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복지와 증세 논의가 뜨겁게 불붙었습니다. 만약 세금을 더 내지 않고도 더 나은 복지가 실현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럽 건강환경연합(HEAL)이 보고서를 통해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없애고, 그 재원을 재생가능에너지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복지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금요일 저녁 여섯 시. 지난 일주일 동안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고태양 씨는 어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고 싶습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일하나 싶지만, 월세, 휴대폰 요금, 카드값이 주마등처럼 스칩니다. 아, 세금도 있네요. 월급은 손에 쥔 모래라고 했던가요.
최근 유럽 건강환경연합(HEAL)은 우리가 고단하게 벌어서 낸 세금이 우리를 더 고단하게 만드는 데 사용된다면서, 화석연료 보조금으로 인한 국민의 이중고를 고발했습니다. 유럽 건강환경연합은 유럽 폐 재단, 암예방 교육학회 등 유럽의 70여 개 환경·의료·건강 전문가 단체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단체로, 보고서 “숨겨진 가격표: 화석연료 보조금 철폐가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Hidden Price Tags: How ending fossil fuel subsidies would benefit our health)”를 통해 G20 국가가 화석연료에 지급하는 보조금과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분석했습니다. [▶보고서 보기] [▶관련 기사 보기]
이 보고서는 1) 정부 보조금을 통해 화석연료가 저렴해지자 화석연료 사용이 늘어 국민 건강이 나빠지고, 2) 이 때문에 의료비를 또 투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민이 이중납세하는 셈인거죠.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화석연료 업계에 지급한 보조금이 한 해 평균 232억 달러(한화 약 26조 5419억 원)에 달하며, 이로 인해 국민이 추가로 짊어져야 하는 건강 피해 비용은 386억 5천만 달러(한화 약 44조 2,465억)에 달합니다. 화석연료로 인한 국민 건강 피해 비용이 화석연료 보조금의 ‘1.7배’에 달하는 것이죠.
이렇게 많은 보조금을 받은 화석연료 업계는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하지만 정말 쌀까요?
화석연료로 생산하는 에너지, 정말 쌀까요? 화석연료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세금으로 충당한 보조금과 화석연료를 쓰면서 발생한 건강 피해로 인한 의료비 지출, 사회환경 비용이 포함된 '진짜 가격'을 생각해야 합니다.
화석연료의 ‘발전단가’는 사실, '진짜 가격'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숨겨진 가격표가 우리 혈세로 충당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의 숨은 가격표에는 화석연료가 연소할 때 발생하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 비용과 사회환경 비용이 있습니다. 우린 화석연료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세금으로 충당한 보조금과 화석연료를 쓰면서 생긴 건강 피해로 인한 의료비를 또 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닙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국민이 부담한 건강 피해 비용은 약 386억 5천만 달러(한화 약 44조 2465억 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뇌졸중, 심장질환, 폐 질환 등 대기오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2013년에는 20,370명에 이르는 국민이 조기 사망했습니다. 화석연료가 내뿜은 대기오염으로 인해 고통받는 환자와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의 상심한 마음은 너무 커서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숨겨진 가격표에는 '사회환경 비용'도 있습니다. 여기엔 화석연료 사용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포함됩니다. 나날이 심각해져 가는 기후변화 재앙으로 인한 피해 비용도 계산해야 합니다. 올해는 북반구 국가들이 사상 초유의 폭염을 겪었고, 북극에서는 큰 빙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우리나라도 폭염으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냈고, 재난에 취약한 에너지 빈곤층이 물폭탄 장마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유럽 건강환경연합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화석연료 사용을 통해 우리나라가 지출하는 사회환경 비용이 249억 달러(한화 약 28조 2,84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화석연료의 숨겨진 가격을 국민이 몽땅 짊어지는 건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유럽 건강환경연합에 따르면, G20 국가가 화석연료에 지급한 보조금은 2013년과 2014년 한 해 평균 4,440억 달러나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전 세계 사람들이 짊어져야 했던 기관지염, 뇌졸중, 심장마비, 폐암, 만성폐쇄성폐질환 등 건강 피해 규모는 2조 7,60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전 세계 국민이 짊어진 이중고를 덜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유럽 건강환경연합은 세계 각국, 특히 G20 국가가 화석연료 보조금을 없애고 그 자금을 공중보건 향상과 재생가능에너지 등 기후변화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사용할 것을 권고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가 힘을 모아 화석연료 보조금을 철폐하면 매년 325만 명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매년 325만 명'안에는 우리나라 국민도 포함될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화석연료 보조금 철폐가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20% 감축해 폭염, 예상치 못한 홍수 등으로 인한 피해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내가 낸 세금이 미세먼지로 돌아와 다시 날 괴롭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해법, 바로 ‘에너지전환’에 있습니다. ‘에너지전환’이란, 국민안전과 건강을 위협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원자력과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재생가능에너지 시장과 경쟁력이 날로 성장하고,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국가 간 정치외교의 주요 사안으로 떠오르는 오늘, 이미 수많은 글로벌 기업이 100%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을 선언했고, 176개 국가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정책을 세웠습니다.[▶관련 글 "한국이 주목해야할 재생가능에너지의 폭풍성장" 보기]
우리도 그 에너지전환 대열에 합류해야만 합니다. 전문가들은 “에너지원별 사회환경비용을 발전단가에 반영하는 등 에너지세제 개편을 통해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에너지원을 먼저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건강 피해와 사회환경 비용 등 화석연료의 숨은 비용이 가격표에 제대로 반영된다면,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을 통한 재생가능에너지가 더 저렴한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 에너지 관련 세금이 국민 건강을 해치는 데 영향을 끼쳤다면, 이제 국민 건강을 지키는 방향으로 사용돼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2030년까지 매년 10조 원씩, 14년간 총 140조 원을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할 계획이라며, 재생가능에너지 전환에 대한 포부를 밝혔습니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 선언이 약속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성실히 이행해야 합니다.
또한, 화석연료 업계도 국민의 건강과 기후변화 위험을 담보 한 이윤창출을 그만두고,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가능에너지에서 이윤을 창출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발전사 에넬(ENEL)도 계획 중이었던 석탄발전소 건설 작업을 모두 취소하고, 재생가능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에너지 사업을 전환했습니다. 그 결과, 매년 꾸준한 주가 상승을 보이며 경쟁력 있고 사회책임을 다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기대하며 낸 세금이 우리 건강을 해치는 데 쓰이고, 그 고통과 피해 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부조리함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에너지 보조금 정책을 바로잡고, 100%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주변에 알리고 그린피스와 함께 목소리를 내주세요!
글: 김민지/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서명에 동참해주세요. [서명하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활동하는 그린피스를 후원해주세요. [그린피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