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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사고 교훈에 귀를

원전 제일 착각의 늪에 빠진 한국 정부에게 필요한 것

저는 그린피스 수석 원전 전문가로 30년간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을 이끌어왔습니다. 특히 한ㆍ중ㆍ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원전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21년 만에 다시 찾게 된 한국에서 원전 산업계와 정부가 자신들이 꾸려놓은 가상 공간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에게 원전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입니다. 또한 다른 국가들도 신규 원전 건설에 공을 들이고 있고, 한국에서 원전을 수입하고 싶어 한다고 착각하는 듯합니다.


원전이 제일이라는 착각의 늪 빠진 한국 정부와 원전 산업계

그래서 그린피스는 지난 11일 부산과 울산의 시민단체와 함께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어 원전 확대에 의존하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얼마나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지를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재생가능에너지의 급격한 성장을 이들이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삶과 한국 경제, 그리고 환경에 어떤 위협을 가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전 세계 원전산업은 기실 참혹했던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전부터 사양길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전력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6년에 최고치인 17.6%를 기록했지만 작년에는 10.8%로 감소했습니다. 반면 재생가능에너지는 지난 15년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새로운 에너지에 대한 전 세계 투자 중 49%가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였습니다. 심지어 중국과 같이 원전 확대가 진행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에서도 미래를 위해 원전보다 재생가능에너지가 훨씬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2014년 원전 건설에 약 8조 원 정도를 투자한 반면 재생가능에너지에는 83조 원을 투자했습니다.


한국 정부와 원전 산업계는 항상 '재생가능에너지는 공급이 불안정하고 적절하지 않아서 한국에는 원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선진산업국가뿐만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나라들까지 재생가능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재생가능에너지가 공급이 안정적이면서도 경제적 효율성이 좋고, 안전하면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에도 최적화된 전력생산 방법이기 때문이죠. 2014년 독일, 일본, 중국, 인도, 스페인, 멕시코, 브라질, 네덜란드에서는 원전보다 재생가능에너지에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했습니다. 8개국 30억 명의 인구, 즉 세계 인구의 45%가 이미 필요한 전력을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생산하고 있는 것이죠.


'폭풍 성장' 재생가능에너지 - 세계 인구 45%에게 전력 공급


세계는 재생가능에너지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최근 수립한 2029년까지의 전력수급 계획에서 현재 짓고 있는 4개의 원전 외에도 추가로 8개의 원전을 더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현재 4.5%에서 2029년까지 11.7%까지 늘리겠다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세계적으로 재생가능에너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종류를 제외하면 그 목표는 더욱 낮아 보입니다. 한국은 분명 이보다 획기적으로 더 많은 재생가능에너지를 통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기술로 인정받는 한국이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집착으로 원자력발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시민과 경제 양쪽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선택이죠.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는 현재 진행형 - 100조원 넘어선 피해 규모, 여전히 높은 방사능 수치


부산에서 진행한 이번 기자간담회에서는 일본의 후쿠시마를 포함하여 원전이 위치한 다른 지역의 현재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올해 여름에 후쿠시마 사고 원전에서 35-40km 떨어진 지역에서 조사한 결과, 방사능 수치는 여전히 높은 수준으로 시민들이 위험 없이 살 수 있는 수치보다 몇 배나 높았습니다. 수천 명의 노동자가 투입되어 후쿠시마현 북서쪽 지역에서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작업을 펼쳤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의 피해비용은 현재까지 약 1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여전히 십만의 시민들이 피난 상태입니다. 이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사고지역 인근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한 부지에 밀집된 여러 개의 원전은 엄청난 재앙을 야기


세 개의 원자로에서 핵연료봉이 완전히 녹아버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여러 개의 원전이 한 부지에 밀집되어 있을 때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극적으로 보여줬습니다. 2011년 3월, 일본 원자력에너지위원회는 간 나오토 수상에게 "최악의 경우 후쿠시마 사고 지점에서 250km 반경에 이르는 지역 주민들까지 대피를 시켜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다행히 이런 상황은 피했지만, 이 시나리오의 심각성으로 인해 간 나오토 수상은 5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강제 대피시켜야 하고, 한 국가 전체를 파국으로 내몰 수 있는 기술을 국가 에너지 정책의 일부로 삼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현재 대다수의 일본 시민들은 간 나오토 전 수상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고가 나고 4년이 넘은 지금, 전부 멈췄던 43개의 원전 중에서 단 한 개의 원전만 재가동을 시작했고, 이번 주에 한 개의 원전이 추가로 재가동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나머지 원전의 재가동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며, 일본 전역에서는 재가동을 반대하는 운동이 전개 중입니다.


"10개 원전 밀집 운영 발상은 시민과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범죄에 가까운 결정"


부산지역 61개, 울산지역 34개 시민사회 단체가 이번 기자간담회에서 추가 원전 건설 반대에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대다수의 한국 시민들은 일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후쿠시마 사고에서 교훈을 얻은 것 같습니다. 원전은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지녔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비슷하게 한국 정부는, 일부러 후쿠시마의 교훈을 외면하는 듯합니다. 340여만 명의 시민이 30km 구역 안에 살고 있는 고리 원전 부지에 10개의 원전을 밀집해서 운영하겠다는 것은 시민과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범죄에 가까운 결정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대표가 생각을 바꾸는 데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이 고리에서 참사가 일어나고 나서야 결정을 바꾸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세계 최대 원전을 보유한 나라 한국이 옆 나라의 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원전을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한다면 눈부신 기술력만큼이나 스마트한 발전을 일궈 낼 것입니다. 환경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발전을 말이죠.
 

2015년 10월 11일 부산의 레인보우 워리어 호에서

숀 버니(Shaun Burnie) 그린피스 독일 사무소 수석 원전 캠페이너


▶ 신고리 5,6호기 추가 건설 반대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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