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인생 속도보다는 방향
2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일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하루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일은 익숙해졌지만, 마음은 자주 뒤처진다.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그 변화에 맞춰 다시 나를 업데이트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나 역시 그렇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자각은 분명해졌지만
명확한 답을 손에 쥔 채 나아가고 있지는 않다.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하고,
가끔은 ‘그냥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에 머물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이게 정답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를 나에게서 멀어지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과 병행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속도는 더디고, 방향은 자주 흐려진다.
그래도 나는 안다.
명료함은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머뭇거리는 걸음 속에서 서서히 만들어진다는 것을.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결국 아무 데도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루이스 캐럴
이 말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적어도 지금 내가 어느 방향을 향해 질문하고 있는지는 놓치지 말자고.
제2의 인생은 누군가의 속도를 따라 완성되지 않는다.
퇴사 시점도, 새로운 시작의 형태도,
그 준비 과정의 리듬도 모두 달라야 한다.
비교는 방향을 흐리고, 조급함은 나를 지치게 한다.
“자기 자신이 되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칼 융
이 말이 지금의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이
내가 늦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여전히 탐색 중이라는 살아 있는 증거일 수도 있으니까.
만약 지금
제2의 인생을 생각하며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면
너무 거창한 계획부터 세우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한 페이지의 독서,
짧은 기록 하나,
‘나는 왜 이게 좋은가’를 묻는 사소한 질문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이다.”
괴테
나에게 이 문장은 이렇게 들린다.
지금 당장 답이 없어도 괜찮다.
다만 나를 향해 걷고 있는지만은 잊지 말자고.
이 글은
아직 길 위에 있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서 있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다.
지금 이 속도도, 이 흔들림도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는 가장 솔직한 증거다.
그러니 오늘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이,
역시 가장 적절한 때라고.