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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리브랜딩, 마음에 안드시죠? 그치만요..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대한항공 리브랜딩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

by Greening

갑론을박보다는 거센 비난과 질타가 더 맞는 표현일 것 같네요. 저도 처음에는 '트렌드 따라간다고 정체성 내다 버렸군' 주의였으나 대한항공이 왜 이런 선택을 했을지 두고두고 고민해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덥니다. 그래서 오늘은 UI 글에서 잠시 벗어나 대한항공 리브랜딩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과 비평에 대해 적어보려 해요.





1. 대한항공, 어떻게 바뀌었나?

이번에 대한항공이 새롭게 선보인 기업 이미지(CI)는 1984년 태극마크 이후 41년 만의 새로운 BI입니다. 특히나 2020년 아시아 항공을 인수한 이후 4년 만의 변화라, 단순 로고 교체를 넘은 새로운 통합 항공사로서의 글로벌 정체성과 비저닝이 느껴집니다.


- 뉴욕 기반 글로벌 브랜딩 에이전시 리핀코트와 글꼴 전문 기업 달튼막과 협업하여 태극 문양과 서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로고는 기존 태극의 틀을 유지하되 한국 전통의 '상모놀이'에서 영감을 얻은 리본 형태의 곡선을 반영했고, 짙은 'Korean Air Dark Blue' 단색을 적용했습니다. 서체 역시 로고의 부드러운 곡선감을 반영하면서 붓터치 느낌의 디테일을 살렸는데요, 영문과 한글 전용 서체가 함께 개발됐습니다.


- 40년 넘게 사용된 하늘색 도색은 아크조노벨과의 협력을 통해 메탈릭 블루로 바뀌었고, 워드마크 또한 동일한 'Korean Air Dark Blue' 색상이 쓰였습니다.




2. 잘만 있던 대한항공인데, 왜 바뀌었을까?


기업의 리브랜딩 작업은 단순히 로고와 컬러를 바꾸는 미적 변화가 아니라, 브랜드가 나아가고자 하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담은 결정입니다. 따라서 국내 프리미엄 항공사에서 글로벌 프리미엄 항공사로의 도약을 위해 진행한 리브랜딩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한국적인 감성을 희생시켰다 보여집니다.



3. 왜 해외 에이전시가 리브랜딩을 맡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왜(!)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해외 에이전시에게 작업을 맡겼냐며, "이 봐라. 한국 정서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냐."는 비판을 제기합니다. 일면 타당한 의견으로, 저 또한 전적으로 동의하는데요. 외국 에이전시가 우리나라 문화적 정서를 깊이 이해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므로, 대한항공만이 가진 고유의 한국적 가치와 미감을 완전히 담아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Dan Vasconcelos 디자인 인터뷰

하지만 앞으로의 대한항공의 목표가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를 넘어 [국제적인 프리미엄 항공 브랜드]로 확장되었다면, 해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전략적이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듭니다. 국내 에이전시는 우리나라만의 정서와 미감을 잘 담아내겠지만,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프리미엄'에 대한 관점과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테죠.


결과물을 바탕으로 리브랜딩 목적을 미루어 봤을 때 대한항공은 '국내 정서 살리기 vs 국외 프리미엄 감성 살리기'라는 밸런스 게임에서 후자에 힘을 싣었으리라 추측됩니다. 그래서 해외 시장의 기준을 가장 잘 이해하고,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는 국외 에이전시를 선택한 것 같은데요. 국내와 해외 에이전시가 공동으로 작업하며 한국 정체성과 글로벌 시각을 동시에 잡아냈다면 좋았겠지만, 예산 이슈가 컸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로고 디자인 : 빨강과 파랑은 왜 사라졌을까?

꺄아악

태극무늬의 빨강과 파란색 조합은 대한항공 기존 아이덴티티에서 강한 상징적 요소였죠. 이를 버린 이유로는 크게 4가지 정도가 추측됩니다.



① 국제 시장을 타겟팅한 [모던하고 중립적인 이미지 전략]


빨강과 파랑은 한국을 대표하는 색이 분명하지만, 국제시장 관점으로 보면 보편적으로 인식될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는 지역색이 너무 강한 시각적 요소를 배제하고, 좀 더 보편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 언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②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응용을 위한 [디자인 활용 전략]


(1) 높은 대비를 이루는 보색 조합은 쓰기 쉽지 않다.
기존 대한항공 로고 칼라칩

우선 빨강과 파랑은 강한 대비를 이루는 보색 관계인지라 함께 사용될 때 시각적 충돌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잘 전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는 장점이 있겠으나, 아마 브랜드가 소구하려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전달하는덴 어려움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높은 보색 조합은 자칫 자극적이거나 산만한 인상을 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신중히 사용되어야 하는-반대로 대한항공 입장에서 이리저리 쉽게 사용하기 힘든- 디자인이었겠죠. 하지만 이게 한국인걸 이러려고 아시아나랑 합병했냐 매정한 놈들아


(2) 앞으로 브랜드가 적용될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환경 고려

(1)의 연장선으로, 대한항공의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케이스를 고려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심볼타입 로고는 단순히 비행기 외에도 승무원 유니폼, 각종 인쇄물, 웹사이트, 모바일 앱, 굿즈까지 정말 다양한 영역에서 응용되는 시각 아이덴티티로, 때로는 단색으로 축소되거나 확대되는 등 다양한 타입으로 활용됩니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케이스 예시


이러한 상황에서 태극의 빨강과 파랑이라는 두 개의 강렬한 색상은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분명 두 색상을 모두 표현하기 어려운 환경이 있을 텐데 여기서 하나의 색상만 사용한다면? 태극이라는 '빨강과 파랑이 함께 있어야 느껴지는' 본래의 상징성이 모호해질 테고, (1)에서 언급한 강렬한 대비감을 완화시켜야 하는 환경이라 절충안으로 다른 색을 섞어버렸다면 -동일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특히 로고라는 건 형태와 색상이 일정해야지 브랜드의 안정적이고 일관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응용 타입이 나와버리는 순간 브랜드 핵심 아이덴티티가 흐려지기 쉽습니다. 하여, 대한항공은 글로벌 환경과 다양한 매체에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다 단순하고 범용적인 디자인 언어를 선택한 것으로 보여져요. 하지만 모르겠고 돈 더 써서 어디서든 투 칼라 인쇄하라고


뿐만 아니라 최근 글로벌 트렌드는 친환경과 지속가능성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어, 많은 기업들이 작은 디테일에서도 친환경 가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뉴트럴하고 미니멀한 색상 선택은 지속가능성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는 의도(컬러 사용이 제한되는 다양한 ESG적 상황: 환경보호를 위한 친환경 패키지, 비용 절감을 위한 단색 인쇄 등)로도 작용할 수 있을 테고요.



③ 색상에서 [형태로서의 무게 중심 이동 전략]


색상을 덜어낸다는 건 컬러 의존성을 탈피하고 형태 자체에 무게 중심을 옮기는 효과를 가집니다. 기존 대한항공 아이덴티티는 컬러(빨강과 파랑) 자체가 브랜드를 대표하는 강력한 요소였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듯 색상이 변하거나 흑백으로 적용될 경우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크게 약화될 수 있겠죠.


따라서 변화된 로고 디자인은 컬러 의존성을 줄이고 형태 자체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려는 시도, 즉 [로고의 형태와 서체 자체가 아이덴티티의 핵심이 되도록 하는] 전략적인 전환을 꾀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④ 타 글로벌 항공사의 전략과 [맥락 및 산업 트렌드 일치 전략]


최근 루프트한자와 에어프랑스 등 글로벌 프리미엄 항공사들의 리브랜딩 사례를 살펴보면, 다들 미니멀한 디자인과 중립적인 색상으로 변하는 추세입니다. 이는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하기보다는 ‘글로벌화’의 큰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다양한 문화권의 소비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보편적이고 정제된 디자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한항공은 아시아나와 합병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 항공이 되었기 때문에, 글로벌 프리미엄 항공사의 전략적 흐름을 따르지 않기 어려웠을 겁니다.



5. 도색 : 청량한 하늘색은 어디 갔을까?

기존 대한항공의 하늘색은 밝고 청량한 톤으로 활력과 가벼운 이미지를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색상은 캐주얼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인상을 주고, 색채학적으로도 [젊음], [자유로움], [편안함]과 같은 키워드를 연상시키나 고급 브랜드로서의 [신뢰감], [세련됨], [무게감]을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색상입니다.


아시아나 항공 칼라칩

합병되기 전의 아시아나 항공을 떠올려보면, 부드러운 브라운과 버건디 조합의 중후하고 낮은 채도 컬러 팔레트를 사용하여 대항항공에 비해 진중하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었죠. 따라서 기존의 밝은 하늘색 대신 톤다운된 중성적 칼라로 변경함으로써 국제적이고 신뢰가는 이미지로의 포지셔닝을 시도한 것 같은데요, 개인적인 취향을 내비치자면.. 이전의 대한항공만의 가볍고 시원한 칼라를 좋아했던지라 슬픕니다.



6. 타이포그래피 : 명조에서 고딕으로 바뀐 이유는?

기존 대한항공의 명조체는 우아하고 전통적인 이미지를 주지만, 가독성과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고딕체로의 전환은 디지털 환경을 포함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에서 더욱 명확한 인상을 전달하고, 보편적인 브랜드로 자리잡기 위한 당연한 수순이에요.


다양한 서체 지원

특히나 고딕은 다양한 언어권과 매체에서 균일한 인상을 유지하기 쉽기 때문에 좋은 전략적 변화라 보여집니다. 물론 해당 서체가 주는 다소 보편적이고 무난한 느낌은 브랜드 개성 측면에선 아쉽다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붓글씨 특유의 획 디테일도 녹아져 있어 개인적으로 폰트는 마음에 듭니다.



7. 네이밍: Air을 빼고 Korean(한국인)이 된 이유는?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부분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항공(Air)이라는 서비스 범주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의 포지셔닝(Korean)을 강화하고 싶었던 걸지도요. 모르겠습니다. Air라도 살리지.






여담: 우리가 화가 난 이유.

사람들이 대한항공 리브랜딩에 유독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브랜드"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국적기는 단순한 민간 기업의 항공기가 아닌, 국가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국민의 자부심을 표출하는 상징적인 존재죠. 사실상 해외로 향하는 하늘길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한국의 얼굴과도 같고, 우리의 문화와 품격을 대변하는 가장 대규모의 브랜드입니다.


따라서 로고와 컬러는 단순히 기업의 시각적 표현을 넘어 국민의 문화적 자부심이나 애국심, 더 나아가 한국인의 정체성이라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이 변화를 더욱이 크리티컬하게 여기는 겁니다. 아쉬움 이상의, '상실감'에 가까운 감정이 드는 이유겠지요.



대한항공의 리브랜딩을 (나혼자) 다독이며

벽에 붙은 애들도 살아남은거겠죠

하지만 이 눈물겨운 수많은 시안. 아마 저희가 기대하는 한국적인 감성이 강조된 로고도 분명 초기에 제시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클라이언트'인 대한항공이 지금의 시안을 선택한 데에는 아무쪼록 명확한 이유와 새로운 가치가 숨어있을 테니 이 의도를 이해해 보려는 태도도 필요해 보여요.


이번 리브랜딩이 과연 대한항공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적 선택으로 자리 잡을지, 혹은 정체성을 잃은 이도저도 아닌 불완전한 변화로 끝날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며 지켜보자구요. 국제적인 보편성과 로컬의 정체성을 함께 표현하는 건 누가 해도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고, 원체 '변화 초기 단계'는 많은 사람들의 저항과 보수적인 반응이 나오는 시기니까요. 그래서인지 저라도 다독여주고 싶은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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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그럼에도 디자이너기에 절충안을 몇 자 적어보자면.

[방구석 절충안 ➊]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조금은 흐려질지언정 기존의 원형 디자인과 심플함이 강조된 신규 디자인, 두 타입의 로고를 병행으로 가져가는 방법. 미니멀 로고를 메인으로 사용하되 정체성이 강하게 보여야 하는 경우에는 기존 태극 로고를 사용하는 등 동시에 활용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방구석 절충안 ➋] '태극'이란 음과 양, 서로 다른 색이 섞이는 모습으로 움직임이 아닌 '조화'가 핵심인 메타포. 하지만 신규 심볼은 하나의 단색 선만을 사용하기에 이 조화로움을 느끼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수십 가지의 시안 중에 아래의: 가장 왼쪽 벽 끝에 있는 안을 채택해도 좋았었을 것 같다.

비록 하나의 톤이지만 서로 다른 정신(백과 청)이 섞인다는 게 분명하게 느껴지고, 태극 본연의 형태 또한 살아난다. 해당 시안은 위 [로고: 빨강 파랑은 왜 사라졌을까?]에서 언급했던 여러 전략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방법인지라 로고를 미니멀하게 바꾸기로 완강히 결정했다면 요 시안도 괜찮지 않나 싶다.


[방구석 절충안 ➌] 기존 심볼과 타이포가 합쳐진 타입, Korean의 'O' 태극 포인트라도 유지하는 방법.

새로운 고딕체가 주는 밋밋한 인상에 시각적 포인트로 작용하면서도 브랜드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정체성을 최소한의 요소로나마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니 고려해 볼 법하다. 심볼부터 타이포, 로고, 색까지 모든 걸 한 번에 바꿔버리기로 한 이상, 어떻게든 이전 브랜딩과 이어질 수 있는 장치를 설계한다.



* 특유의 청량한 도색, 강렬한 태극 마크. 정말이지 대한항공 비행기는 탈 때마다 설렜는데 제 즐거웠던 여행 기억까지 함께 리브랜딩 된 것 같아요. 1년쯤 지나면 다들 그러려니 익숙해지겠지만, 어찌 됐든 한국 아이덴티티가 더 녹아질 수 있는 방법이 연구됐더라면이라는 서운함이 맴도는 듯 합니다.


쬠 속상해 그치만 지켜볼게




* * *

- 리핀코트 프로젝트: https://www.lippincott.com/work/korean-air/

- 디자인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98hJtKp3ErI

- 대한항공 뉴스룸: https://news.koreanair.com/대한항공-신규-ci-및-리버리-공개-태극마크-현대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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