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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전환,
공정한 분배를 위한 정책

[인터뷰] 에너지·기후정책 전문가 펠릭스 마테스 박사

유로 화폐 10주년 기념 통화로 만든 2 유로 동전에는 다섯가지 상징물이 있습니다. 지구본, 가족, 배, 공장, 그리고 풍력발전소입니다. 이는 유럽 시민들의 의식구조에 에너지 전환이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기후 및 에너지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한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이제 경제 정책이자 산업 정책, 더 나아가 공정한 분배를 위한 사회 정책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독일의 에너지 전환 경험이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에너지·기후정책 전문가 펠릭스 마테스 박사를 만났습니다.

독일의 에너지·기후정책 전문가 펠릭스 마테스 박사(Dr. Felix Christian Matthes)가 지난 18일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를 방문해 “독일의 에너지 전환과 시사점" 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그는 세계기후변화정책(UNFCCC), EU 에너지시장 분석,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정책, 온실가스 거래 및 시장 분석 등에 저명한 전문가로, 1977년 설립된 유럽의 대표적 환경 분야 연구기관인 외코 인스티튜트 (Öko Institut)의 에너지·기후정책 연구총괄책임자를 맡고 있습니다. 20여년간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지켜봐온 마테스 박사는 제2차 배출권거래제 계획 수립을 앞둔 우리 정부와 관련 논의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Q. 한국이 에너지 전환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앞서 에너지 전환을 경험한 독일의 사례를 살펴보는 건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독일의 에너지 전환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한마디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현대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91년 시작된 논의는 2000년 원자력 발전을 줄여나가는 정책으로 구체화됐고, 지난 2010년에는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를 계기로 2050년을 목표로 한 보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됐습니다. 10년, 15년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웠던 과거와는 달리 장기적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나요?

독일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모두 네 가지 축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화 증진, 그리고 탈원전이 그것입니다.
먼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80-95%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중간 목표치인 2030년까지 산업 부문별 목표를 정했습니다. 에너지 발전소는 60%, 빌딩은 60-70%, 교통 40%, 산업 50%, 농업 30% 감축한다는 식이죠. 이러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탈원전을 바탕으로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화 증진을 통해 이뤄질 것입니다. 2022년까지 원자력 발전 ‘0’을 목표로 세운 독일은 2015년 기준 이미 원자력 발전용량의 약 절반을 줄이는데 성공했습니다. 나머지는 단계적으로 폐쇄해 나갈 예정입니다.


Q. 독일의 에너지 전환,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독일의 상황과 많이 다르지 않나요?

일부 사람들은 다음의 세 가지를 들며 독일과 달리 한국은 재생가능에너지 확대가 어려울 것이라 말합니다. 첫째, 한국은 재생가능에너지가 비싸다. 둘째, 한국은 토지가 부족하다. 셋째, 한국은 이웃나라와 전력망 연결이 어렵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과 다릅니다.

한국은 독일과 달리 재생가능에너지 사용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주장에 대해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는 보조금을 제외하고도 매우 저렴해지고 있습니다. 북유럽은 태양광이 킬로와트당 약 50 유로센트, 미국이나 멕시코는 이보다 더 저렴합니다. 10년 전 재생가능에너지는 석탄과 원자력과 같은 전통적 전력원보다 비쌌죠. 하지만 이제는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 됐습니다. 불과 4-5년 안에 일어난 변화죠.

재생가능에너지 초기 투자 비용이 높다는 데에서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기존의 화석연료 기반의 전력 또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 에너지원 역시 신규 발전소 건설과 같은 새로운 투자를 필요로 합니다. 공정한 비교를 위해서는 이를 동일하게 고려해야 하며 그럴 시 기존 에너지원이 재생가능에너지원보다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만약 석탄, 석유 등의 연료 가격이 언제까지고 저렴하고 탄소 배출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기존 전력 시스템을 유지하는 게 나은 선택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화석연료 가격, 탄소 배출에 따른 부담액은 변동할 것이며 불확실합니다. 재생가능에너지를 선택한다면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투자 비용은 다가올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에너지 시장 변동에 따른 취약성에 노출되기보다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는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고 시민들이 직접 에너지 전환에 참여토록 하는 동인이 됐습니다. 에너지 및 기후 정책이 단지 환경 문제가 아닌 경제 정책의 일환이기도 한 이유입니다.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느냐는 단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세계 정세와 에너지 시장의 변동을 대비한 안정적이고 탄탄한 미래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은 독일과 다르게 토지가 부족하다는 주장에 대해

독일 역시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만약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을 태양광으로만 하려고 한다면 토지 면적은 문제가 될 겁니다. 하지만 지붕형 태양광, 수상 태양광, 해상 풍력 등을 조화시켜 한국의 지형과 기후에 최적화된 재생가능에너지 믹스를 구성한다면 토지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육상 풍력과 일부 지상형 태양광은 토지를 원래의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에너지 발전에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재생가능에너지원을 통해 에너지 믹스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입니다.


한국은 독일과 다르게 이웃나라와 전력망 연결이 어려워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한국의 3020 목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확대)는 추가적인 전력망 연결 없이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전력망이 필요한 단계는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40%이상으로 확대됐을 때입니다. 이 때는 기저부하의 역할이 단계적으로 줄어들고 전력 시스템 자체가 매우 유연해집니다. 배터리 등 에너지 저장 기술 등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이죠. 이에 따라 에너지 저장 기술, 스마트 수요 관리 기술 등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될 것입니다.

에너지 저장 기술에 대한 수요는 전세계적으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전력망 연결이 어렵다면 에너지 저장 장치 기술에 일찍 투자함으로써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독일도 자동차 산업이 약화되면서 배터리 등 에너지 저장시설 산업이 미래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산업 노조가 나서서 다음 대형 배터리 공장을 독일에 지어야한다고 주장할 정도이죠.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기저부하의 역할은 단계적으로 줄고 유연화 기술의 중요성은 점점 커진다. 전력 체계의 근본적 변화는 재생가능에너지 비율이 40% 이상 이른 시점부터 생긴다.


Q. 말씀한 대로라면 에너지 시장이 변하면서 산업도 그에 따라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너지 공급원이 바뀌면서 산업도 그에 맞춰 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에너지 소비 집약 시설인 알루미늄 용광로의 경우, 24시간 내내 전력을 소비하던 방식에서 태양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낮시간에 전력 소비를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낮시간 동안의 전력 비용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생산 방식의 변화와 함께 사고 방식의 변화도 함께 이뤄지고 있습니다.


Q. 현재 독일의 전력 시스템이 궁금합니다. 전력 생산의 주체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독일의 전통적 전력 시스템은 500개 가량의 대형 발전소들을 기반으로 한 중앙 집중형 시스템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올해 여름 기준으로 180만 개의 분산형 발전소들에 의해 전력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며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체가 매우 다변화된 것이죠. 과거에는 대형 전력회사 4곳이 전체 전력의 80%를, 중소형 전력 회사들이 20%를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현재,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만 두고 보면 이들 대형 전력 회사들이 차지하는 생산 비중은 5%에 그칩니다. 중소형 전력 회사들의 비중은 7%입니다. 나머지 88%는 개인과 농부, 협동조합, 기업, 금융기관 등 기존에 없던 사업자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참여자들이 전력 시스템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의 참여자인 농부들의 경우, 보수 정당의 표밭인만큼 정치권 역시 에너지 전환이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됐습니다.


▲재생가능에너지가 확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의 경제적 참여가 중요하다.


Q. 전력 생산을 대형 발전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협동조합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새롭습니다. 이들의 참여를 견인한 건 뭐였나요?

핵심은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으로 인한 이익을 생산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들이 갖는다는 것입니다. 실제 독일 북부의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 주의 경우, 모든 프로젝트 개발자가 지분의 20%를 해당 지역 주민 또는 지자체에 제공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독일의 다른 지역들 또한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지역민에게 수익을 분배 하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메클렌부르크 포어포메른 주는 이를 법제화한 것입니다. 지역 주민은 최소 3개월동안 프로젝트 반경 5km 이내에 거주해야 한다고 명시해 놓는 등 해당 법은 실제 적용될 수 있도록 매우 구체적입니다. 대형 개발업자가 지역에 가서 막무가내 식으로 발전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참여한 주민들이 이익을 얻는 구조로 운영되는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에너지 전환을 시작하는 한국에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일의 에너지 전환은 30년 전 매우 협소한 에너지 프로젝트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에너지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에너지 전환은 광범위한 현대화 프로젝트로 진화했습니다. 현대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프로젝트가 된 것입니다. 한국의「신재생3020 이행계획」역시 점점 진화하는 이니셔티브가 될 것입니다. 독일 역시 1990년엔 재생가능에너지의 기술적 잠재량이 3%밖에 안된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정책적 실행은 재생가능에너지에 관한 경험을 축적시켰고, 경험을 근거로 한 전망과 정책 추진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애초의 의구심을 불식시켰습니다. 그리고 더 튼튼한 정책으로 이어졌죠. 위험 요인을 최소화하면서 적극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 나가는 것, 그로부터 에너지 정책을 뛰어넘는 사회·경제·정치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유로 화폐 10주년 기념 통화로 만든 2 유로 동전에는 다섯가지 상징물이 있다. 지구본, 가족, 배, 공장, 그리고 풍력발전소다. 이는 에너지 전환이 유럽인의 의식구조에 얼마나 크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유럽중앙은행 홈페이지


마테스 박사는 재생가능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이 비단 에너지나 기후의 문제만이 아니라 더욱 공정한 분배, 더 많은 시민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 전반을 위한 현대화 프로젝트의 일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훗날 우리는 지금을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간 역사적 전환기였다고 기억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 전환이 모두를 위한 길이기 위해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정부, 새로운 에너지 시장에 대비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해야 하는 기업,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지자체와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그린피스와 함께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의 중심이 되어 주세요!

#대한민국해뜰날 함께 하기


글/정리: 이인성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IT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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