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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빙하를 지켜주세요

에스페란자호에서, 한국 청년이

칠레를 방문한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호. 기후변화와 산업화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빙하를 보호하는 캠페인을 위해 방문했습니다. 에스페란자호에 승선 중인 한국인 항해사가 전해옵니다. “칠레의 빙하를 지켜주세요!”라고. [ 지난 편 “한국 청년, 드디어 에스페란자호에 승선하다" 보기 ]


여기 에스페란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각국에서 모인 선원들이 섞여있으니 말은 온통 영어, 밥은 죄다 치즈 투성이다. 가끔은 열 가지 종류의 피자가 줄줄이 나오는 날도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알렉스는 “딧쓰 쮜즈 이즈 꼼뿔리뚤리 딥뿌론뜨”라고 하고, 이탈리아에서 온 나사렛은 “옛쓰, 이쓰아 깜피탄뜰리 디뿌란뜨”라고 한다. 외국인들이 ‘연식’이라는 내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하는 바람에 내 호칭은 어쩔 수 없이 ‘KIM’이 되었고, 선원들은 한국에 기항했을 때도 ‘KIM’이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 서로 설명하고 이해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빙하를 지켜요 - 100% 재생가능에너지 #COP21’ 배너를 펼쳐든 그린피스 칠레사무소 활동가들과 에스페란자호 선원들


녹고 있는 빙하를 지키기 위해 방문한 칠레


무척 다른 우리들. 그러나 우리는 환경과 평화라는 기치 아래 모여 칠레로 향하고 있다. 칠레에는 2만 3천㎢(제주도 면적의 12.5배)에 달하는 빙하가 분포해 있는데, 이는 남미 대륙 전체 빙하의 80%에 달한다. 참고로 바다에 떠있는 ‘빙산’이 아니라 고산지대와 고위도 추운 곳에 있는 ‘빙하’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기후변화와 산업화로 빙하가 심각하게 파손되거나 녹고 있다.


이로 인해 칠레는 극심한 급수난을 겪고 있다. 칠레 땅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기후가 다양하다. 남위 56도까지 닿은 남부는 남극으로 가는 출입문 역할을 하며, 적도 인근 북부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이 있을 정도로 강수량이 적다. 칠레는 연중 강수량이 100mm도 되지 않는데(우리나라 연평균은 1,245mm), 올해는 그 절반에 그쳤다고 한다. 이 나라 연강수량이 우리나라 장마철 하루치보다 적다.

실제로 선원들과 상륙 나가서 보니 산은 대부분 민둥산. 이 때문에 비가 내리면 곧장 바다로 흘러내려 버린다. 그런데 고지대 암반에 스며있는 빙하가 냉각기 역할을 해서 눈과 비를 얼렸다가 여름철에 서서히 방출시킨다. 덕분에 햇살이 강하고 건조한 여름에 포도를 키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칠레 와인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빙하는 지금도 꾸준히 녹아내리고 있으며, 그 주변에 도로를 건설하고 석탄을 채굴하는 바람에 검게 오염되기도 했다. 이는 칠레 수질 오염으로 이어진다. 칠레의 빙하 문제는 전 세계 환경문제와 직결된다. 그린피스 칠레 사무소는 전체 빙하의 8%에 해당하는 3천420㎢가 녹거나 파괴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모든 게 지구온난화의 결과이며, 이는 다시 해수면 상승, 남미 대륙의 사막화 등 연쇄적인 부작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린피스 칠레사무소는 지난 2014년 3월, 상징적인 '빙하 공화국(Glacier Republic)'을 창설하면서 칠레 빙하 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바 있습니다.


더 다양한 이들이 그린피스와 함께 꿈을 꾸길


에스페란자 호는 칠레 항구에서 오픈보트 행사를 열어 배를 찾아온 시민들에게 이런 실정을 알리고 있다. 지난 11월 21~22일 코킴보(Coquimbo)에서는 3천여 명이 방문했고, 11월 28~29일과 12월 5~6일 수도 산티아고와 접한 발파라이소(Valparaiso)에서도 많은 시민들의  찾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칠레 코킴보 시민들이 에스페란자호에 방문하고 있다


12월 초에는 칠레 국회의장을 접견해 빙하보호 법안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그린피스 칠레사무소에서는 방문단을 꾸렸는데, 선장을 포함한 선원 4명에 나를 포함시켰다. 갓 승선한 나를 말이다.


칠레 사무소 대표가 내게 하는 말이,

-이번 국회의장 접견에 꼭 동행해 주세요. 저희 눈에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김 밖에 없어요.


전 세계 15개국에서 모인 그린피스 에스페란자 호의 선원들. 스페인어를 쓰는 칠레에서 유럽 사람은 이국적이지 않다. 처음 배에 올랐을 때, 푸른 눈의 서양인이 아닌 나는 언어와 음식이 낯설어 힘들었다. ‘싸이’와 ‘샤이니’ 같은 한류스타를 거론하며 신기한 듯 다가오는 칠레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점, 그 점이 곧 나의 강점이었음을 깨달았다.

칠레 발파라이소 항에 상륙한 선원들과 함께 사진 한 컷.


그린피스는 인종과 국적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린피스의 가치를 공유하고, 그린피스와 함께 행동하고, 나아가 그린피스의 옷을 입고 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건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교통사고처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변변찮은 대학을 낙제 끝에 졸업학점 2.99로 겨우 졸업한 나 같은 사람이 상상도 못하던 꿈을 품고 에스페란자 호에 오른 것처럼 말이다. 이부자리를 걷어차고  큰길로 나아갈 때다. 


글: 김연식 /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에스페란자 호 3등 항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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