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나를 그 시간 그곳으로...
‘마와레 마와레 메리고라운드~'
(まわれ まわれ merry-go-round)
'돌아라 돌아라 회전목마~'
이 가사를 듣고 바로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70년대에 태어난 사람일 확률이 클 것이다. ‘La La La Love Song’이란 제목의 이 노래는 1996년 방영한 일본 드라마 <Long Vacation>의 메인 테마송이다. 기무라 타쿠야(木村拓哉)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TV 시리즈로, 일본에선 ‘롱바케 신드롬‘을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네 멋대로 해라(2002)>와 함께 한때 인생 드라마로 꼽던 작품이다.
나는 이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오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새하얀 모래사장 위에 세나와 미나미(극중 남주와 여주)가 나란히 앉아, 햇살이 꽃비처럼 내리는 새파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광경이다. 아마도 세나의 맨션 옥상 전광판에 그려져 있던 일러스트와 뮤직비디오의 첫 신이 뒤섞여 내 멋대로 이런 장면을 만들어낸 듯하다.
최근 한 OTT 플랫폼에 이 드라마가 등장한 걸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당장 정주행에 돌입했다. 싸이월드가 잠시 되살아났을 때와 비슷한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세월과 함께 바닥나 버린 감성 탓인지 보고 있기가 영 간지럽다. 그럼에도 보는 내내 한껏 올라가 있는 입꼬리는 어쩔 수가 없다. 서랍 깊숙이 꼬깃꼬깃 틀어박혀 먼지만 소복이 쌓여가던, 풋풋한 시절의 향수를 잠시나마 끄집어내 주어 행복했나 보다.
어수룩하고 서툴기만 했던 ‘청춘’이라는 이름은 무엇이든 반짝이고 설레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키는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온 친구다. 우리는 '롱 베케이션(Long Vacation)'에 함께 열광했던 세대다. 나는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는데 강의 시간에 배운 일본어보다 드라마나 친구를 통해 주워 익힌 말들이 훨씬 많았다. 이건 내가 학교 생활에 충실치 않았던 탓도 있다. 뭐든 재미가 있어야 동기부여가 되는 법이다.
아키와 순례길을 걷는 동안 'La. La. La. Love Song'은 우리의 행군가였다. 선곡 이유는 단순하다. 둘이 동시에 가사를 외고 있는 유일한 노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꽤 신이 나는 비트라 텐션을 올리기에 제격이다. 오르막이나 돌무더기가 자글자글 깔린 험한 길을 만나거나, 원기가 쇠해 몸이 좀 늘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이 노래를 재생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그리고 목청껏 불러젖힌다. 어설픈 막춤까지 곁들여서. (물론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에 한해서다.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아는 인간들이다.) 그럴라치면 태엽이 다 풀린 장난감 병정마냥 축 늘어졌던 몸뚱이가 소생하기 시작한다.
키만 멀뚱하니 무뚝뚝한 아키지만 나름 귀여운 구석도 있다. 리듬에 맞춰 막춤을 시전하는 아키의 뒷모습을 도촬하는 취미가 생겼다. 몰래 찍은 건 실례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여줬을 때 꽤나 흡족해했으니 미안해는 안 하련다.
음악이란 참으로 신통한 녀석이다.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이, 그저 듣는 것만으로 나를 그 시간 그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모든 여행도, 삶의 어떤 순간도 시간과 함께 덧없이 바래 현실의 일이 아닌 듯 느껴질 때가 오게 마련이다. 간밤에 스쳐지난 꿈처럼. 그런 한바탕 꿈속으로 나를 다시 들여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음악인 것이다.
'La. La. La. Love Song'을 들으면 나는 이제 해변 위의 세나와 미나미가 아닌 등산스틱을 마이크 삼아 궁둥이를 실룩이던 순례길 위의 아키가 떠오른다. 음악이 우리들의 시간을 마음속 깊이 박제해 놓았다.
갈리시아(Galicia)의 고요한 공기를 가르던 그녀와 나의 엉망진창 불협화음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https://youtu.be/A40v004JAnI?si=lgBtrjDkH4L9q0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