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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Jan 04. 2024

집에서는 선생님, 유치원에서는 엄마

모든 사람들이 부모교육을 기꺼이 받는 그날까지

아이와의 반복되는 기싸움에 지친 내가 무표정한 얼굴과 날 선 말투로 아이를 향해 쏘아붙였다.

"선생님이 지금, 아니 엄마가 지금 몇 번 말하니."


등원 직후 고열에 시달리며 부모님이 오길 기다리는 유아를 보며 나는 말했다.

"엄마가, 아니 선생님이 손 발 좀 주물러도 될까?"


집에서는 엄마가 되고, 유치원에서는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데 난 그 사이에서 계속 헤매고 있다.

유치원에 있을 때 만 5세 유아들을 향한 교육을 빙자한 잔소리가 집에서 만 3세를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도 나오는 걸 느끼며 순간순간 죄책감과 좌절에 빠진다. 내 새끼랑 있는 게 더 재밌고 행복해야 하는데, 가끔 아니 생각보다 자주 난 유치원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노는 게 더 재밌다.
멀리서 보아야 예쁘다, 잠깐 보아야 사랑스럽다, 내 새끼가 그렇다....

내 짧은 인내심과 얕지만 넓은 유아교육 이론으로 가득 찬 머리는 부조화를 일으켜 육아에 필요한 내 행동이 요상해지게 만든다. 주로 안 좋은 쪽으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교육서비스업이라는 이름 아래 동종업계라 볼 수 있는 18층의 이웃 엄마가 말했다.

"이번에 어린이집에서 (발도르프식 어린이집이다) 학부모 상담이 있었어요, 엄마 아빠들이 다 와서 집단으로 상담도 하고 1대 1로도 상담을 했는데, 원장님이 말하기를 내 말투가 많이 지시적이래요."
"네...? 언니가요...?"
"네, 그래서 엄마의 말투를 교정하는 상담업체 같은 곳으로 연결을 해주더라고요. 엄마의 말투는 힘이 크다면서요, 초록(나)도 같이 다닐래요?"

학부모상담 (=부모면담) : 유아들의 유치원 생활 및 발달단계에 대한 관찰이나 결과물 분석을 바탕으로 하여 유치원 교사가 부모를 대상으로 전문적 차원에서 실시하며, 면담내용으로는 유아의 성장뿐만 아니라 유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족들의 문제와 갈등까지도 다루어야 한다. (연미희, 김진숙, 2014)

- 지나가던 전자논문에서 발췌

초임교사 시절, 아니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해 크게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았던 시절 나는 '학부모 상담'기간이 크게 두렵지 않았다. 유아의 생활에 대해 말하고 학부모의 고민을 들으며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는 자리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말하고자 노력했을 뿐이었다.

이제 나는 '상담'이 왜 전문적인 영역이며 선배 교사들이 '학부모 상담'기간을 어려워했는지 안다.
흔히 말하는 유아의 '문제행동'을 고치기 위해 학부모의 태도와 행동을 개선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감히, 교사라는 이유로 자녀에게 '문제 행동'이 나타나고 있으니 그것을 고치기 위해 부모로서 이런 노력을 해주어야 합니다.. 라니.
교권 추락이나 그런 걸 빗대어 비꼬는 건 아니다.
'문제 행동'이라는 건 생각보다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유치원 정교사 1정 연수에서 한 강의 시간에 지금은 관리자(원감)의 위치에 있는 분이 말씀하신 일화가 기억난다.
그분이 예전에 맡았던 한 학급에 소리에 예민한 유아가 있었다고 한다.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면 듣기 싫다고 귀를 막고, 새노래를 배우는 시간은 소리를 지르며 그만두라고 했단다. 교실 내 놀이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여 주변 친구들이나 교사가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행동'이 아닌가?
그 유아는 몇 년 후, 영재발굴단에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유아로 출연했다고 한다.

내가 '학부모상담'이라는 이름 아래 하는 모든 말들은, 과연 '그 유아의 가정 상황을 심도 있게 알아본 후 분석하고, 그 유아를 밀도 있게 관찰한 후에,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여한 말인가?'라는 의문에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 나는 '학부모상담'이 두렵다.

그런데, 엄마의 말이 지시적이라니, 말투를 고치라니!!!?
저 말을 듣고 나는 살짝 정색하며 언니라고 부르는 18층 이웃에게 말했다.

"언니, 제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저는 저 말을 들었으면 정말 화가 났을 거예요. 몇 가지 일화 혹은 엄마로서 내가 하는 걱정, 아이가 말한 상황을 통해 들은 걸로 저렇게 단정 지어 말하면 안 되죠. 물론 그런 '지도'를 받고자 하는 부모님들도 계시고 '부모교육'을 필요로 하는 부모님들도 계시겠으나, 저는 저런 상담은 몹시 불쾌해요."

다행히 언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의 말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고 (언니의 남편은 불쾌함을 느꼈다고 한다) 말투를 교정하는 센터에 다니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엄마들은 모두 지시적이다.
엄마들은 자신의 자녀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가리켜 보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상황이 어린이집 원장님의 말처럼 '지시적'일 수 있고, 육아서에 나오는 그것처럼 다정해 보일 수 있다.

그럼 저 상담을 한 어린이집 원장님은 잘못을 한 건가?
아니다, 그만큼 부모라는 타이틀 아래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행인 건 우리 아이들은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공부해야 한다.
새로운 직책을 맡았지 않은가, 엄마와 아빠라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모교육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들이 부모라는 직책을 맡기를 원하, 원하지 않.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좀 더 웃음으로 가득 찰 것이라 예상이 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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