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럽지만 온전한 기억장애
[오케이 한방병원 한의사 오지현입니다]
위와 같은 서론으로, 총 10화에 걸쳐 암 경험자의 건강 관리를 알아보았는데요. 이번 브런치북을 통해서는 경도인지장애에 대해 함께 공부해 봅시다. 씨줄과 날줄처럼 최신논문과 책들을 엮어 리뷰해 보고, 경도인지장애를 겪는 몸이자 나인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뭐 살짝 들었는데 허리가 아파서 왔어요. 별것도 아닌데 내일이면 낫겠지 하고 있었는데 예전엔 안 그랬는데 계속 불편해요."
"일주일 전에 걷다가 발목을 살짝 삐끗했는데 아직도 아프네요. 내가 이런 걸로 병원 오던 사람이 아닌데"
"며칠 전에 자다가 목이 결렸는데 예전에도 한번 이러다 말길래 또 괜찮겠지 놔뒀더니 왜 점점 더 아파지는 거죠?"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런 말들을 꺼내는 어르신들이 가끔 계십니다. 그럼 저는 기분 상하시지 않게 조심하면서, 하지만 납득하실 수 있도록 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드리죠.
"20대 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예전에는 하루 자고 일어나면 나았는데 지금은 왜 안 그렇지 하시면 안 돼요. 일 년 일 년 차이가 생각보다 커요. 그동안 고생했다고 예전보다 더 많이 신경 써주고 아껴주셔야 돼요."
안타깝지만, 필연적으로 노화는 진행됩니다.
뇌는 어떨까요?
개인의 편차는 존재하지만, 마찬가지입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뇌의 구조와 기능이 달라지면서 기억, 수면, 식욕, 기분, 활동, 신경내분비 기능도 변하게 됩니다. 노인의 뇌는 약간 위축되거나 가벼워지기도 하고, 뉴런의 밀도나 시냅스의 수가 감소하고, 신경전달물질을 합성하는 효소도 줄어듭니다. 결과적으로 노화가 진행되고, 인지기능도 쇠퇴합니다.
다행히도, 대부분 노인의 인지기능 변화는 삶의 질에 현저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장기 서술기억이나 작동기억은 쇠퇴하지만, 단어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는 꽤 오래 유지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지혜와 경험이 쌓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노인들에게는 병적인 수준의 인지 저하가 진행됩니다. 가장 흔한 증상은 기억의 결손이지요.
기억이란 무엇일까요?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죠.
"그런 게 기억이잖아. 살아있다는 건 그 기억들을 연료 삼아서 내가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그 기억들이 나고 내 인생이야. 그런데 그게 다 사라지는 거라고. 너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거야. 근데 어떻게 그게 나야? 그래서 난 그따위 수술은 안 받겠다는 거야. 나로 살았으니까 나로 죽을래."
성당에서는 이런 쪽지를 남기기도 합니다.
"당신이 주신 내 인생을 돌아보면 소중한 건 두 가지 뿐입니다. 사랑했던 기억과 사랑받았던 기억. 이걸 다 잃어버릴 순 없어요. 날 살려달라고 빌지 않겠어요. 그냥 이 기억들만은 온전히 가지고 떠날 수 있게 해 주세요"
홍해인이 목숨만큼 소중하게 아끼는 것이 기억이었죠. 기억을 잃고 내가 아닌 나로 산다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으니까요. (ps. 이 부분에 대해서는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무섭지 않은 것으로 바로잡도록 하지요.)
기대수명이 증가하면서 치매는 드라마 속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언젠가는 나 또는 내 가족의 이야기가 될 확률이 너무 높아요. 특히 치매의 한 종류인 알츠하이머병의 유병률은 점차 높아져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지요. 아직까지는 치매를 획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미리 관심을 갖고 치매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적인 인지기능 쇠퇴의 한쪽 끝은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입니다. 일반적인 인지기능은 정상이라서 일상생활에 아직까지 지장은 없지만, 치매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한 단계입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진단 기술의 발달로 더 이른 단계에서 예측하기도 하지요.
앞서 연재를 시작한 <암 경험자의 건강 관리> 브런치북에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잘 알수록 더 건강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드렸죠? 저는 어릴 때부터 인간의 지적 특성에 항상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가끔 뇌를 닦는 상상을 하기도 했고요. 한의대를 졸업하고 인지과학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마쳤어도, 여전히 알고 싶은 게 많은 분야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함께 공부해 보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