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학급 아이들과 우유팩 모으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할 일은 우유를 먹은 뒤 팩을 물에 세 번 정도 깨끗이 헹궈주기만 하면 된다. 그럼 나는 다음 날 마른 우유팩을 빠른 손놀림으로 찢어 잘 보관한다. 상자 가득 모일 때까지 매일매일 한다. 모은 우유팩은 지역 관공서에서 1kg 당 20L 쓰레기봉투 2장과 교환을 할 수 있다. 1학기 가득 모았더니 무려 10kg이 모여 쓰레기봉투를 20장이나 받았다. 그래도 아이들 수보다 모자라 우리 집에 있는 봉투 3장을 더하여 아이들 모두에게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쓰레기봉투가 돈을 주고 사려 해도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지만 4월부터 7월까지 넉 달 동안이나 열심히 애써 준 아이들이 참 고맙고 또 고맙다. 우유를 먹은 아이들에게만 줄까 싶다가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널리 알리고 싶어서 모두에게 1장씩 나누어 준다.
하지만 이건 매우 귀찮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바빠서 하루만 미루어도 다음 날이 되면 바구니에 뜯지 않은 빈 우유팩이 차고 넘치곤 했다. 작년엔 3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우유팩 씻는 것이 야물지 못해 오히려 내가 다시 씻는 두 번 일을 할 때가 많았고 처리할 업무도 많아 우유팩이 금세 넘치기 일쑤였다. 씻지 않고 말라버린 우유팩을 다시 깨끗이 씻으려면 처음 헹굴 때보다 물도 더 필요하고 시간도 많이 들어갔는데 어쩔 땐 다시 씻기를 포기하고 할 수 없이 쓰레기통에 버릴 때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객전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차저차 1년 동안 마지막까지 포기하진 않았지만 올해 도전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열 살도 겨우 해내던 일을 학교에 처음 들어온 여덟 살이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씻는답시고 우유나 물을 다 쏟아버리면 어쩌나, 제대로 못 씻어 내가 일일이 다 씻어 줘야 하면 어쩌나, 교육적인 효과가 미미하면 어쩌나, 교육의 본질과 어긋난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어쩌나... 걱정은 끝도 없었다. 하지만 학급 환경 실천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우유 급식일이 확정된 후 해보자고 덜컥 말을 던졌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우리 1학년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성실했다. 아주 가끔 씻는 걸 깜빡하는 어린이는 있어도, 씻었는데 지저분한 것은 없었다. 게다가 환경 실천에 뜻이 있는 걸 아시는 다른 동료 선생님께서도 가끔 몇 개 씩을 보태 주셨으니... 한 학기 만에 10kg의 우유팩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유팩 모으기는 2학기에도 쭉 이어가고 있다. 날이 건조해져서 팩 건조가 잘 되는 건 큰 장점이긴 하나, 날이 갈수록 우유를 먹지 않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급식 취소 신청을 하니 모이는 속도가 확실히 더디긴 하다. 교환해서 받는 쓰레기봉투가 모자란다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다시 모두에게 1장씩 나누어 주려고 한다. 나의 꼬꼬마 제자들과 그 학부모들의 환경 감수성이 자라난다면 쓰레기봉투 열 장쯤은 얼마든지 가치 있는 소비라고 생각된다. 환경 실천을 전하고 싶은 담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이 되어 불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