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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이인 Nov 21. 2020

남들도 다 하는 자가격리라는데

 자가격리 7일 차에 접어들었다. 지난주 일요일에 나는 주말 출근도 불사하고 맡고 있던 프로젝트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동료가 급히 나를 부르더니 저번 주 외근 미팅 자리에서 확진자가 있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일에 집중하려고 해 두었던 휴대폰 비행기모드를 해제하자마자 그 즉시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귀하는 코로나19 확진자 밀접접촉자입니다. 보건소에 방문하셔서 검사를 받으세요.' 그 길로 프로젝트 준비를 접고 집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딱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간 창 밖의 세상이 바라볼 수 만 있는 상태가 되니 이상했다. 매일 지겹다고 생각하며 지나쳤던 빌라촌 속 작은 놀이터, 비가 조금만 내려도 까만 아스팔트에 구르기 딱 좋은 체감 45도 기울기의 언덕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미세먼지가 서울 상공에 가라앉아 햇빛이 어지럽게 내려앉은 월요일. 11월에 내리는 비가 마치 여름 비처럼 촉촉하고 시원하기만 해서 이상했던 화-목, 그리고 갑자기 다시 해는 뜨지만 겨울의 본새를 찾아온 금요일과 토요일. 이렇게 낮에 바깥의 날씨를 제대로 기억할 만큼의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본 적이 없어서 그 느낌이 생소했다. 


 프리랜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디 가서 집순이라고 얘기도 쉽게 하면 안 되겠다. 이게 두 번째로 든 마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직장인 생활 리듬에 깊게 적응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들도 다 하는 자가격리인데 왜 이렇게 할 일이 없어서 우울하기만 한 지. 평소에 잘하지도 않던 인터넷 쇼핑과 한국 드라마 정주행에 시간을 다 쏟았다. 그래야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을 알아서일까. 


 회사를 다닐 때 쓰는 작고 부끄러운 나의 글들, 자기 전에 아껴서 보는 영화 한 편 등은 직장인으로 반강제적으로 흘러가는 시간들 중에 나 스스로를 붙잡는 데 사용하는 장치들이었다. 그 시간이 좋아서 일부러 좀 더 일찍 일어나고 덜 자더라도 짬을 내곤 했었는데, 이제는 통으로 24시간 그것도 14일을 내게 주다니. 기쁨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왔고 이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 시간을 관리할 수 없을 거라는 패배감이 먼저 다가왔다. 


 그리고 7일이 지난 지금 역시 나는 인터넷 쇼핑과 드라마 감상으로만 이 시간을 보냈다. 분명히 시간 날 때 읽어야지라고 쌓아두었던 책들은 컴퓨터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첫째 날, 집 안 전체를 소독하려고 남색 겨울 카펫 아래 먼지까지 말끔히 비우고 난 뒤 세워둔 책의 새로운 위치에 있다.

 처음에는 시간이 많으니 영상이라고 좀 찍어볼까... 브런치에 글을 하루에 하나씩 써볼까... 마음들이 퐁퐁 솟아났고 막 물에 닿은 주방세제처럼 거침없이 커지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 이전에 부족한 것이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별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마음 탓이었다.


 단 일주일 만에 사람이 이렇게 변해도 되는 것일까 내가 낯설다. 마모되는 삶에 익숙해져 여유가 주어지는 삶을 즐기지 못하는 병에 단단히 걸려 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순간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인상 지었다. 회사 다닐 때는 곰곰이 살펴보지 못했던 얼굴 위의 작은 솜털들, 그리고 새로 생긴 주근깨들이 보인다. 자가격리가 끝나면 피부가 더 좋아져 있으려나.


 어제부터  택배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어떤 기사님은 똑똑 노크를 하시고 문 앞에 놔둬주시는 반면, 어떤 분은 쿵쿵쿵 발소리를 1층에서부터 크게 내시더니 툭 떨어지는 박스의 소리와 다시 더 빨라진 쿵쿵쿵 소리로 사라지시고 만다. 배달음식까지 생각해보면 문 앞에서 만난 기사님이 족히 10분은 넘는 것 같다. 그 사람 소리도 반가워서 침대에 누워서 열심히 듣는다. 문 앞에 두라는 말을 잊어버리신 기사님은 '저기요'라고 부르시고 나는 맞춰서 '문 앞에 놔둬주세요. 저 자가격리 중이에요.'라고 답했다. 왠지 더 후다닥 달려가시는 느낌이다. 


 격리 되기 전에 입에 달고 살았던 "시간만 많으면"이라는 말은 이제는 "격리만 끝나면"이라는 가정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이제 확실하게 깨달았다. 격리가 끝나도 나의 오늘은 어제와 엊그제와 그렇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약하고 휩쓸리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래도 괜찮다. 그래도, 미리 예매해둔 자우림 콘서트가 일일 확진자 300명이 넘어버린 시점에 취소가 되어버린 것은 아쉽기만 하다. 아니, 이 시기에 밖에 안 나가 감염 가능성이 사라진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격리 시간이 또 소중하다. 더 늘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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