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활동 시간에 은성이가 안 쓰는 공책에 어떤 얼굴을 하나 그려서는 들고 와서 자랑을 한다. 무엇을 그렸냐고 물으니 “도둑이에요.” 했다. 자신은 도둑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한다. “도둑이 집에 들어오면 우리 집 물건을 훔쳐 가기 때문에 안 좋은 것인데?” 해도 막무가내. 그 순간 아이의 말을 넘겨버릴지 대꾸를 할지 결정해야 했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도둑은 평소에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우리가 볼 수 없지만 은영이가 경찰이 되면 도둑의 얼굴을 볼 수 있겠다!”
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더니, 순간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진다. 순간 이런 대답을 생각할 수 있는 나, 셀프 칭찬하고 싶다. 은성이에게 이따가 꿈 그리기 할 때 경찰 그리면 되겠다 했더니 웃으며 끄덕끄덕 한다. 그런데 막상 수업 시간이 되니 경찰은 온데간데없고 도화지엔 강아지와 피카츄를 양손에 하나씩 잡고 걷는 축구 선수 한 명만이 덩그러니. 그래, 너의 생각을 존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