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이인 Jan 26. 2021

가정이라는 거대한 숲

<힐빌리의 노래> 를 빌려

 밥 빨리 먹어! 얼른 양말 신고 양치 하고 나와! 



2020.12.15


 어릴 적에는 식사란 자고로 적게는 5분, 많게는 10분 안에 다 먹는 행위라고 착각했다. 지구 어느 나라는 가족들기리 두런두런 모여서 식사를 2시간도 한다는데 왜 우리집은 시간차 공격처럼 되는 사람 식탁에 먼저 앉아서 먹고, 다른 사람이 앉으려고 할 때면 더 불안해져서 얼른 먹고 화장실이나 방으로 사라졌을까.


 넷플릭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마약과 폭력에 찌든 엄마를 피해 외조모의 도움으로 예일대 로스쿨을 나와 자수성가하는 이야기인데, 한 줄을 적었을 뿐인데 여기까지는 하품이 목구멍에서 나오려고 할 정도로 뻔하다. 가정폭력이라는 의제는 언제나 무겁지만 그것이 영화로 다루어졌을 때 가지는 서사적 흡입력이 얕아서 식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 포스터

 그렇지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힐빌리'는 사람 이름이 아닌 미국의 러스트 벨트 지역의 백인 하층민, 저학력 백인 보수층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미국의 지역 이름이라는 걸 감안하고 보면 흥미가 생긴다.

  포스터 속에 굽이진 길과 그 양옆을 통째로 막아버리는 빽빽한 숲이 이 지역의 지리적 및 문화적 고립을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영화 주인공인 밴스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배경 힐빌리를 두고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지금도 지인이나 친척들이 오바마를 두고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과 연관 있는 사람이라거나 반역자라거나 혹은 멀리 떨어진 변방 국가에서 태어난 외국인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는다." (중략) "오바마를 보고 있으면 내가 어렸을 때 존경하던 사람들과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명확하고 완벽하게 표준 발음을 구사하는 오바마의 억양은 그저 생경하기만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지역사회 사람들이 현대 미국의 엘리트 사회가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고 믿기 시작했던, 바로 그때 등장했다."


 이처럼 밴스는 힐빌리라는 마을 안에 새벽에 가라앉는 안개들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마을 전반에 깔린 힐빌리에서 통용되는 언어와 맥락들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아간다. 이 영화는 그레타 거윅의 <작은아씨들> 처럼 현재와 과거를 교차편집으로 서사를 이끌어 가는데 하나는 어머니의 그늘 아래 학대의 대상으로 살아갔던 밴스, 또 나머지 현재에서는 이제 마약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예일대 로스쿨생인 시점을 그린다. 


 그렇지만 어쩌면 관객 입장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작품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벤스에게는 과거의 자신이 투영되면서 현재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힐빌리 태생임을 자각할 때 벤스는 스스로에게 적잖은 실망을 한다. 아니, 어쩌면 자기 안에 모든 단점들을 힐빌리 태생에서 건너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뉴욕 출신의 다혈질인 사람은 그 사람의 특질인 반면, 힐빌리 출신의 다혈질은 성격이 아닌 출신에 방점을 찍게 하는 것. 

 

 리터러시가 중요치 않는 마을에서 홀로 끌어올린 싸움을 했을 벤스가 통과한 외롭고 자기학대적인 시간이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가정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한 그루의 나무로 살 것이냐, 그 길을 뚫고 다른 숲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 것이냐의 사이에서 그는 오늘도 고민하고 있을 것만 같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