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회사를 위해 사는 사람이 어딨어요.

봄바람이 위로하는 회사생활

by Green
얼음도 녹고, 내 마음도 녹고...

봄바람이 분다. 어느새 해가 길어지고 어느새 산책을 부르는 날씨가 되었다. '의미 없다' 느껴지던 고통과 슬픔의 시간도 어느덧 지나가고 꿈에서도 자유함을 느낀다. 그런 평화도 잠시, 삶을 지루할 틈이 없이 눈을 퉁퉁 붓게 만든다.


그리고 그럴수록 불어온 봄바람은 내게 새로운 감각을 깨워준다. 체온과 비슷하게 스치는 바람결과 따뜻한 햇빛에 노릇노릇 구워진 듯한 들풀들을 바라보며 엉엉 울며 떨군 눈물 자국도 날려 보낸다.






"항상 사전에 논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실망스러워요. "
"주임님은 어쨌든 본인이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본인을 우선시한 게 맞잖아요. 회사랑 논의했어야죠."

이 두말은 나로 하여금 듣다 듣다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를 내게 했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원장은 내게 외부 강의나 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조언을 했다. 그 말을 근거 삼아 평생교육원에 강의계획서를 제출했다. 현재 보직자는 지지해 주겠구나 믿었다. 그러고 나서 몇 주후 평생교육원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강모집 진행하겠다고. 그러나 인원이 차지 않으면 폐강될 수 있다고 했다.
설 연휴 전 연락을 받고 나서 팀장에게 보고 해야지 했지만, 확정이 아닌 일이라서 굳이 시간을 다투어 말 꺼낼 주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렇게 연휴 전 처리할 업무에 밀려 보고가 늦어졌다. 괜찮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팀장은 '하지 말라면 안 할 수 있는 거냐', '시간도 정해놓은 거 보면 이미 다 정해지고 통보하는 거 아니냐'며 추궁했다. 교육원에서 연락이 언제 왔으며, 원장과는 언제 말했는지 타임라인을 읊게 했다. 마치 이 질책이 합리적임을 증명하려듯이. 지나지게 자신이 다 알려는 태도에 불쾌할 즈음,

지난주에 연락을 받았고 그 사이 하루라도 빨리 보고하지 않은 게 실책이라면 인정하지만, 생각하시는대로 '손못쓸때까지 기다리자' 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게 '신뢰를 깼다'고 확언했다.

확신에 찬 '나의 잘못들'이 다른 팀원들까지 듣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퍼졌다. 반면 나는 꺼내는 말마다 공격의 빌미가 되는 상황에서 입을 꾹 닫는 거 말고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참다 참다가, 듣다 듣다가, "이 한 번을 가지고 그런 사람으로 만드시니 서운하네요" 말하고 일어났다. 뽑아둔 강의 계획서를 파쇄기에 넣을 생각을 하고 챙겨서 일어나니 두고 가란다. 내 아이디어인데 왜? 두고 가란 말에 내 무의식은 파쇄기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서기도 전에 잘게 찢어버렸다.




지금까지 '못 다니겠다' 하면서도 마음 담아 일했던 나이기에 팀장의 발언은 나에게 무식하게 크고 거친 돌에 맞은 기분이었다. 회사 위해서 건강도 미루면서 살았는데 외부 강의 하나 제시했다고 내 욕심으로 인해 회사를 미뤄둔 사람처럼 말하다니.


내가 나를 위한 욕심을 부리는, 내가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몇 년간 직원들의 급여와 직결된 업무의 결과물이 어떻든 간에 '했다'는 시늉만 했을 거다. 제설작업으로 아킬레스 힘줄염과 동창이 생긴 중에 또다시 얼음을 깨부수러 나가지도 않았을 거고, 최근 건강에 크게 이상반응이 생긴 나로서 몸도 사렸을 거다. 그런 건강상태를 알면서도 일해 온 내게 어떻게 나를 우선했다고 말할까. 가정 소실의 시간을 보내면서 몰래 숨죽여 울다가도 힘든 내색하지 않으며 흔쾌히 잡무를 맡은 내게 돌아온 대우가 고작 저런 말이라니.


이것들이 내 욕심보다 못한 7년간의 책임감이었다는 것이 이 대화의 실체임을 알아버렸다. 업무도 아닌 개인의 영역을 보고 늦게 했다고 그간의 내 노력과 정성 더불어 나란 사람을 부정당하니 냉정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회사에 존재할 이유가 없음을.




그렇게 숨어서 흘린 눈물을 정돈하고 사무실 들어서니, 입사한 지 1년 안된 직원이 산책을 가자 했다.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질문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날씨 이야기를 하고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할 수 있는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더불어 회사입장에서도 좋은 일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구구절절 서러움을 읊지 않아도 그날의 날씨와 동료의 따뜻함은 내 억울함을 녹였다.
자리로 돌아오니 옆자리 직원은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냐는 안부와 더불어 "주임님만 생각하세요"라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려듯 질문하는 것은 없었다. 그냥 오랜 경험과 다르게 나를 가십거리로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어찌 보면 나로 인해 무거운 팀 분위기를 견뎌야 할 직원들이 나를 찾아와 주었다. 이전 같으면 당연히 한 사람에게 털어놓았을 그 상황에서 이젠 감사하게도 동료들이 먼저 다가와 곁을 지켜준다. 봄바람 같이 따뜻하게. 알게 모르게 훌쩍 가까이 온 그런, 봄바람.

걷기 정말 좋은 날씨다. 살랑이는 바람은 차지 않고 햇살을 따뜻하다. 겨우내 고요하게 울렸던 새들의 울음소리는 이젠 짝을 찾는지 이쁜 음색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파드득 날아다는 새들을 보며 우린 그저 봄이 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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