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가 인터넷이나 SNS 상에서 가끔 받는 질문입니다.
위 질문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린피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원전과 석탄 발전을 쓰지 않고 재생에너지 쓸 수 있으면 좋지. 그런데 아직 기술도 부족하고 비싸잖아. 환경단체인 너희들도 어쩔 수 없이 원전과 석탄 발전에서 만든 전기 쓰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치는 것은 말과 행동이 다른 것 아니야? 너희들부터 먼저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해보든가?”
재생에너지는 이미 기술과 경제성이 충분해서 전 세계적으로 주류 에너지원이 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 확대를 주장하는 그린피스부터 언행일치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써보라는 요구는 분명 곱씹어볼 문제제기입니다.
한국전력의 전기를 그대로 쓴다면 그린피스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사용하는 전기의 대략 33%는 석탄 발전에서, 30%는 가스 발전에서, 27%는 원자력 발전에서 생산되고,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는 아직 7% 정도이기 때문이죠.
사실 그린피스에는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모든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사용해야 하는 ‘내규’가 있습니다. 전 세계 55개 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린피스가 사무소 건물을 소유하고 있거나, 건물주와의 협의가 가능한 경우에는 주로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을 직접 설치해서 이로부터 생산한 전기를 사용합니다.
또한, 직접 설비를 설치할 여건이 안 되거나 자체설비만으로 부족한 경우에는 재생에너지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활용해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100%를 달성합니다.
하지만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소유한 건물이 없고, 임대해 쓰는는 사무실의 건물주와 협의도 어려웠고, 사무소가 문을 연 2011년부터 2020년까지는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제도가 국내에 없었기에 한전이 제공하는 전기를 ‘일반용 전력 소비자’로서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린피스는 해외에서처럼 전기 소비자가 재생에너지 전기를 선택하여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다행히 기업 활동에 필요한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 전기로 사용하는 글로벌 RE100 (Renewable Electricity 100%) 캠페인의 확산은 국내에서도 RE100 관련 제도의 도입에 대해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드디어 2021년부터 한국에서도 재생에너지 전기를 소비하고 인증 받는 다양한 제도가 생겼습니다.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의 ‘RE100 운영’ 홈페이지를 방문하셔서 ‘사업내용’을 누르시면 다양한 제도와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는 그린피스가 2021년에 발간한 보고서 <한·중·일 ICT 랭킹 보고서, ‘탈탄소 경쟁, 어디까지 왔나?> 12쪽 ‘한국의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제도’를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기존의 ①자가발전에 더해서 ②녹색프리미엄, ③REC 구매, ④지분참여, ⑤제3자 PPA, ⑥직접 PPA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린피스는 2021년 초 녹색프리미엄 제도가 먼저 도입되자마자 ‘언행일치’와 내규를 지키기 위해 녹색프리미엄을 구매하여 2021년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 100%’를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녹색프리미엄은 한계가 많습니다. 그린피스는 국내 최초로 2019년 <국내환경에서 기업의 재생가능에너지 구매를 위한 제도설계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여, 가장 효과적인 재생에너지 전력 구매 형태로 직접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직접 PPA는,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원하는 전력 소비자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와의 직접 계약을 맺습니다. 특히, 고정가격으로 장기 계약을 맺어 우리 사회의 재생에너지 전력 설비 확대에 기여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가 PPA를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 받으면서 재생에너지 발전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구매하는 소비자 역시 장기간 안정적으로 적정한 가격에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하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기후위기 대응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글로벌 RE100 확대 흐름에서 한국 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린피스는 직접 PPA 도입을 위해 정부와 국회에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진행했고, 그 결과 2021년 3월 국회에서 직접 PPA 도입을 가능케 하는 전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었고, 2022년 9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재생에너지전기공급사업자의 직접전력거래 등에 관한 고시를 제정하면서 국내에서도 직접 PPA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도 설계 과정에서 ‘제도 도입 초반의 시행착오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누구나 직접 PPA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용량 제한을 걸어 현재 직접 PPA는 주로 대규모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와 기업과 같은 대규모 전력 소비자 사이에서만 가능하고, 소규모 발전 사업자와 그린피스 같은 소규모 전력 소비자 간에는 활용이 불가능합니다.
결국 현재 그린피스가 활용할 수 있는 제도는 녹색프리미엄과 REC 구매입니다. 그린피스는 2021년에는 녹색프리미엄을 활용하여 RE100을 달성했지만, 2022년부터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이를 통한 기후위기 대응에 조금 더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REC 구매 제도를 활용하여 RE100의 퀄리티를 높였습니다.
REC는 재생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생산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인증서입니다. REC는 원전처럼 사고 위험이 있거나 답이 없는 핵폐기물을 양산하지 않고, 석탄과 가스 발전처럼 온실가스와 대기오염 물질을 뿜어내지도 않고, 막대한 돈을 지불하면서 해외에서 연료를 수입해 올 필요도 없는 자연에너지인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를 위한 제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 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특정 비율만큼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자체적으로 못할 경우에는 REC를 구매해서 의무할당량을 채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에게는 전기 판매 외에 REC 판매를 통해 추가적인 수익이 생기는 것이지요. 즉, REC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재생에너지 전기의 ‘가치’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불하는 비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REC를 통해 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익성이 좋아지면 재생에너지 사업에 진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결과 재생에너지 내수시장이 커지면 재생에너지 기술력과 경제성이 더 좋아지고, 결국 우리 사회는 더 효율적이고 가격이 저렴한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하면서 대기 오염도 줄이고, 원전 사고와 핵폐기물 걱정에서도 벗어나고, 기후위기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데로 기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린피스는 일회성이 아닌 의미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자와 지속 가능한 REC 구매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그린피스 가치와 잘 맞는 파트너를 찾았습니다.
바로 국사봉중학교사회적협동조합입니다. 국사봉중학교사회적협동조합은 학생, 학부모, 교사, 마을주민이 조합원으로 구성된 조합으로 다양한 사업 중에 생태에너지교육 및 실천에 기여할 목적으로 국사봉중학교 옥상에 33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사업을 2018년 설치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햇빛발전소를 포함한 이 멋진 조합의 활동은 경향신문과 JTBC 보도를 통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행히 그린피스의 REC 장기고정가격계약 제안에 국사봉 조합도 공감해주셨고, 지난 3월 14일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와 국사봉중학교사회적협동조합은 2023년부터 2033년까지 10년간의 REC 공급인증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2022년 그린피스 전력사용량에 대해서는 일반 거래 시장 플랫폼에서 별도로 구매했고, 정부로부터 RE100 사용 인증을 받을 계획입니다. 이로써 그린피스는 2021년부터 2033년까지는 RE100 달성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향후에 용량제한이 풀리면 직접 PPA 계약을 맺을 계획입니다.
그린피스는 기후위기에 더 큰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을 확대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기후위기를 우려하는 많은 단체나 상점들도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을 늘려가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재생에너지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도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은 기존에 내던 전기요금 보다 부담을 더 해야 하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이 우리가 원하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비용 부담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전력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우리 사회 전체의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비용은 내려가게 됩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이면 이미 많은 국가에서 그러한 것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숨겨진 비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석탄, 가스, 원전 등 전통적인 전력 공급원보다 저렴해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기업의 경우 향후 예상되는 전기요금 인상, 배출권 거래제 강화, 탄소 국경세 도입, RE100 확대, ESG 투자 확대 등을 고려해보면 재생에너지 전기 사용이 비용 측면에서도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린피스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변화와 우리의 행동이 일치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시급하고 과감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