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어브 인터레스트> 관람 후기 및 해석 (스포)
방구석 빨간 안경 호소인 디자이너의 영화 감상 및 분석글 입니다. 영화도 어찌 보면 사용자(관객) 경험 아니겠나요. 그렇게 따지면 정말 충격적인 User (Movie) eXperience 였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브런치다. 글 써야지, 써야지 마음만 먹고 미루기만 몇 달 째였건만, 그 기간을 드디어(!) 깨게 만든 글감은 다름 아닌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근래 본 영화들 중 손꼽히게 강렬했던지라, 보고 난 뒤의 감정과 나름의 견해들을 남겨두고 싶어 부리나케 달려왔다. 듣도 보도 못한 연출 덕에 곱씹고 싶은 장면이 많다. 디자인 글은 몰라요 차차 쓸게요
아, 글을 시작하기 앞서 참고로 말하자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봐야하는 영화다. 필자는 줄거리며, 관객평이며 아무것도 모른채 그저 포스터가 예뻐서(..) 봤다. 그래서 더 충격으로 다가왔지 싶다. 만약에 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당장 검색을 멈추고 영화관으로 달려가시길.
요약하자면 정말 제목(Zone of Interest) 그대로인 작품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영역(Zone)에 관심(Interest)을 두냐-감각을 집중시키냐'에 따라 너무나도 다른 감상을 느끼게 되기 때문.
줄거리 자체는 간단하다. 영화 초반은 ‘5남매를 둔 한 독일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다룬다. 그들이 사는 집은 한 폭의 그림같고, 특히 회색 담장이 둘러쌓여진 마당 정원은 낙원마냥 아름답다. 다만 반전은 이 아름다운 주택 담장이 ‘아우슈비츠 절멸 수용소’ 벽이라는 것. 그 후부터 영화는 수용소를 중심으로 <나치>와 <유대인>, 두 영역으로 크게 나뉘게 된다. 이 영역은 러닝타임 내내 다양한 요소들로 극명하게 대비되는데, 재밌는 점은 활용되는 요소들 조차도 각각이 영역으로써 대비를 이룬다는 거다.
대표적인 장치가 시각과 청각, 감각 영역간의 대비다. 영상은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데, 음향은 소름끼치게 음산하다. 영화 초반부터 이유 모를 긴장과 공포감을 느꼈다면, 이 감각의 괴리 때문이었을거다. 관객은 분명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있음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사운드에 제 눈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귀는 믿을 수 있을까? 아니다. 기분 나쁜 소리와는 다르게 영상은 ‘아무 일(즉슨 끔찍한 일)도 벌어지지 않고’ 계속 아름답기만 하다.
ㅣ Intro에서부터 시작되는 대비의 경험
영화는 처음부터 이 두 감각을 의도적으로 분리시킨다. 시작하자마자 아무것도 없는 빈 화면에 기이한 사운드만을 들려주는데, 당연히 '시각' 영상이 나올거라 기대한 관객들을 오로지 '청각'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묘하게 기분 나쁜 사운드는 뒤이어 무서운 장면이 나오려나- 생각하게 만들지만, 전환된 화면은 그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저 평화롭고 아름답다. 감각의 괴리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며, 러닝타임 내내 지속된다.
ㅣ 평화로운 [시각]은 <나치>, 마치 비명처럼 들리는 [청각]은 <유대인>
영상과 사운드는 각각의 영역을 철저히 대변한다. 보여지는 것은 평화에 심취해 하루를 보내는 회스 가족, 들리는 것은 소각당하는 유대인들의 비명소리며 총소리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과 이어지는 부분이겠다. 아마 처음에는 몰랐겠지만(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봤더라면), 지휘관 루돌프 회스의 집 담벼락을 기준으로 그 안은 대저택, 그 너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장소가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영화는 오로지 회스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만을 보여준다.
점심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고, 선물 받은 카약을 타러 호수에 가는 일. 아름다운 하루 일과와 동시에 끔찍한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유대인 및 수용소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간간히 인물들의 대사나 학살을 의미하는 듯한 몇 가지 장면에서 유추할 뿐이다.
* 소령 아내가 갑자기 옷가지를 한움큼 챙겨와 자신의 가정부들에게 나눠준 것 (유대인들의 옷으로 추정)
* 한 가정부에게 던지는 대사, "남편에게 부탁하면 너 같은 건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어."
* 소령 아내와 그녀의 어머니의 대화, "우리 예전 집에서 일했던 @는 저기에 있지 않겠지?"
* 소령 아들이 방 안에서 혼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창문 밖에서 들리는 '쟤 잡아라, 물에 빠뜨려라' 등의 대사. (뭐 이런 뉘앙스의 얘기였는데, 정확하진 않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다음 두 가지 장면이었다.
바로 유대인이 '재'로 상징되어 등장하는 장면.
ㅣ a. 소장 코에서 나온 재
회스 가족이 카약을 타러 호수에 놀러 갔을 때, 갑자기 호수에 무언가가 떠내려온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한 소령은 다급히 딸과 아들에게 당장 호수에서 나오라 명령하는데. 집에 돌아온 소령은 세수를 하고, 아이들은 박박 닦인다. 세수를 하던 소령, 코를 킁- 푸는데.. 그 코에서 검은 재가 나온다. 이 재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유대인들을 소각한 수용소로부터 날아온 재(..)다.
ㅣ b. 마치 비처럼 바람에 날리는 재
영화를 보다보면 중간 중간 X-ray 효과처럼 연출되는 장면들이 있다. 그 중, 창문 너머 수용소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확인한 여인이 황급히 옥상으로 올라가 빨래를 걷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그 때 무언가가 마치 비처럼 바람에 쏟아져 날리는데, 그 또한 수용소로부터 날아온 재(..)다. 눈치채면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다.
이런 장면과 더불어 '저택 정원을 자신만의 낙원'이라 칭하며, '그 정원을 어떻게 더 아름답게 꾸밀지' 고민하고, '자신이 저 보기 흉한 담벼락을 식물들로 어떻게 가렸는지' 자랑하는 소령 아내를 보고 있으면, 아우슈비츠 수용소 담장은 더 끔찍하게 보일 뿐이다.
해당 연출은 한 밤 중 동네 소녀가 아우슈비츠 농지에 일하는 유대인들에게 몰래 과일을 두고 가는 장면에서 이용됐는데, 낮과 밤이라는 시간적 대비와 방관과 도움이라는 행위적 대비가 해당 연출로 더 극명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시각적으로 확 전환되는 경험이 신선하고 기묘했다.
그리고 위의 장면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나레이션으로 인용했다. [헨젤과 그레텔이 자신들을 잡아먹으려는 마녀로부터 도망치는] 짤막한 장면인데, 기이한 X-ray 장면과 함께 들어보면 잔혹 동화가 따로 없다.
해당 내용은 [마녀가 헨젤과 그레텔을 잡아먹기 위해 그레텔에게 화롯불을 좀 보게 하자, 이를 눈치챈 그레텔이 꾀를 내어 화로가 잘 타지 않는다며 마녀에게 먼저 확인을 부탁한다. 그레텔의 부탁에 답답한 마녀는 화를 내며 화로에 다가가고, 그 순간 그레텔은 마녀를 힘껏 화로 안으로 밀어넣고 문으로 잠가버린다. 마녀는 화로 안에서 산 채로 타게 되고, 두 남매는 안전하게 도망친다.] 이다.
이 장면이 3-1에서 함께 인용되니, 그간 죄 없다 생각해온 헨젤과 그레텔 = 마녀를 산채로 태워버리는 극악무도한 악마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동화상에서도 별 생각 없었던(어쩌면 통쾌함을 느꼈던) 장면이다. 그런데 영화 속 유대인들은 수용소에서 실제 소각되는 중이다보니 마녀는 유대인에, 헨젤과 그레텔은 독일 사령관에 대응하면서 그 잔혹함을 -어린이를 위한 동화였기에- 오히려 배로 느끼게 된다.
끝으로 주목할 연출은 영화 마지막 장면이다. 장교 행사장에서 나온 소령이 건물 내 긴 복도를 바라보는데, 곧바로 현실의 아우슈비츠 기념관을 청소하는 청소부들의 장면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소령이 서있던 긴 복도와 동일한 구조로 유대인들의 신발과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재와 미래, 두 시점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해당 시점 간의 대비를 통해 아우슈비츠 역사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더불어 소령은 그 복도에서 이유 모를 헛구역질을 계속 해대는데, 이는 마치 '헛구역질 날 정도로 잔혹하고 끔찍한' 아우슈비츠 역사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소령의 구역질은, 영화를 본 모든 관객이 느낄 감각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느꼈던 것들은 여기까지다. 이 외에도 짚고 싶은 연출이 몇 몇 더 있었건만,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이슈로 생략. 무튼간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사용된 여러 대비 효과들은 이유 모를 괴리감을 느끼게 했고, 알 수 없는 공포와 숨막히는 불쾌감으로 이어졌다. 아마 주변에서 '왜인지 모르겠는데 무서운 영화'라는 평이 나오는게 바로 이 이유일테다.
뭐랄까, 누가 갑자기 총 맞아 죽어도.. 핵폭탄(?)이 떨어져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의 긴장되는 영화였다. 긴장감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앵글도 많았고. 카메라가 클로즈업되지 않는 것도 인상 깊었다. 회스 가족을 그저 멀리서 조망하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이입하지 못한채 객관적으로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같이 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악물고 잔인한 장면 안나오는 <미드 소마> 같어."
그 왜, <미드 소마>에서 사람 죽어나가는 잔인한 장면은 쏙 빼고. 하얀 옷 입고 꽃다발 들고 춤추는 장면만 무한 반복되는 영화같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