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개인 날> 표지, 1961년에 <중앙문화사>에서 5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한 초판본, 값은 1000환
황동규는 1958년 서정주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시월」, 「즐거운 편지」, 「동백나무」 등으로 등단한다.
『어떤 개인 날』(1961)이 시인의 첫 시집으로, 500부 한정판으로 발간했다.
총 30편의 시로 이루어진 아주 얇은 시집이지만 시인에게는 그 무게가 상당한 시집으로 여겨진다. 초기시들의 모음이면서도 자신의 청춘이 탑재된 시집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소설 <소나기>를 쓴 황순원 작가로, 소년과 소녀의 순수하고 짧은 사랑을 마치 소나기가 지나가듯 쓴 작품의 그 서정성을, 황동규 시인의 초기 시와 연결하면서 읽으면 아련하고 즐겁다.
시집 목차와 오른쪽은 시집 뒤에 있는 시인의 후기
술이 아니고 왜 '술집'인가
황동규의 초기 시에 대한 평가는 상대의 부재로 인한 비극적 인식에 의한 내면의 불안의식으로 본다.
물론 시집의 어휘들에서 어두운 이미지들이 점령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과연 그 상대가 무엇을 뜻하는지, 또한 내면적인 불안의식에 과연 시적 화자가 계속 갇혀 있는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 <겨울밤 노래>에서
'서로 붙잡은 우리의 어지러움
어지러움 속으로 길은 헐벗고 달려가고
그 길 끝에 열려 있는 술집'
이라고 노래한다. 화자는 혼자가 아니다. '서로 붙잡은 우리'라고 할 때 유대감을 가진 공동체가 등장한다. 그들은 함께 무엇 때문엔가 어지럽고, 함께 열린 술집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화자가 처한 상황은 개인적이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사실 처음부터 절망과 슬픔을 알던 사람들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남은 기쁨은 버리지를 못하던 / 해 지는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잡고 웃던' 사람들이라고 시의 첫부분을 시작했을 때, 그 기쁨과 웃음을 버릴 수밖에 없던 외부적인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들에게서 기쁨과 웃음이 사라지고 이제는 눈물겹게 '캄캄한 황혼 속'을 달려간다.
그러나 거기엔 '빙판'에 서서도 '쓰러지지 않던' 사내가 있다.
따라서 '친구여 너는 술집의 문을 / 닫아도 좋다'라고 말할 때 그 사내는 막무가내로 절망과 불안에 떨고 있는 청춘이 아니다. 굳이 술집으로 가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고 해결되는 것이다.
술은 '주몽신화'에서 해모수가 유화를 술을 먹여 잡아두기도 하는, 우리 문화에서 오래전부터 언급되는 것이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에서는 이상향인 청산과 바다로 가고 싶지만 현실을 벗어날 수 없을 때 부엌에 들어가서 담가놓은 독한 술을 마신다. 1920년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로 오면 답답한 사회 때문에 술을 마신다. 이처럼 외부적 상황이 막히고 암담할 때는 술을 마시게 된다.
그런데 황동규의 시집 속에 나타나는 것은 술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술집'이다.
술집은 김유신과 천관의 이야기로 미루어 이미 신라 때부터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유신은 천관이 있는 술집에 다녔는데, 어머니의 훈화로 가지 않다가, 어느 날 타고 있는 말이 익숙한 천관의 술집으로 향하자 그 앞에서 말의 머리를 잘라버린 이야기다.
술집은 주막이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술집은 단순히 술만 파는 곳이 아니었다. 숙박과 요기를 하는 기능도 있었다. 또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으므로 정보가 오가는 곳이기도 했다.
60년대 선술집의 형태로 나타난 김승옥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술집은 익명성의 사람들이 모였다가 무관심하게 스쳐 지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황동규의 시 속에서 60년대 술집은 적어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절망과 좌절을 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해서 울분을 토로한 공간이었다. 훨씬 더 인간적이고 따스한 공간으로 보인다.
시 <얼음의 비밀>에서
'땅이여, 어디에 엎드려도 나를 밀어내지 않는
어디서나 내 조용히 떨고 다닌
언젠가 훈훈한 술집에서 나올 때
네 위에 갑자기 나를 쓰러트려
서 있는 것의 맛을 알게 한
땅이여, '
라고 함으로써 술집은 적어도 서로의 공감대를 부둥켜안던 '훈훈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술집에 안주하지 않고 화자는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의지야 말로 얼마나 삶의 자존감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 안다.
시 <이것은 괴로움인가 기쁨인가>에서
'그러던 어느 날 누가 내 젊음에서 날 부르는 소리를 들었노라.
나즉히 나즉히 아직 취하지 않은 술집에서 날 불러내는 소리를'
이라고 하며 술집에서조차 취할 수 없는 상황 앞에 선다. 그리고 취하지 않은 채 이제는 명징한 의식을 들고 그 술집에서 나온다.
이 시집이 나온 1961년 5월은 아직 군사정변인 5·16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4.19 혁명을 겪은 세대로 좌절이 희망으로 치환되는 순간을 본 세대였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잊어버려야 하는 일보다는 이제 '술집의 문을 닫아도 좋다'라고 말하거나, '훈훈한 술집에서도 나오거나', '아직 취하지 않은 술집에서조차 불러내는 소리에 나오는' 그런 시간만이 존재한다.
술집에서 응당 마실수 있는 술을 마시고 절망하고 좌절해서 인사불성이 되는 젊은 화자가 아니라 그곳에서 벗어나는 화자를 발견한다.
상처를 위로하는 손을 내밀어
황동규 시인의 널리 알려진 시 <즐거운 편지>는 고등학교 졸업 때 나눠준 교지에 실린 작품으로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인을 대상으로 썼고, 이 시를 쓸 때 물려받은 연애 시의 전통은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었다고 시인 스스로 말한다.
이 짝사랑하던 여인은, 그 여동생이 시인과 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즐거운 편지>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자 입장에서는 사랑이 영원하다고 해야 좋아하겠지만,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고 썼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시가 나온 배경에 대해서 시인이 인터뷰에서 허심탄회하게 말할 때는 독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너무 솔직해서 당황스럽다. 보통은 첫사랑이나 짝사랑은 혼자 마음속에 간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황동규 초기 시의 기저가 사랑인 것은 틀림없다. 여기서 비롯된 이루지못한 사랑에 너무 집중해서 불안과 좌절로 인식하는 것은 지나친 설정이다. 왜냐하면 초기 시의 사랑의 관점은 '기다림의 자세'로 일상성을 극복하기 때문이다.
'기다린 건 언제나 오지 않았다'라고 말하지만 '그 웃음이 끝날 때에는 내 조용히 새로운 웃음을 만들어 주마.'('얼음의 비밀' 중에서)라고 하거나,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시월, 중에서)라고 말하며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그럴 때 초기 시를 청춘의 불안으로만 간주해버리는 건 속단이다.
이제 그 사랑의 기다림에 대한 감정은 허무를 벗고 다른 상처 받은 이를 위로한다.
'그대들은 어느 곳에 상처를 받았는가. 나도 닮은 곳에 얼음을 받지 않았는가.'(-겨울날 단장, 중에서)고 말하면서 사랑에 상처 받은 사람들이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위로는 홀로 외로운 존재였다는 것을 잊게 한다.
따라서 황동규 초기 시를 개인적인 내면의식의 불안함이나 비극적인 절망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흔히 좌절이나 절망을 잊기 위해서 가장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바로 술에 젖는 것이라면, 특히 젊음은 이럴 때 특권처럼 술을 마신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는 술이 아니라 시적 공간이 '술집'으로만 나올 때 그곳은 개별적인 세계가 아니라 동병상련의 유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서로를 위로하는 세계다.
그런데도 화자는 술에 취하기보다는 그곳에서 언제나 외부로 나온다. 내면의 불안이나 허무에서 얼마든지 벗어나는 모습을 발견하며, 취하지 않은 명징한 의식과 맞닥뜨리는 것이다.
술의 이미지가 소재로 차용되었을 때는 자칫 개별적이고 소모적일 수 있었겠지만, 시에서는 '술집'이란 장소로 드러남으로써 공동체적이고, 또한 그곳을 벗어남으로써 외부지향적이다.
시대나 사랑이나 주어진 상황에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화자를 우리는 '어떤 개인 날'에 따스하고 유쾌하게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