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고민 끝에 보낸 문자 한 통

오지라퍼 담임이 되기로 했습니다

by 초록빛보라

올해가 아직 다 가지는 않았지만 2021년 나의 키워드가 무엇인지 뽑으라면 단연 1위는 '환경 실천'일 것이다. 그만큼 행동하려고 애썼고 반 아이들에게 알리고 격려하려고도 애를 썼다.


1학기에는 기후행동 앱을 활용하여 퀴즈도 풀고 실천 기록도 하며 수업과 연결하여 여러 가지 환경 교육을 했었다.

https://brunch.co.kr/@greenpurple/10

https://brunch.co.kr/@greenpurple/11


그런데 막상 2학기에는 많은 실천을 이어가지 못했다. 9월부터 핸드타월 말고 손수건 쓰기를 시작한 것 말고는 특별한 수업을 하지도 못했고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다. 진도에 허덕이느라 여유가 없기도 했고 학년 말의 부산한 분위기도 한몫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은 사실 한계가 있기에 가정과 학교가 연속되도록 환경 교육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고민 끝에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식사는 하셨나요? 학교 관련된 일은 아니니 걱정 마세요^^

내일 작은 락앤락 그릇 하나만 보내주세요. 저희 애기 써보라고 저불소 고체 치약을 샀는데 애기가 지금은 못하겠다고 해서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체험용으로 조금씩 나누어주려고 합니다. 비닐 말고 꼭 작은 용기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집에서 혹시 음료나 우유 테트라팩 나오면 모아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테트라팩 거점 수거 매장으로 한 번씩 갖다 드리고 있는데 방학 때까지 반에서 모았다가 제가 갖다 드리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종이팩 관련해서 '멸종위기 테트라팩' 함께 검색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무슨 오지랖인가 싶으시지요. 이번 학기 손수건 쓰기 말고 다른 실천을 거의 못해서 아이들에게 꼭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네요. 늘 감사드립니다. 하루 마무리 잘하세요^^



내용을 다 적어놓고도 전송 버튼을 누를까 말까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아이들 공부보다 이런 것에 더 신경 쓰는 유별난 교사가 될까 싶어서다. 교과에 소홀한 것이 아닌데도 괜스레 움츠러든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또 괜히 살림 참견하는 시어머니 같이 느끼시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전송하자마자 띵동! 답장이 왔다.


넵. 이런 분 우리 ○○이 선생님 어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답장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일반 우유팩은 안 되는지 자세히 물어봐주신 것도 감격이었다. 일반 우유팩은 모았다가 지역 주민센터에서 휴지나 종량제 봉투로 교환해 쓰시라고 알려드리고 테트라 팩만 모아달라고 자세히 말씀드렸다. 이후 몇몇 어머니께서 답장을 주셨다. 소심이 담임에게 든든한 격려와 지지를 주신 덕분에 정말 큰 힘을 얻었다.


다음 날, 절반 정도가 용기를 들고 왔다. 고체 치약 150정을 23명에게 나누어주려니 한 사람에 7개 정도밖에 돌아가지 않게 됐다. 그래도 써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기쁘게 나눠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말들이 이어진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선생님, 이거 먹어도 돼요?"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방법을 설명해주고 양치해본 뒤에 후기도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그중 한 아이가 그날 저녁 학급 SNS에 댓글로 후기를 남겨주었다.


처음이라서 조금 낯설었는데 사용하고 나니 입 안이 상쾌해졌어요. 휴대용으로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기특할 수가! 아이들의 이번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환경 실천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환경 실천을 하다 보면 간혹 관계에서의 불편함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슬쩍 행동을 타협하기도 하고 마음의 불편함을 속으로 감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내가 있는 자리가 환경보호를 가르칠 수 있는 최상의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지라퍼가 되는 용기 내기를 잃지 말아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는 오늘이다. 20년쯤 뒤 각자의 가정을 꾸릴 아이들이 한 번쯤 그런 선생님이 있었지 하고 떠올리고 한 번이라도 더 지구를 위한 실천을 하게 된다면... 이렇게 또 욕심 한 발 장전이다.


20211130_135719.jpg 고체 치약 일곱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