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자동차 회사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광고와 현실로만 국한될까요? 여기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동차 업계를 위해 로비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지난해 9월 <무너지는 기후: 자동차 산업이 불러온 위기>를 통해 세계 12개 제조사들의 기후위기 대응 실태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이러한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어떤 것들일까요?
첫째, 자동차 제조사는 자동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공급망을 포함한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정보는 거의 존재하지 않죠. 산업의 투명성 부족은 우리의 기후와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위협이 됩니다. 어디서 얼만큼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를 알아야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향후 자동차 부문 배출량에 대해 보다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조사는 상세한 데이터를 투명하게 제공해야 합니다.
둘째, 자동차 공식 연비 테스트에서 측정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실제보다 훨씬 적습니다. 즉, 제조사에서 우리가 타는 자동차의 연료 효율을 과대평가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낮추는 테스트 결과를 내는 것이죠. 실제로 자동차의 지난 20년 동안의 공식 연비 테스트 결과와 실제 주행 시의 배출량 격차는 점차 커졌습니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에 따르면 실제 배출량과 EU가 개발한 종전 실내배출가스·연비 시험방법 (NEDC,New European Driving Cycle) 결과 간 차이는 2001년 8%였으나 2017년 39%로 증가했죠. 이러한 속임수는 환경을 해칠 뿐만 아니라 운전자로 하여금 연료비를 더 많이 쓰게 만듭니다. 최근 UN 국제표준화포럼(WP.29)에서 승인한 새로운 실내인증시험방법 (WLTP, Worldwide harmonized Light-duty vehicle Test Procedure) 이 도입 되었으나 이런 문제점이 충분히 개선되는지는 검증이 필요합니다.
셋째, 연료 효율성 개선 추세는 정체되거나 다시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연비,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틀렸습니다. 전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EU, 중국, 일본, 한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연비는 정체되거나 심지어 악화됐습니다. 왜일까요? 이는 내연기관 엔진의 효율 개선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지만, 내연기관차는 더 이상 낮아지는 이산화탄소 배출 기준을 맞출 수가 없는 것이죠.
과연 자동차 회사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광고와 현실로만 국한될까요? 여기,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동차 업계를 위해 로비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가 정부 규제에 맞선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안전벨트부터 에어백까지 모든 규제에 반대하는 로비를 해왔죠. 심지어 이러한 안전장치를 설치하면, 자동차 가격 인상과 인력 감축으로 이어진다고 정부에 협박 아닌 협박을 해왔습니다. 지금도 자동차 제조사들은 비슷한 논리를 반복하며 기후변화 관련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럽자동차제조자협회(ACEA)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 강화에 대해 오랜 기간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자동차 이익단체입니다. 일례로 2018년 12월 10일, ACEA는 유럽의회가 파리기후협정 목표를 위해 제시한 조항들이 "지나치게 공격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의 안전벨트 및 에어백 규제 강화로 인한 "비용 문제" 논쟁을 다시 언급하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들은 올해까지 계속해서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 목표를 연기할 것을 요구하며 지난 3월 25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내 "기한 내에 유럽연합 법과 규정에 따르기 위해 준비했으나 코로나 위기 탓에 그 계획이 뒤집어졌다"며 "규제 실행 시점을 조정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12개의 자동차 제조사로 구성된 미국자동차제조사연합(AAM, Alliance of Automobile Manufacturers)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미국 연비 및 CO2 배출 관련 정책을 와해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AAM은 심지어 가짜 뉴스를 배포하기까지 해 비난을 산 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로비의 결과 지난 3월 31일, 트럼프 행정부는 자동차 연비기준을 크게 완화하는 조처를 내렸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수립한 '기업평균연비기준(CAFE)'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업체는 당초 해마다 연비를 5%씩 올려야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후퇴로 이제는 연간 1.5%만 개선하면 됩니다.
앤 칼슨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LA캠퍼스(UCLA)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국 일간지 과 인터뷰에서 "(이번 조처는) 휘발유 수요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석유산업이 가장 큰 수혜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조치로 미국 내 자동차들은 이산화탄소 10억 톤 이상을 추가 배출하게 됐습니다. 미국 환경방어기금(EDF)는 2050년까지 대기오염으로 인한 조기사망자가 1만8500명, 호흡기 질환자는 35만 명이 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기후위기 정책 관련 기업의 로비행태를 감시하는 영국의 비정부기구(싱크탱크)인 인플루언스 맵 (Influence Map)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앞에서는 대중을 안심시키면서 뒤에서 정치권에 온실가스 배출규제 완화를 위해 로비하는 행태를 계속해서 보여왔습니다. 포드(Ford)는 미국 환경보호청(EPA)을 대상으로 한 발표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이 "철회되어야 한다"고 했으나, 2018년 공개 석상에 선 빌 포드 회장은 전동화 노력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도 했죠. 한편 토요타는 미정부에 온실가스 배출 기준이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웹사이트에는 "글로벌 사회와 협력하며 모든 사업 활동을 통해 사회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국내 상황은 어떨까요?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 역시 배출가스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9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정부에 국내 자동차 배출 가스 기준을 또 유예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내연기관 퇴출은 자동차 산업계를 궁지로 몰아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자동차공학회는 매해 '자동차 기술 및 정책 개발 로드맵 발표회'를 통해 "내연기관의 혁신적 기술개발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연비와 배출가스 규제를 맞춰야 한다"며 "열효율이 50% 이상이고 유해 배출가스가 제로에 가까운 미래 내연기관 개발이 필요하다"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전기차 기술을 확보하기 보다 전기차 기술 개발을 막아서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죠. 문제는 이들의 입김이 너무 거세서 시민의 건강과 미래를 위한 정책은 뒷전이 되고, 기업을 위한 정책만 살아남고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부는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목표 기준안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배출목표 기준안은 2021년 도입할 예정이었던 터라 당초 올해 2월 발표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계가 반대한 탓에 2년 연속 발표를 늦추고 있는 것이죠. 자동차 1대당 이산화탄소 평균 배출 목표는 2014년 수립된 km 당 97g입니다.국내 자동차에너지소비효율 분석집(2018년)에 따르면, 2017년 승용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43.9g/km로, 2013년 120.8g/km보다 오히려 늘었습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전기차 43만3000대 보급 목표를 세웠지만, 환경부는 자동차 제작사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 대비 저공해차량 판매 비중을 고작 15%로 세웠습니다. 게다가 환경부가 정의한 '저공해차'에는 온실가스와 오염 물질을 내뿜는 휘발유·가스·하이브리드차가 포함돼 있습니다. 제조사들의 전기차 의무판매제의 도입 역시 연내 논의되기로 했으나 감감무소식입니다.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이 중요합니다. 우리 자동차 산업계가 미래차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전면적인 전기차 전환 계획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재생가능에너지로 충전되는 전기차, 전기 교통 시대를 위해 힘을 모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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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인성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