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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렘 May 03. 2022

퇴사를 했다. 날 좋은 봄날에.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아무래도 그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아니 그래도..." 

"등 지고 척 지고 원수 지고 이런 것도 아니고 지금은 그냥 내가 있는 게 

 별 의미가 없어보여서 그래. 나도 의미 없이 일하는 건 영 싫고." 

"아니 그래도......" 


속없이 날 좋은 날이었다. 

벚꽃 피기 전에 피었다가 벚꽃이 다 지고 나서도 여전히 창창한 노란 개나리가 

우리가 걷는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새삼 질긴 개나리의 생명력에 감탄하면서, 

적당히 따뜻하고 무심한 듯이 노란 꽃길을 느적느적 걸으면서, 우리가 나눈 대화였다. 



한 직장에서 어쩌다 보니 7년을 일했다. 

프리랜서라고 분류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고 일정한 시간에 퇴근하며 

프리랜서도 직장인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어중간하게 자리한 게 내 위치였다.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의 단점과 직장인의 단점을 조합해 놓은 듯 싶었고 

또 어떻게 보면 프리랜서의 장점과 직장인의 장점을 섞어놓은 듯도 싶었다. 

기분 좋을 땐 장점을 조합했고 

기분 나쁠 땐 단점을 합체시켰다. 


그렇게 2015년부터 시작해 2022년까지 다닌 회사일을 정리하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내가 이 자리를 벗어나서도 돈 벌면서 그런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섣불리 행동하지 못하게 했고 

'너무 오래 온실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다음 바톤을 이어받았다가 

'이만한 동료들도 없는데 그냥 눈 딱 감고 좀 더 견뎌 보자' 하면서 타협을 시도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어쩌면 지금이 타이밍인지도 몰라.' 하면서 결론에 수렴했다.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한 달간 매일(에서 며칠 빠지는) 새벽 일어나서 기도하고, 잠언을 필사했다. 

잠언은 곧 지혜의 말씀이라기에 뭐라도 붙들 만한 걸 찾을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런데 하루는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을 받아서 

'아 퇴사하라는 거구나' 하면서 마음 정리를 했고

또 어떤 날에는 '네 자리에서 성실히 일해라'는 말씀을 받아 들고

'...네?' 했다. 

분명히 구하면 주신다고 배웠는데,나는 분명히 구했는데

왜 분명하고 명료한 길을 딱 제시해주지 않는 건지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계속 물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크다면 큰 결정을 내 생각에 오롯이 맡기는 큰 도박을 하기에 

나는 너무 감정적이라는 걸 내가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다른 방도가 없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인프제(INFJ)였다.


필사하던 어느 새벽 기도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씀은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지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그렇게 말해준다다 하더라도 나는 

'네. 그렇게 할게요' 하고 고분고분 지시받은대로 걸어갈 위인이 못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믿음이 부족하.. 아니 믿음이 없었다. 


대신 매일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묻는 연습은 계속하기로 했다. 

기도하고 필사하면서 마음에 닿는 문장을 슬며시 붙잡고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할 때 한 줄만 붙들기로 했다. 

그렇게 동아줄처럼 매일 한 줄씩 붙들고 며칠을 보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안 맞는 옷을 입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다가 내 몸의 사이즈를 직시하고 

맞는 옷을 겨우 찾아 입은 느낌이랄까. 


문경에서 담았던 봄. 이때만 해도 진짜 퇴사를 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여전히 날 좋은 봄날. 

출근해서 함께 일해온 동료PD에게 말했다. 


"지금은 내가 없는 게 더 맞는 것 같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상황에서 그저 계속 자리나 지키면서

시간 떼우고 월급 받아가는 건 내 스스로가 좀 못마땅하다고 해야 할까." 



누구도 이제 그만 자리를 빼줬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않았고 

출근해서 하루종일 유튜브를 뒤적여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재미있는 일도 하고 싶어졌다. 


프리랜서라는 말은 항상 너무 빚좋은 개살구같다.

그래서 나로썬 그다지 좋아할 수 없는 단어다. 

하지만 그래도 내 직업이 이 분류 안에 들어간다면 

어떻게든 글을 쓰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지난 두 달간 퇴사를 고민하면서 울고불고, 불안해하고, 막막해했던 시간들이 

(물론 헛되지는 않았으나) 너무 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고 싶었던 것도 배우고, 쓰고 싶었던 것도 쓰고, 찍고 싶은 것도 찍고 

그렇게 얼마간 살아도 내 인생에 못할짓은 아니다 싶다.

조금은 장하다. 


뭐든 처음이 어렵다는데 하루 한 편 글쓰기를 오늘 드디어 이 글로 시작했으니까. 

시간이 반이라는데 반이나 써버렸으니 큰일이다. 

나머지 반은 또 얼마나 잘 쓸까. (....) 



® Today's Playlist______제레미 주커_cometh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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