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다시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초, 꿀벌의 실종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는데요. 이때 사라진 꿀벌의 개체수만 전체의 약 16%인 78억 마리에 이릅니다.
올해 꿀벌의 더 큰 실종이 예상됩니다. 양봉업계는 지난 겨울에만 꿀벌의 약 70%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과 비교하면 3~4배에 이르는 수치인데요. 자연적인 일로 치부하기엔 그 수가 지나치게 크고, 생태계에서 꿀벌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꿀벌의 집단폐사, 도대체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우리나라 꿀벌은 굶주려 있습니다. 꿀벌이 꿀가루(화분)나 꿀(화밀)을 채취하는 대상을 ‘밀원 식물’이라고 하는데요. 벌은 밀원수의 화분과 화밀에서 각각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섭취해 건강을 유지합니다. 그런 밀원수가 계속해서 줄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밀원수의 대표적인 예는 아까시나무입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천연 꿀의 70%가 아까시나무에서 날 정도입니다. 이 아까시나무의 수가 급격히 줄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외래종이다 보니 숲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많이 제거되었고, 남아 있는 나무도 수령이 오래돼 제대로 된 꽃가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아까시나무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밀원수가 아까시나무에만 집중된 것도 문제입니다. 아까시나무의 개화 시기는 4~5월 사이로 짧습니다. 대부분의 벌은 나머지 기간에 설탕만 먹고 생존하는데, 설탕에는 밀원수의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없어 건강이 악화하고 있습니다. 결국 밀원수의 수와 종류가 줄어들자 제대로 된 영양소 공급을 받지 못한 벌의 면역력이 약해져, 외부 위협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생태계 엇박자’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기후 환경이 변하는 속도를 동식물이 따라가지 못해 벌어지는 현상을 의미하는데요, 외부 온도에 민감한 변온동물인 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금의 한반도는 다른 나라보다도 더 빠르게 온도가 오르고 있습니다. 기상청이 200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12~2008년 사이 전 세계 연평균 기온은 약 0.7도 올랐지만, 한반도는 1.7도 나 올랐습니다. 그 결과, 벌이 동면에서 깨어나 꿀을 찾으러 떠나는 시기에 꽃이 더 일찍 피었다 지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반대로 평년보다 따뜻한 가을과 겨울이 이어지자, 봄이 온 줄로 안 여왕벌이 알을 낳고 피어나지 않은 꽃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기후변화로 벌의 활동 기간과 식물의 생장 기간이 서로 엇갈리기 시작해 생태 엇박자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최근 문제시되는 꿀벌 기생충인 응애 문제로도 이어집니다. 응애란 벌의 몸을 타고 벌통으로 들어와 아기 벌의 몸에 기생하는 벌레입니다. 이 기생충은 아기 벌과 어른 벌의 영양분을 흡수해 벌을 폐사시킵니다.
여기에 더해 응애는 낭충봉아부패병, 부저병 등 벌의 목숨을 끊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까지 전파시킵니다. 특히 낭충봉아부패병은 10여 년 전 90% 이상의 토종벌을 폐사시킨 무시무시한 병입니다. 이러한 응애 역시,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줄어들면 그 밀도가 늘어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특히 작년,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는 역대 최장의 가뭄현상이 일어났죠. 그 결과 최근 응애가 더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벌의 활동 기간이 늘어나면 날수록, 응애가 꽃을 찾으러 나온 벌의 몸을 타고 벌통으로 침투할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요즘 농가에서는 농약을 드론으로 뿌리는데요.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는 드론 방역이 손쉬운 방제 방법입니다. 하지만 농약에 취약한 꿀벌에게는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하죠. 드론 방제는 희석한 농약이 아닌 원액을 사용하다 보니, 의도와는 달리 논밭에서 떨어진 곳까지 밀도 높은 농약이 퍼지는 일이 잦거든요.
꿀벌은 직접 농약의 영향을 받아 즉사하기도 하고, 농약이 묻은 꽃가루나 꿀을 먹다가 농약에 오염되어 서서히 죽거나 비행 능력과 기억 능력이 떨어져 벌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운 좋게 벌집을 찾아가더라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에 온 꿀벌의 몸에 묻은 농약이 다른 꿀벌에게 영향을 주는 바람에 더 큰 피해로 이어지기도 하죠. 지난해 TV 프로그램에서 농약과 꿀벌의 상관관계를 집중 조명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꿀벌과 야생벌은 꽃을 비롯한 밀원수의 ‘중매쟁이’ 역할을 합니다. 꽃을 따라 여러 식물을 돌아다니며 암술과 수술을 만나게 해 번식을 가능케 하는 거죠. 밀원수는 벌이 없으면 번식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벌이 사라진다는 것은, 최근 우리나라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생태계의 ‘인구 절벽’과도 비슷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밀원수는 우리가 먹는 채소와 야채뿐 아닌 해바라기, 유채, 동백나무 등 국내 약 555종의 식물들을 포함합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 100대 작물 가운데 무려 71종이 꿀벌의 수분으로 번식할 수 있습니다. 작물이 아닌 식물에도 그에 의존하는 무수한 곤충이 있고, 그 곤충을 잡아먹는 포식자들이 있는 생태계 내 먹이사슬에 엮여 있습니다. 이러한 식물들이 벌의 실종으로 대가 끊긴다면, 우리의 먹거리는 물론이거니와 산소와 물 등 생태계가 주는 서비스마저 줄어들어 우리의 생존이 불투명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 멸종할 것’이란 말은 과장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후손뿐 아닌, 우리 세대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벌은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충분한 밀원을 확보하고, 꿀벌에 피해를 주는 농약의 사용을 엄격히 관리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이 필요하죠. 현재 꿀벌 문제의 주관부서는 농림축산식품부입니다. 벌이 ‘축산’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벌이 수분매개체로서 생태계에 기여하는 정도를 고려하면 환경부, 산림청 등 다양한 부처가 함께 협업할 국무총리 산하 ‘꿀벌 살리기 위원회’의 설립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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