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물 손수건 물들이기
특수학급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예상치 못한 영감이 되고 기쁨을 얻는 시간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내 의지로 맡은 사업은 특수학급에 속한 장애(또는 경계성) 아이들과 숲에서 노는 것이다. 올해에는 작년보다 심도 있게, 장애를 이해하고자 교육을 찾아 듣고 논문을 찾아보며 어떤 효과를 이끌어 낼지 고민을 했다. 그럼에도 실제론 그저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게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최고였다.
그렇게 꾸민 올해의 첫 번째 프로그램은 자연물로 손수건 물들이기였다. 사전에 아이들 특성상 망치질이 가능할지 확인 후 준비한 프로그램이었지만 혹여나 하는 마음에 긴장하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기능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고,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은 잠시였다.
물들이기 위한 자연물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따서 손에 모아 온 아이들을 보니 선물을 한가득 담아 온 기분이 들었다. 노란 달맞이꽃과 벌써 붉게 물든 복자기 잎, 분홍주황 꽃기린, 이름 모를 다양한 초록 잎들을 하얀 손수건에 올려 배치했다. 그리곤 망치로 뚱땅거리기 시작했다.
안내에 따라서 콩콩 망치질을 하니 덮어둔 손수건 위로 예쁜 색색깔의 물이 올라왔다. 노란 달맞이꽃 여러 개를 간격을 두고 물들여 판매해도 살 것 같은 퀄리티의 손수건이 탄생하기도 하고, 각기 다른 꽃과 잎으로 하나의 꽃을 그린 손수건, 나비처럼 보이는 손수건 등 너무나 매력 있던 작품들이 나왔다. 버릴 게 하나도 없었던 게 신기했다. 한 명 한 명에게 구체적인 반응을 하던 중 한 아이가 말했다.
'원하는 색이 안 나왔어요'
'무슨 색을 원했어?'
'분홍색이요'
'아 그랬구나, 빨간색 잎을 물들여서 빨간색 물이 들었네'
'그래서 흰색꽃도 같이 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발상에 막혀있던 뇌에 막혀있던 회로가 하나 연결된 듯했다. 순수하고도 놀라운 사고에 감탄했다. 은연중에 장애 아이들은 '빨강+하양=분홍'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고, 흰색 꽃은 흰색으로 물들지 않음을 모르는 게 어리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살다 보니 경험에 의해서 익히 알게 된 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사고하지 않는 나의 모습과 대조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내가 아는 대로만 단순하게 바라보고 흘러가고 있었다. 어쩌면 삶이 지루하고 식상해진 것은 내가 그 정도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탓이 아닐까.
아이들의 작품과 짧은 대화에서 또다시 장애아이들에게 기쁨의 감정을 느꼈다. 그 뒤에 흙교구를 가지고 숲에 있는 것들을 그려보는 시간에도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생각을 묻고, 내게 하는 질문을 듣고 대답하다 보면 아이들의 순수함과 아이들이 느끼는 즐거움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리고 정말 사소하지만 아이들의 이름을 묻고 불러줄 때 우리는 더 친밀해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장애 아이들과 프로그램할 때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아이들의 긍정에너지가 나를 채우기에. 이렇게 다시 글을 쓰고 싶게 만든 게 그 증거다.
다시 활력을 얻었으니 조금 더 힘을 얻어 기쁘게 주어진 일을 해보아야겠다!
그러고 보니 왜 흰색 자연물은 색깔 있는 물이 안 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