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는 되지 못할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속 배배 꼬인 실타래는 필수, 우울, 가족 간의 불화, 비혼, 페미니즘, 소수자에 대한 관심 중 택 2는 선택 필수인 듯하다. 독자들의 시간을 얻기 위해 넷플릭스와 경쟁한다는 요즘 에세이 작가들. 그들에게 대중의 호기심은 자극하지만, 아직 심의 통과가 어렵거나 극단적인 감정선 때문에 모두가 볼 수 있는 영상으로는 제작되기는 어려운 이 주제들은 틈새시장인 걸까? 아니면 그런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글을 잘 쓰는 걸까? 이러나저러나 필수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는 되지 못할 것 같다.
최근, 한 작가님이 이끄시는 글쓰기 수업을 수강했다. 지금 내 명함에 적힌 나는 동물병원 수의사이고 내가 쓰고 읽는 글의 대부분은 논문이지만, 먼 훗날엔 뽀글뽀글 하얀 머리 할머니 에세이 작가가 되어 교보문고에서 저자 사인회를 하는 꿈을 꾼다. 글쓰기는 나의 노후이며, 수십 년에 걸친 장기 플랜이라며 지금 당장 잘 쓰지 못해도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히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너무도 꾸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글쓰기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글쓰기 수업은 2-30대 남녀 수강생 6인과 수업을 이끄는 작가님으로 구성된다. 수강생들은 매주 A4 1장 이상 분량의 글을 쓰고, 수업 시간에 서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한다. 합평 전에는 비평의 기준이 되는 요소들과 수강생 모두가 부족할 법한 것들에 대해서는 작가님의 철저한 강의가 선행된다. 덕분에 얼토당토않은 비평이 난무한 다 거다 글 안의 사건에 대한 지나친 감성적 공감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 글쓰기 수업을 듣기 전 한동안 브런치 작가인 친구와 서로의 글을 피드백하며 글쓰기를 지속했었는데, 에세이 장르의 특성상 글쓴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피드백은 어느샌가 친목 도목 수단이 되어버려 중단되었다. 그래서인지 5번의 수업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름이 헷갈리는 이들과 나누는 날 선 합평이 더욱 좋았다. 하지만 수업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나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에세이 작가는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수강생들의 글 중에는 교보문고 가판대에서 읽었다면 구매로 이어졌을 만큼 좋은 글들이 많았다. 좋았던 글은 각기 다양했지만 언제나 그 글이 좋은 이유는 글의 주제와 주요 소재 때문이었다.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글들에는 나와 동떨어졌다고 느껴지는 소재와 주제들로 가득했다. 우울이 깊었던 이가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한 이를 추모하는 글, 자신의 깊은 우울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의 갈등, 가정불화에서 비롯된 상처로 비혼이 되거나 타인의 행동에 과한 분노를 나타냈던 일,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엄마를 사랑하는 것이 힘든 딸의 이야기… 절대 나에게선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은 에세이 작가들이 써내는 글들 사이 슬그머니 끼워 두어도 이질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글 옆에서 한없이 가벼운 연애 이야기나 주야장천 써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에게는 타인의 관심을 끌 만한 고통이 없었던 걸까? 상처받은 적 없이 밝게만 자라온 척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내 과거의 고통을 뒤적이고 있는데 문득 내가 처음 본격적으로 글을 ‘잘’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글을 ‘잘’ 쓰고 싶어진 이유는 내가 본 악마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였다. 이과생의 어설픈 글쓰기가 아닌,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끌어내고, 더 나아가 분노를 키워서 그 악마를 어서 빨리 지옥행 기차에 태우고 싶었다. 나의 대학원 지도교수가 될 뻔했던 그 악마의 정체를 마주한 건 어두컴컴한 노래방에서였다. 여러 대학이 모이는 학회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 나를 부른 것이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상태로 마이크를 건네받아 트로트를 부르고 있었고, 그는 지글지글한 눈빛으로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울고 있는 자신의 대학원생들을 더듬고, 껴안고, 입 맞췄다. 그 악마 주변에는 악마를 지키는 우직한 보초병들이 있었는데 유수 대학의 교수들이었다. 좁은 악마 굴 귀퉁이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관망하던 여자 교수와 그녀의 남편 되는 남자 교수, 그다음 날 필름이 끊겼다는 변명을 하기 위해 개처럼 춤추는 신임 교수도 있었다. 나는 예비 입학자라는 이름을 단 유일한 외부인이었다. 몰래 건 전화에 위험을 알아차린 지인이 나를 구하러 온 덕분에 그곳을 도망쳐 나왔고, 나는 몇 년간 준비한 대학원을 포기하고, 보지 말았어야 치부를 보 탓에 누군가에게 해코지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수개월간 칩거 생활을 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나고 악마를 본 사건을 글로 폭로해야 할 사건이 아닌, 내 인생에서 최고로 감사한 일 중 하나로 포장해 버렸다. 포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악마의 정체를 알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 대학원에 가지 못한 덕분에 선택했던 동물병원에서 생활은 나의 커리어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동물병원에서 일하면서 일반 석사들이 하나 쓰기도 어렵다는 SCI 논문들을 계속해서 써내고 있다. 덕분에 나는 내년에 훨씬 좋은 조건으로 원하던 대학원에 진학하고 더 높은 커리어를 향하게 되었다. 이는 나에게 정서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항상 든든한 지원자였던 부모님이 덕분이고, 전적으로 나를 믿고 내가 해코지당하지 않게 보호해 준 교수님, 그리고 그 무엇보다 나를 지켜주신 감사한 주님 덕분이다.’ 주님 감사합니다로 끝나는 이 ‘덕분에’ 포장은 나에게 더 이상 포장이 아닌 사건 그 자체가 되어버렸고 그 사건은 글쓰기 주제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긍정 포장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덕분에’ 포장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대부분의 고통을 감사한 사건들로 만들어 버리는데 선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 소재들은 실시간으로 사라졌고 어쩔 수 없이 나의 가장 최근 고통인 연애 사건이라도 실시간으로 감사함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남기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젊은 날의 나의 글들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에세이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들을 갖추진 못하더라도 내가 할머니가 될 즈음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이 될 수도 있으니, 멈추지 않고 내 글들을 잘 수집해 봐야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꾸준히 교보문고에서 사인회 하는 할머니 작가를 꿈꾸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