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플 때 누가 약 먹여 주나요?
며칠 전, 한 학부모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오늘 00이 가방에 투약의뢰서랑 약이 있어요. 챙겨주세요. 갑자기 궁금한데 이제 곧 졸업이잖아요, 초등학교 가면 00이 약 먹어야 할 때 누가 먹여주나요?"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는 투약의뢰서를 받는다. 투약의뢰서에는 영유아의 이름, 투약을 하는 이유 (증상), 투약하고자 하는 약의 종류와 용량, 투약 시간 등 투약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적어야 한다.
이 얇은 종이 혹은 화면(키즈노트라는 앱을 통해 할 수도 있다고 한다)은 영유아의 담임에게 전달이 되고, 투약의뢰서에 적힌 사항대로 투약이 이루어진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초등교사들에겐 상상도 되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일.
그 차이는 '연령'에 있다. 만 6세를 기점으로 달라지는 기관의 차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그러나 최근 친구(유치원교사)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부 단설유치원에 보건교사가 배치가 되어 유아들의 투약을 보건교사에게 인계하였는데 투약은 보건교사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부하여 결국 투약은 다시 담임교사들이 하고 있다는 거였다.
보건교사는 의료인이기에 의료법에 따라 처방 없는 투약은 불가능하다는 게 투약하는 일을 거부한 보건교사의 말이었다고 한다.
처음에 든 생각은,
'그렇구나, 보건교사는 의료인이구나. 교사가 아니네. 그런데 왜 교사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거지?'였다.
만약 정말 학교라는 기관에 의료인이 필요한 거라면 전문의료인을 붙여 의료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행동이 납득이 가게 해야 할 텐데, 왜 보건교사라는 직책이 만들어졌을까? 의문이 생겼다.
그럼 나는, 수많은 유치원 교사들은 왜 투약의뢰서 하나 달랑 들고 유아들에게 투약을 하고 있는 것일까? 투약에 관한 전문 지식도, 기술도 없는데 말이다.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엉켜 갈 무렵 어떤 칼럼을 읽게 되었다. 소아당뇨를 앓는 초등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숨어 스스로 주사를 놓는 현실을 알리는 글이었다. 이 칼럼을 읽고 난 후, 내 머릿속의 의문은 결국 완전히 엉킨 채로 매듭이 지어져 버렸다. 도무지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도 모르겠어서 미간이 찌푸려진 채로 그냥 글을 쓰고 있다.
우리 반 학부모의 전화에는
"초등학교에서는 투약을 아이들이 스스로 해야 해요. 아이가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챙기는 것처럼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게 연습시키는 시간을 주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라고 말을 마친 후 통화를 끝냈다.
일부 저학년 담임교사는 투약할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경우 먹어야 할 시간 (예- 점심시간 후) 전에 간단하게 말로 안내를 해주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해주겠지-라고 기대를 하는 선이 각자마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특히 요즘 같은 '시국'에는 서로 조심하는 게 맞기에 별다른 예시 없이 간단히 말을 한 거다.
유치원이라는 기관에서 교육을 이유로, 그 어느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유아의 투약을 거부한다면 어느 누구도 유치원이라는 기관에 자신의 아이를 보낼 사람은 없을 거 같다.
유치원에서는 만 3~5세 유아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필요한 돌봄을 하고 있다. '연령'에 맞는.
나를 둘러싼 법의 테두리가 달라지려 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의문이 생길 만큼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단 하나는 분명하다.
어쨌든 나는 내일 유치원으로 출근을 한다는 것.
나는 2025년에도 유치원으로 출근을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