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살이의 맛

- 서정주『질마재 신화』, 일지사, 1975

by 이지현

시집 속으로




서정주의 6번째 시집, 1975년 초판, 값은 600원



서정주의 제6 시집인 『질마재 신화』는 시인으로서는 후기시의 출발점이 되는 중요한 시집이다.

시집 서문에서, 시인은 아직 마음은 열일곱 살인데 벌써 회갑이 되었다고 말한다. 즉 회갑을 기념해서 낸 시집이다.

총 45편의 시로 이루어진 시집의 제1부는 《현대문학》과 《시문학》지에 연재해온 산문시로 33편이 실려 있다. 제2부는 1973년에 잡지 《월간중앙》의 권두시로 연재했던 것으로 작곡을 염두에 두고 정형시로 쓴 것으로 1년을 상징하는 12달을 소재로 한다. 제목의 순서를 살펴보면 마치 월령체 형식처럼 12달이 순서대로 나온다.


이 시집의 제목 ‘질마재’는 시인의 출생지인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의 선운리를 부르는 이름이다. 또 시인의 고향 마을에는 동쪽에 질마재란 산이 있어서 마을 이름도 동일하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길마는 수레를 끌 때 말이나 소 등에 안장같이 얹는 제구로, 그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질마’는 일종의 토속적 어휘 형태서 온 것이다. 길을 질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라도 만이 아니라 경상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정주의 시 세계에 대해서 이 시집의 뒤에 발문을 쓰는 시인 박재삼은 미당이 '젊어 있는 눈'으로 살기 때문에 시의 세계가 풍부하다고 본다. 또한 산문시는 토속적이고 주술적이기까지 한 세계가 눈치를 살피지 않는 대담한 언어구사, 육성적, 소박미를 드러내고, 정형시는 형식미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로 교과서나 시험에 출제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외할머니의 뒤 안 툇마루>, <신선 재곤이>, <신부>, <신발>이 있다.




시의 목차



시의 목차 및 시인의 자서



박재삼의 시집 후기



시집의 내용은 고향인 질마재의 어릴 적 체험과 그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차용했다. 그러나 읽다 보면 어느 마을에서나 있음 직한 인물들이라는 것을 느낀다. 즉 질마재는 우리의 원형적 공간이다. 속어나 비속어까지도 정겹다.


미당 서정주는 이 시집은 세 갈래의 유파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유자파, 자연주의파, 심미파, 하나 더 덧붙이자면 불교파라고 했다. 물론 시인이 각 시들을 분류하지는 않았지만 의미에 맞게 분류해보며 그와 연결된 맛을 살펴보면 마을 공동체의 삶의 단면을 흥미 있게 살펴볼 수 있다.



자연주의파의 맛



시 <小者 이 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에 나오는 무밭의 무는 매우 실하다. 그 무는 비료로 주는 李 생원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다. 이생원의 마누라의 오줌 기운과 신라 지증왕의 연장이 하도 커서 여성이 눈 똥으로 왕비를 간택했다는 설화가 연결된 성적 해학도 슬쩍 나온다. '무'밭에 거름이 되는 오줌을 눈 대상이 이생원이 아니라 마누라님이란 데서 마치 그리스 신화 속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를 연상하게 만든다.

박지원의 <예덕 선생 전>에도 엄행수의 똥으로 자라는 '살곶이 다리의 무'가 상품 중의 상품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무에는 비타민 C가 많이 들어 있어, 겨울철의 비타민 공급원으로 민중에게는 중요한 채소였다.


시 <그 애가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어왔을 때>에서 '물동이의 물을 한 방울도 안 엎지르고 걸을 수 있을 때만 나하고 눈을 맞추기로 작정했던 것'이라고 할 때, '나'는 처음으로 물동이를 인 '그 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데 이때 '물'은 통과의례의 기능을 한다.


시 <간통 사건과 우물>에서는 동네에 간통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가축용의 여물을 날라 마을의 우물들에 모조리 뿌려 메꾸고, 산골에 들판에 따로따로 생수 구먹을 찾아서 갈증을 달래어 마실 물을 대어 갔다.'라고 하며 당사자에 대한 비난보다는 마을 사람들은 잠자코 우물을 묻듯이 덮는다. 그 후 잠잠해진 때에 다시 우물을 개방함으로써 물은 새롭게 시작하는 재생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민중들은 솟아나는 물에서 힘을 느끼고 변화한다.


자연물에 거는 민중의 소망은, 시 <내가 여름 학질에 여러 직 앓아 영 못 쓰게 되면>에서 화자가 학질에 걸리자 아버지는 '빨가벗은 내 등때기에다간 복숭아 푸른 잎을 밥풀로 짓이겨 붙여' 병이 나았다고 믿는다. 흔히 복숭아는 귀신을 쫓고, 장수의 상징으로 쓰이는 과일이다. 아픈 아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들어있다.


시 <지연 승부紙鳶勝負>에서는 '깊은 바닷속의 민어 배 속의 부레를 꺼내 풀을 끓이고', '고은 치자의 노랑물도 옹기 솥에 끓이고', 연실에 먹여 승부를 한다.

치자는 제사 때 사용하는 전에 노란 물을 들이기 위해 내가 살았던 마을에도 집집마다 키우던 나무였다. 민어 부레는 많이 끈적이고 기름기가 있어 전통 접착제로도 사용되었다. 생선 부레로 만든 풀을 어교(魚膠)라고 하는데, “이 풀 저 풀 다 둘러도 민애풀 따로 없네”라는 말도 있듯이 어교는 금박이나 공예품, 무기를 만들 때도 쓰였다. 이 시에는 이렇게 강하게 만든 연줄을 사용했지만, 연줄 끊기 승부에서 비록 지더라도 치자물들인 아름다운 연을 만든다. 승부 이전의 멋이다.


시 <박꽃 시간>에서 박꽃 필 시간에 저녁밥을 지을 물을 길러 간다. '어느 가난한 집에도 이때는 아직 보리쌀이라도 바닥 나진 안 해서'라고 말하며 공동체적 따스함을 말한다. 가난을 나타내는 <흥부전>의 박도 있지만, 박나물은 꼭 제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나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살던 마을 지붕에나 담 위로는 박덩굴이 뻗어있었다. 해질 무렵 보름달처럼 박은 환했고, 박꽃은 달빛처럼 새하얗게 피었다. 박꽃이 필 무렵 동네 여자들은 우물가로 모였다. 우물가는 지금의 밴드나 단톡방처럼 동네 네트워크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맛이 마을 공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가족들의 공간에도 맛이 있다.

시 <마당방>은 집의 한가운데 있는 공간으로 나물들을 말리거나, 보리타작 콩 타작의 도리깨질을 하는 곳이다. 그리고 '제일 맛 좋은 풋고추 넣은 칼국수'를 먹는 곳이다. 이처럼 가족 간의 결속과 단란함이 나온다.


시 <대흉년>에서는 '우리 식구들이 쑥버물이에 밀껍질 남은 것을 으깨 넣어 익혀 먹고' 있다. 그런 가난한 저녁에도 할머니는 '쑥버물이에 아무것도 곡기 넣을 게 없어서 못자리의 흙을 집어다 넣어 끼니를 에우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씻나락까지는 먹어치우지는 안 했다.'라고 하면서 음식에 대한 경외감을 가르친다.




유자파의 맛



시 <눈들 영감의 마른 명태>에서 눈들 영감은 '그 딴딴히 마른 뼈다귀가 억센 명태'를 뼈까지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눈들 영감은 아직도 유학을 신봉하는 자로 '낡고 낡은 탕건'을 가지고 있다.

명태는 북어포로 올려 제사상에 올리거나 탕을 끓일 때도 썼다. 관혼상제 시에 필수적으로 쓰던 생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자로 인식되는 눈들 영감이 명태를 모조리 먹는 것은 관습의 굴레가 아직도 마을 한 귀퉁이에 남아 있음을 말한다.

명태는 차례상이나 제사상에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제나 무당굿상에도 사용되었다. 귀신 쫓는 굿에서 북어를 던져 귀신의 출몰을 점친다. 이처럼 유자파의 맛에 명태를 등장시킨 것은 마을은 아직 전근대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심미파의 맛



서정주는 심미파의 정의를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멋 내길 좋아하고 건달패로 인식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미의식이란 아름다움에 대하여 느끼고 판단하는 의식이다. 특히 한국적 미의식은 인위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시 <알묏집 개피떡>에서는 말뫼는 과부로 성적인 금기를 깨뜨리는 인물이다. 공동체의 암묵적 규율을 파괴하는 여성이지만 '개피떡'을 ‘이쁘게’ 만들기 때문에 배척되기보다는 오히려 감탄의 대상이 된다. 심미적인 것이 현실적인 규범보다 우위가 되는 상황이다.


시 <말피>에서는 '정들었던 남자나 여자를 떼내버리는 방법'으로 말 피를 쓴다. 화자는 김유신이 천관녀 앞에 타고 가던 제 말의 목을 잘라 뿌려 정 떨어지게 했던 그 말피의 노력 그대로라고 말한다. 우리가 동짓날 붉은 팥죽을 뿌려 부정 타는 일을 방지하듯이 '뜨끈뜨끈하게 매운 말피'를 뿌려 말하지 않고도 관계를 끊는다. 우리 민속에서 도깨비는 말 피, 특히 백말 피를 두려워했다. 이처럼 거친 행동이나 말싸움보다는 간접적인 의사표시로 마을 전체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았다.


시 <꽃>에서는 '송아지가 스물넉 달쯤을 자라서 이제 막 밭을 서먹서먹 갈 만큼 되었을 때' 진달래꽃 때쯤이어서 '새로 자란 뿔 사이에 진달래꽃 몇 송이' 매달아 둔다고 했다.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마을 여자들은 화전놀이를 했다. 고전가사 <덴동어미 화전가>에도 마을 여성들이 화전놀이를 하고 있다. 이처럼 금기를 어겨도 공동체가 와해되지 않는 선에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불교파의 맛



서정주는 질마재 마을의 세 파를 나눈 후에 하나 더 덧붙이면 바로 외할머니로 나타낼 수 있는 불교파라고 했다. 서정주에게 외할머니는 '차라리 외갓집 할머니한테서 배웠더라면 내 유년시절은 훨씬 기름졌을 것이다.'라거나, '국문으로 된 소설류는 거의 안 읽으신 게 없었기 때문'에, '일의 사이사이를 이야기와 말없는 적막으로 채우신' 분으로 기억한다.


시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에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라고 한다.

오디 열매는 뽕나무를 치던 고구려 시대부터 있던 것으로 한약재로도 사용한다. 뽕나무는 마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나무로 집안에서도 자랐고 단단한 나무는 위패도 만들었다. 여기서 어머니에게 쫓겨와서 숨을 헐떡일 때 외할머니는 오디 열매를 따준다. 오디의 약성에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할머니의 따스한 마음인 동시에 처방약의 기능까지 했다.


시 <해일>에는 바닷물이 넘쳐서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야단을 떠는 화자가 나온다. 그럴 때 외할머니는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보고 있다.

망둥이는 어릴 때 살던 바닷가 도시에서는 싸고 흔한 생선으로 꼬시락이나 꼬시래기로 불렸다. 어시장에 가면 대접에 수북이 담아 팔던 값싼 생선으로 비린내도 나지 않아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망둥어를 많이 먹어서 잠만 잘 거라고 했다. 실제로 망둥이는 수개월씩 동면을 한다. 이 시에서 해일로 넘어온 망둥어의 의미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연결해볼 수 있다.


시 <신선 재곤이>에서는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여기며,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대어주며 돌봐준다. 소외받고 약한 자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암묵적 관습인 셈이다.


옛것이 그리운 시간



어느 마을이고 이야기 없는 곳은 없다. 사람 사는 곳이라서 그렇다. 지나고 보면 골목의 구수한 이야기들은 그 안에서 점점 커지고 마침내 신화처럼 '그랬었다'가 '그랬다'로 마침내는 '그럴 것이다'로 바뀌었다.

그래도 그 이야기들은 마음이 다 부풀어 오르는 이야기였다.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가난이 점령했던 마을들, 마을 사람들은 웃으면서 배가 불렀다.


이 시집이 나오던 시기는 1970년대였다. 근대화의 기치 아래 마을들이 새마을운동과 급속도의 경제 성장, 그리고 정치적인 통제 상황 속에서 공동체가 보이지 않게 와해되던 시기였다.

서정주는 스스로 이 시집의 서사적 구조를 설명하면서 '액션'을 넣었다고 했다. 물론 이 액션은 이 시기에 나온 현실 참여적 시들의 움직임과는 다르다. 마치 미하일 바흐친의 카니발적 액션을 연상시킨다. 금기와 위압 등에서 해방된 마을 사람들의 자유로움이 해학으로 표출된다. 음식과 관련된 행위는 당연히 여기서 빠질 수 없다.


서정주가 분류해본 것 중에 자연주의파에서 음식과 맛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이 시집에서는 마을과 가족 공동체의 생활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질마재 神話』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질마재에 살던 사람은 내가 살던 동네에도 다 있었다. 알뫼댁같이 마을에서 제일 예쁘고 아주 착하고 솜씨도 좋지만 유부남을 사랑했던 덕자 언니가 있었다. 그런데 가을날 메주 찧는 날에는 들여다보는 아이들에게 김이 오르던 콩을 꾹꾹 뭉쳐주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온 동네를 자기 식으로 살고 싶어 했던 눈들 영감 같은 사람도 있었고, 재곤이 같은 앉은뱅이도 있어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먹을 걸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의 이야기가 질펀하게 벌어지는 질마재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셈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생생한 현장이 되는 셈이다.


옛것이 그리운 날, 골목길을 돌아 들 때 도시의 메마르고 건조한 이야기는 제 자리에 두고 온다. 그리고 들어서는 골목에서 이제 새로이 담을 이야기들을 줍는다. 사람 사는 곳에서 이야기 없는 곳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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