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ng Philo Sophy
브런치 위클리 매거진에 2화부터 24화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기존에 썼던 글들을 내렸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좀 더 다듬어서 더 좋은 글로, 위클리 매거진에서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책은 10대들에게 철학하기, 인문학적 사유가 무엇이고, 일상에서 어떻게 철학함을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입니다. 이 책은 10대뿐만 아니라, 어린이, 부모님도 같이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철학함, 인문학적 사유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습관화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 방법을 이야기하는 글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 책의 내용들은 대부분 철학자들의 사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어려운 용어들은 모두 제거하고 그 내용의 핵심을 전래동화, 신화, 우화 등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머리글을 제외하고, 문체 또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브런치에 올린 글들은 이 책의 초고입니다. 앞부분은 1~8장 정도까지는 3~4년 전에 쓴 것이고요. 9장부터는 3월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쓴 글입니다. 8장까지는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을 타겟팅해서 쓴 글이고요. 9장 이후부터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쓴 글입니다. 그러다 보니 난이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감안하셔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후 시간 날 때 초고를 다듬으면서 방향성을 생각해볼 예정입니다.
저 또한 아이 넷을 키우는 아빠입니다. 대한민국 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조금이나마 교육의 방향을 바꾸고자, 개인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혼 없는 교육에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제도, 규칙, 평가에 얽매여 아이들의 영혼을 보지 않습니다. 그 결과 수량화, 계량화, 획일화만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이 지금의 교육을 만들었습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에서 주체적으로 생각, 사고, 사유하는 교육으로 바뀌는 데 이 글이 조금이라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부제를 Doing Philo Sophy로 지었습니다. 이 단어를 저는 '움직이고, 사랑하고, 생각하자'로 번역하려 합니다. 나이키 광고는 우리에게 just do it! 그냥 해! 일단 질러! 해봐!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교육은 그 누구도 just doing philosophy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해!라고 이야기하지 철학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좋은 선생님은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고 말합니다. doing philosophy는 일상의 말로 바꾸면 '생각 좀 해라!'입니다.
저는 doing philosophy를 doing, philo, sophy로 구분해서 생각하려 합니다. doing은 육체성입니다. doing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오래된 x61노트북의 타자를 치는 것처럼, 철학적 사고, 인문학적 사고는 육체의 움직임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doing은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예측하지 못하는 우발성과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들을 우리에게 펼쳐 보입니다.
doing은 아이들에게 놀이입니다. 꼼지락 거리고, 꿈틀거리고,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꼼지락 거림은 doing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에너지이고, 통통 뛰는 심장이며, 끊임없는 재잘거림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doing 없이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sophy는 doing에 결과입니다. 생각은 움직이는 육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육체성이 없는 생각은 죽은 생각입니다. 육체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뚜벅뚜벅 걸으면서, 버스를 타면서, 싸우면서, 우리의 머리는 생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에게 생각은 언어이거나, 느낌이거나,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생각이 움직임을 만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을 망각했을 때나 가능한 주장입니다.
philo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움직임과 생각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움직이고, 움직이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아이가 움직일 때 엄마의 눈은 자동적으로 아이를 향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위험에 처할 때, 아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를 지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었던 시간의 물질성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그 생각이 내 삶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doing+sophy입니다.
우리는 매력 없는 것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움직이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사랑에 빠질 때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기억나는 것처럼 매력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운동의 매력에 빠져 운동을 사랑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의 매력에 빠져 책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매력에 대한 수동적이면서 동시에 주체적인 반응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철학자입니다. 다만 우리 어른들이 아이의 철학함을 막을 뿐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끊임없이 재잘되고, 끊임없이 사랑합니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은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조차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최첨단 21세기를 달리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아이들은 좀 맞아야 한다거나, 굴려야 한다거나, 군대식으로 가르쳐야 한다거나,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어라며 꼰대 짓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매력을 모두 앗아가 버립니다.
아이들의 시간을 존중해주세요. 그러면 그들은 모두 매력적인 철학자가 됩니다. 예술가가 되고요. 과학자가 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닥치고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리고 공부해라!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하나 같이 바보가 됩니다. 괴물이 되고요. 파시스트가 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로스쿨에 진학하고,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어 우병우가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자연세계의 진리를 깨닫고 핵무기를 만듭니다. 박정희가 되고, 전두환이 되고, 이명박이 됩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철학함을 허락하세요. 그들이 하고자 하는 것과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주세요. 그것은 그들의 시간입니다. 존재의 빛이고, 육체의 에너지이며,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입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으로 그들의 시간을 재단하지 마세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세계가 있습니다. 제발, 존중해주세요. 그래야 우리 어른들의 세계가 풍성해집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10대를 위한 생각 수업>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10대는 초등 4학년부터입니다. 아이들마다 다르지만 4학년이면 드디어 자아가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전까지는 부모가 보여주는 세계에 안주했다면, 4학년 전후로 본격적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부모와의 단절, 나와 친한 친구들과의 세계가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부모도 일일이 간섭하기 어려운 아이들만의 세계가 형성됩니다. 요즘은 조금 빨라져서 2차 성징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몸이 변하기 때문에 생각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한 번도 없어지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지만, 저는 비로소 인간이 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포스팅을 아이들과 학보모님들이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포스팅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25개의 꼭지는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선 '철학하기'가 철학자의 사상을 외우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다음으로 자신의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철학하기'의 본질이며, 이를 통해 세계와 나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나와 세계가 동시에 성숙해가는 것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