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시집의 표지, 오른쪽은 뒤 표지, 소묘는 시인이자 화가인 김영태의 그림, 1982년 초판, 값은 1500원
시집 목차, 시인의 육필 글씨
'김종삼의 육필 원고는 글자 하나가 주먹만 했다. 글자들은 날카롭게 직선으로 뻗어 있었고 원고지의 네모칸을 훨씬 벗어나 있었다.'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날카롭게 느껴지는 시집 속의 글씨는 시인의 필체로 보인다.
김종삼은 1921년 황해도 은율에서 출생하고 1984년 사망하였다.
김종삼은 평양고보를 중퇴하고 일본 귀족들만 다니는 동경 문화학원 문학부에 입학을 하지만, 작곡을 하고 싶어 음악에 심취했다. 이 사실을 안 그의 아버지는 학비를 끊었고, 김종삼은 막노동을 하며 7년간 고학을 한다.
이때 도스토예프스키와 서구 낭만주의 시인들인 바이런, 하이네 등의 시들을 읽는다. 당시 동경에서는 르네상스 다방이 고전음악만을 틀어주었다고 하는데 그는 이곳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시인의 음악적 소양은 국방부 정훈국 방송가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동아방송국에서 13년간 근무하는 계기가 된다. 퇴근 후 다시 방송국에 들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대로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거기에 더해서 곡 하나를 며칠씩, 몇 달씩 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김종삼은 전봉래 전봉건 형제들과 함께 유명한 고전음악 감상실인 명동의 돌체, 오아시스, 라아뿌륌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돌체가 부산 역전으로 옮긴 뒤에도 그곳을 드나들었다고 했는데 이 돌체다방은 당시 피난 온 예술가들이 모이던 곳으로도 유명했다.
그의 시에서 전쟁의 체험, 죽음, 음악의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있는 점은 그래서 놀랍지 않다.
치유의 물
김종삼의 시에서 물은 여러 형태로 등장한다. 그냥 우물물이거나 눈물일 수 있고, 바다일 수도 있다. 김종삼은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대동강을 헤엄칠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김종삼의 무의식 속에서 물은 매우 친숙한 이미지였을 것이다.
흔히 김종삼 시의 물의 이미지를 바슐라르적 환상성과 관련지어서 죽음의 이미지로 보는 경우가 우세하다. 물은 사실 우리 몸의 70%를 구성하는 필수불가결의 요소로 볼 때, 이미 전 무의식상에서 가장 의미 있게 연결된다. 어쩌면 마음이 메마르거나 건조해질 때, 혹은 어떤 생명감으로 충만할 때 알게 모르게 우리는 물과의 접속을 꾀하고 있지 않을까.
김종삼이 시 <形>에서 '물이 있다는 그곳을 향하여 / 죄가 많다는 이 불구의 영혼을 이끌고 가 보자'라고 했을 때 물은 정화의 기능을 한다.
시 <라산스카>에서도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 라산스카 / 나 지은 죄 많아 / 죽어서도 / 영혼이 / 없으리.'라고 말할 때 맑은 물가는 자신의 죄를 정화하는 기능으로 나온다.
이때의 물은 자신을 투영해보는 물이기도 하다.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 물이 그동안의 죄를 정화해주길 바란다. 물론 죄가 있다고 믿는 것은 실체적인 것은 아니다. 한 존재가 걸어온 긴 과정 중에서 짊어진 무거운 무게다. 물은 그럴 때 성찰의 기능도 한다.
무거운 성찰의 과정을 거치면 마침내 죽음의 단계도 극복한다.
시 <한번 날자꾸나>에서 '내가 죽어가던 아침나절 벌떡 일어나 / 날계란 열 개와 우유 두 홉을 한꺼번에 먹어댔다. / 그리고 들로 나가 우물물을 짐승처럼 먹어댔다.'라고 할 때, 솟아나는 우물물은 생명력이 된다. 짐승처럼 먹었다는 의미에서 삶에 대한 처절한 생명력을 볼 수 있다.
박혁거세와 알영의 고사에 나오는 우물이나, 이성계가 우물가에서 만나는 강비의 이야기만 해도 우물은 예부터 사람 간의 만남의 장소였다. 산자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우물은 강한 생존의 현장이다.
‘시정(市井)’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우물이 중심이 된다.
수도가 없던 시절에는 동네 여인들은 우물가에 저녁거리나 쌀을 씻기 위해 모였다. 공공 장소성을 가진 우물은 동네 고사를 지낼 때는 반드시 용왕제를 올리기도 했다. 물이 솟는 곳은 신성한 곳이었다. 이처럼 우물이 있는 곳은 살아 움직이는 곳이었고, 생명을 이어가는 공간이었다.
시 <내가 재벌이라면>에서 재벌이 된다면 '메마른 / 양로원 뜰마다 / 고아원 뜰마다 푸르게 하리니 / 참담한 나날을 사는 그 사람들을 / 눈물 지우는 어린것들을 / 이끌어' 주겠다고 한다. 생명력으로 받아들인 물은 이제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연민과 위로의 의미로 확대된다.
이처럼 김종삼에게서 물은 영혼을 구제하는 평화로움과 정화의 물이고, 우물처럼 솟아나는 물일 때 더 생명력을 가진다. 그럴 때 물은 치유의 기능에 더 가깝다. 마치 서사 무가 <바리데기>에서 바리공주가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 약수를 구하러 떠나듯이 생명을 살리는 물이다.
바슐라르가 말한 맑은 물의 이미지인 '순수한 물'에 가깝다. 이 물은 순수하므로 정화가 가능하고, 치유한다. 그리고 죽음을 넘어 사람을 살리는 물이다.
시 <소곰 바다>에서는 '물 한방울 없다'라고 하면서 바다는 거대한 물의 공간이지만 물이 존재하지 않는 다고 말한다.
따라서 김종삼 시에서 생명력의 힘 있는 물은 '맑은 물'이고 사람이 먹는 물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물을 생명과 정화, 치유의 물로 인식했을까. 김종삼이 죽음에 오래 천착했음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죽음의 시간에서 느낀 맛
김종삼 시인은 동생인 종수가 젊은 시절에 병을 앓다가 자살하거나, 형 종문의 죽음도 미리 겪었다. 함께 음악감상실을 다니던 전봉래의 죽음도 가까이서 본다. 전봉래는 시인 전봉건의 형으로서 한국전쟁 때 피난지 부산의 다방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였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거나 들었을 때 과연 어떤 정신이 깨어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겠는가.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음악에 몰두했던 시인이라 더했을 것이다.
어떤 때 시인의 식구들은 무연고 행려병자로 시립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찾아내기도 했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알코올 중독이 될 정도로 소주를 마셨고 생활엔 무능력자가 되었다. 김종삼에게 술조차도 죽음과 동격으로 여겨진 셈이다.
시 <운동장>에서 열 서너살 때 동생과 점심을 먹고 함께 갔던 학교 운동장을 회상한다. 그러나 '그애는 저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에 '돌아올 때 '그애가 즐겨먹던 것을 사주어도 / 받아들기만하고 / 먹지 않았습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먹는 행위는 할 수 없다.
시 <아침>에서도 '수면제 여덟 개'를 먹고 깨어났을 때 '갑자기 아무거나 먹고 싶어졌다 / 닥치는 대로 먹었다. / 아침이다. / 이틀만에 깨어난 것이다.'라고 한다. 깨어난 자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 시 <아데라이데>에서는 시체 안치실에서 '과자조각'을 먹는 자는 살아있는 화자만이다.
시 <여수女囚> 에서 보면 감옥도 생활이 죽음처럼 정지된 곳이다. 그러나 '두부파는 종이 땡가당거렸다.'고 하거나 '손에 / 커다란 배 한 알이 쥐어졌다'라고 할 때 이 음식물은 재생을 의미한다.
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에서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 빈대떡을 먹을 때' 비로소 바라보는 생활인들이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빈대떡을 먹는 자나 음식을 만드는 자나 소박하면서도 환하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산자만의 특권이다. 시에서는 산자만이 음식을 먹는다. 살아가기 위한 부단한 행위다. 그럴 때 앞서 살펴본 물의 이미지와 병치된다.
김종삼의 시가 죽음에 대한 절망과 좌절에 덮여 있더라도 물이 치유로 작용하고 있을 때, 죽은 자를 살리고 싶은 화자의 처절한 바람이었던지 모른다.
누군가 물었다면 그 답은
살아오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음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또 그만의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서 남은 자들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닫거나 자책한다. 세네카의 “죽으면 모든 것은 끝난다. 죽음도 끝난다”라고 했지만 남은 자는 끝나지 않는다.
죽음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인간의 숙명은 연민스럽다. 그러나 그 죽음과 어떻게 화해하느냐는 각자 짊어진 몫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보답이 마침내는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죽음이 따뜻하다는 관점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따뜻한 죽음을 위해서는 이 세상이 관대하고 호의적이어야 한다. 질병이나 전쟁, 강자의 위력 등이 난무하는 이 세계는 여전히 냉정하고 차갑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좀 더 온기가 있다면 죽음은 훨씬 다정하고 편안해질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 세계를 견디고 있는지에 따라서 죽음의 무게도 다를 것이다.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나는 숨 쉰다. 나는 희망한다'라고 하는 것은 삶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뛰어넘으려는 갈망으로 보인다. 죽음을 업고 가더라도 아직 삶은 남아있는 것이다. 걸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은 죽음을 위로한다.
신라 향가 <제망매가>에서는 죽고 사는 길은 이승에 있어 두렵다고 했다. 이미 신라 시대의 고승인 월명사도 죽음을 두려움으로 인식했다. 가까운 사람과 다시는 볼 수 없는 길로 나누는 것이 죽음이어서 그렇다. 그러나 곧 죽음의 슬픈 현실도 '극락에서 만날 날을 기다린다'는 종교적 믿음으로 이겨내야 했으니 하물며 범인이야.
김종삼의 시에서도 죽음에 대한 기억은 끝없이 등장하지만 그 죽음에 매몰되지 않는다. 음식은 삶의 존재를 일깨우는 등가물이다. 그중에서도 물은 생명이며 영혼을 구제받는 순수함이며 치유다.
죽음은 낭만적이지 않지만, 삶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실존적 물음에 끝없이 질문한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에 대해 굳이 시인의 답을 찾아보면 소박한 삶이 아니었을까.
그의 실존에의 소망은 매우 소박하다. '오늘은 용돈이 든든하다 / 낡은 신발이나마 닦아 신자 / 헌 옷이나마 다려 입자 털어 입자' (-<행복> 중에서)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