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자동차 중심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운전자의 편의와 자유가 보편적인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일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입니다. 만약 당연하게 자동차에 할당돼있는 공간들을 녹지 공간, 문화 공간 등으로 회복시킨다면 어떨까요? 소음과 매연, 그리고 교통체증과 사고는 줄고, 더 평등하고 공정한 도시 설계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지난 6월 28일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레퓌블리크(LREM·전진하는 공화국)가 참패했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원외 정당으로만 맴돌던 사회당·녹색당이 차지했습니다.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대책에 대한 시민들의 날 선 요구가 이들을 주류 정치권으로 성큼 들어오게 한 것이죠.
재선에 성공하면 "주차 공간 6만 개를 없애겠다"며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들에게 혁명적 도시를 만들겠다고 주장한 안 이달고(Anne Hidalgo) 파리 시장은 우려와 달리 압도적인 표 차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파리시만이 아닙니다. 리옹, 마르세유, 보르도, 스트라스부르 등 프랑스의 주요 도시에서 집권 여당을 제치고 녹색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 현상을 일컬어 '녹색 물결'을 넘어선 '녹색 쓰나미'로 묘사했습니다.
녹색당이 향후 6년 간 펼칠 도시 정책의 중심엔 교통 정책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도시 내 자동차에 당연하게 할당된 공간을 줄이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의 선택권을 대폭 늘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파리시는 2024년까지 모든 도로를 자전거 친화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난 5월엔 무려 650km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구축하겠다 발표했습니다. 리옹시는 450km의 고속 자전거 도로망을 만들고, 도심에도 하트 모양의 자전거 도로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입니다. 이에 더해 도시 전역의 자동차 운행속도를 30km/h로 제한하기로 했습니다. 보르도시 역시 도심에 자전거 순환로를 세울 예정이며, 스트라스부르시는 매년 15km 이상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보행자나 자전거 이용자는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설을 위해 고안된 법률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법률들은 대개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교통약자들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죠.
만약 우리가 지금 자동차에 당연하게 할당돼 있는 도시 공간들을 회복한다면, 더 많은 공원을 만들고, 독립된 자전거 전용도로와 보행로를 설치하고,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와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소음, 매연, 교통체증, 교통사고는 줄고, 더 평등하고 공정하게 도시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기후위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C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산업, 교통, 농업 분야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감축해야만 하죠. 자동차 수는 줄이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무공해차, 즉 전기차로 바꿔야 합니다.
국제 청정 교통 위원회(ICCT)가 지난 5월 발간한 <코로나19 경기 부양책과 자동차 신차 구매 지원 제도 효과>에 따르면, 유럽연합(EU)과 영국에서 2005년 등록된 노후차를 올해 배터리 전기차로 교체할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70%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전력 공급원이 무엇이냐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효과에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전력망에 석탄 비중이 높은 그리스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량은 39% 정도입니다. 반대로 전력망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스웨덴은 감축량이 93%에 달합니다. 이처럼 전력망에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질수록 온실가스 감축 효과 역시 커집니다.
그린피스 벨기에 사무소의 의뢰로 독일항공우주센터(DLR)가 수행한 자동차 부문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C 이하로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3분의 2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2025년까지 순수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를 중단해야 합니다.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도 2028년까지는 중단해야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억제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의 내연기관차 감축 목표는 자동차 제조사들에 좋은 지표가 됩니다. 실제로 유럽의 강화된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과 벌금 제도는 올해 1분기 자동차 제조사들의 유럽내 전기차 판매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국제 청정 교통 위원회(ICCT)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 내에서 자동차 제조사들이 판매하는 차량 중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포함)의 비중은 7%에 달했습니다. 이는 3%에 불과했던 작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성장한 수치입니다.
이처럼 자동차 제조사들은 규제가 강한 곳에서부터 깨끗한 차를 판매합니다. 그런데 규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곳에서는 기존의 내연기관차를 더 많이 판매하려 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그린피스는 자동차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탈내연기관 목표 시점을 발표하고, 2028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 및 생산을 중단할 것을 요구합니다. 한 지역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는 자동차 판매를 지속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이 중요합니다. 우리 자동차 산업계가 미래차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전면적인 전기차 전환 계획이 필요합니다. 빠르게 재생가능에너지로 충전되는 전기차, 전기 교통 시대를 위해 힘을 모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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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인성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기후에너지 캠페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