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겨울로 들어가는 때

by Green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이 중 가장 추운 겨울이란 계절이 왔다.

추움이란 단어에는 깨끗한 공기가 가득 담기기도 하고, 뜨거운 것을 따뜻하게 느끼게 하는 적당함이 있기도 하다. 반면 시림이란 단어에는 매섭게 불거나 얼어붙어 나의 일부가 상하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

지금 나는 시리다.


오늘은 절기보다도 겨울문을 통과 중인 나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입동을 알리던 날, 비밀번호가 바뀐 신혼집 앞을 서성이다 잠을 청해야 했다.

"짐 빼라", "짐 뺄 날짜만 말해라 그 외에 대화는 하지 않겠다", "비밀번호 바꿨다", "언제 올지 말하면 임시번호를 주겠다"... 이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마음 아팠는데, 실제로 굳게 잠긴 도어락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분명 우리 집이라고 했지만 '우리'집이 아니었다. '그'의 집이었다.


연락도 끊어버린 그 사람의 집 앞에서 자정이 다 될 때 나는 공허함을 느꼈다. 그에겐 내가 없었구나가 느껴졌다. 이혼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 새벽 3시가 되도록 시린 내 발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따뜻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호흡하는 것 하나 느낄 뿐이었다.



2주 전, 가사노동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언쟁이 있었다. 주말부부라 2주에 1번 편도 4시간 거리를 내려오는 나에게 집은 아쉽게도 쉬는 공간이기 전에 청소거리가 수두룩한 곳처럼 느껴졌다. 혼자 오래 살아온 남자의 생활이 2주치씩 쌓인 것을 마주하는 것은 조금 힘겨웠다. 그러기를 몇 번이 되고 결국 한숨 섞인 표현들이 나왔다. 이때 그는 나의 말투를 지적했고 본질에서 벗어난 태도를 다룬 언쟁으로 인해 결국 직접적인 가해는 아니더라도 서로의 폭력성이 드러났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상처를 가지고 각자의 근무지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레 침묵하게 되었다.


그 사이 들쑥날쑥한 감정이 가라앉으면 그에게 먼저 다가가보았지만 상대가 보기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이유 없는 사과를 해야 한다'며 나의 사과를 받지 않았고 도리어 나를 향한 비난이 돌아왔다. 또다시 신앙의 힘으로 미래를 다루자며 다가갔지만 그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받을 뿐이었다. 이미 여럿 견디고 그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판단했는데 그 생각의 시간은 '자신을 돌아봄'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핑계로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본인의 문제다",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라", "무겁게 받아들여라".... 나의 존재를 왜곡하는 말들이 돌아왔을 때, 모든 게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은 그가 묘사하는 통제욕구와 불안에 의한 폭력성 있는 가정폭력범이 아니기 때문에, 내 존재는 그가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금방 털어냈다. 그리곤 그의 방어기제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무거웠겠구나, 그런 불필요한 이해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가 내게 어떠한 모진 말을 하던 쏟아내게 두고 다독여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감기에 생리통이 겹친 '입동'에 스스로 겨울로 들어갔다. 약간은 설레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를 볼 생각에, 갈등과 상처는 잊고 회복의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나만의 바람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 밤에 진통제 먹어가며 이곳에 온 건지. 분명 그를 안아주러 왔는데 다독임이 필요한 사람은 내가 되었다. 상실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신혼집이 남의 집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나는 이방인이고 주거침입자가 된 듯했다. '주인'없는 집에서 나는 편할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본가로 올라와야 했다.


왕복 350km가 되는 거리를 어둠가운데 보내야 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무엇이 잘못됐을까... 의미 없는 말들이 돌아다닌다. 우리가 원한 건 이게 아닌데. 우린 앞으로 밝아질 날을 기다렸는데, 각자의 어두운 동굴로 들어가 버린 듯하다. 이젠, 다음이 두렵다. 어떻게 될지 추측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다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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