 오징어채 볶음이었다. 이 반찬은 항상 누군가의 도시락 안에 있었다. 어떤 날은 여러 명이 같은 반찬을 싸 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서운하지는 않았다. 집집마다 음식 스타일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누구네는 콩자반이 부드럽고 촉촉하고, 다른 누구네는 단단하고 더 고소했다. 새로운 스타일의 반찬을 먹어 본 날에는 집으로 돌아가서 엄마에게 조잘조잘 말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엄마는 보통의 아이가 좋아할 만한 ‘아이 전용 반찬’을 굳이 싸주시지는 않았다.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기도 했으니 반찬을 여러 가지 준비할 여력이 없었을 수도 있고, 내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른스럽고 의젓하게 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몸에 좋다는 음식은 더 잘 먹었다. “너는 이런 것도 먹어?”와 같은 말을 들으면 괜히 으쓱하는 것이다. 습관이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내 취향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몸에 좋은 음식은 더 잘 먹는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주목을 받는 편이었는데, 주목을 받는 이유가 조금 남달랐다. 다른 도시락 그룹에서는 돈가스나 소시지 같은 것들을 싸 오는 아이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나는 닭모래집 볶음이나 소고기고추장볶음을 싸가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와, 나 이런 거 처음 봐!” 하면서 나의 반찬들을 궁금해했다. 그러면 나는 이건 무슨 재료로 만든 것이고 어떤 맛이 나는지 설명해 주면서 남다름을 조금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나는 반대로 친구들의 반찬이 낯설었다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친구의 도시락을 통해 줄줄이 소시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겉은 얇은 막이 있고, 살짝 씹으면 톡 터지면서 짭조름한 육즙이 터져 나온다. 씹을 때 뽀득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했는데, 맛보다는 재미가 더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줄줄이 소시지를 처음 먹은 날, 하교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간 나는 엄마를 다급히 불렀다.
“엄마! 나 오늘 소시지 먹었는데, 나는 왜 그런 거 안 해줘? 나 처음 먹어봤잖아.”
“그거 뭐, 몸에 좋은 것도 아니니까.”
엄마는 몸에 좋은 것을 먹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뭐든 손수 만들어 먹이고 싶어 했고, 밖에서 사 먹는 건 다 조미료가 들어간 거라고 엄마는 조미료를 하나도 넣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엄마의 수고로움을 인정하는 마음에 별달리 토를 달지는 않았지만, 남동생은 가끔 “엄마 음식에 조미료가 안 들어가서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맛이 떨어지는 거야.” 라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난 농담이었다고 생각한다. 엄마 음식은 맛있다.
문득 생각이 나서 마트에 들른 김에 줄줄이 소시지를 한 봉지 샀다. 몇 개는 사선으로 칼집을 내고 다른 몇 개는 한쪽을 길게 십자로 잘랐다. 팔팔 끓는 물에 데친 다음 프라이팬에 올려 볶았다. 칼집을 낸 모양으로 소시지의 옆구리가 툭 벌어지고, 십자로 길게 자른 건 문어모양이 되었다. 아이와 소시지를 먹으며, 어릴 적 그날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초등학교에서 급식을 하는 아이는 도시락의 추억을 부러워한다. 아니야 아들아. 엄마는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줄 자신이 없단다. 이야기를 다 들은 아이는 내가 어린 시절 먹은 고추장볶음이 먹어보고 싶단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손주가 고추장볶음이 먹고 싶대.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줘.” “손주가 먹고 싶으면 내가 만들어서 가져다줄게.” 엄마는 그 길로 정육점에 가 다진 고기를 사서 그날 저녁에 고추장볶음을 만들었다며 바로 다음날 두 개의 반찬통을 들고 오셨다. “하나는 고추도 넣어서 매콤하게 했고, 하나는 안 맵게 했어.”
아이가 좋아하는 꽃상추도 좀 샀다. 그날 저녁 식탁에는 따끈한 밥과 외할머니표 고추장볶음이 차려졌다.
“상추에 고추장볶음만 쌈 싸서 먹어도 너무 맛있어. 한번 먹어 봐.”
“엄마, 이거 너무 맛있네!”
아이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삼십 대의 엄마가 만들어 준 고추장볶음을 떠올리면서 육십 대 엄마가 만들어 준 고추장볶음을 먹고 있다. 맛은 좀 달라졌지만 여전히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